※ 와인만큼 역사와 문화가 깊이 깃든 술이 있을까요. 역사 속 와인, 와인 속 역사 이야기가 격주 토요일 <한국일보>에 찾아옵니다. 2018년 소펙사(Sopexaㆍ프랑스 농수산공사) 소믈리에대회 어드바이저 부문 우승자인 출판사 시대의창 김성실 대표가 씁니다.
코로나19 탓에 6월에 계획했던 여행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가을로 미뤄지기는 했으나 어찌 될지 알 수 없기에 아쉽기도 한 터라, 화면에 지도를 띄워 놓고 근질거리는 몸을 달래던 참이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곳이 보르도였다.
―얼마 전 친구 하나가 SNS에 보르도 와인을 들고 있는 사진을 올렸다.
보르도가 불쑥 눈에 들어온 건 아마도 친구의 사진 때문이었으리라. 그럼, 필자가 지도로 여행한 보르도를 잠시 둘러보자. 보르도의 물줄기를 보면 언뜻 서울과 닮은 데가 있다. 도르도뉴강과 가론강이 만나 지롱드강이 되어 대서양으로 흐른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두물머리에서 만나 한강이 되어 서해로 흐르는 풍경과 닮았다.
지롱드강과 도르도뉴강을 기준으로 왼쪽에는 메독이, 오른쪽에는 포므롤과 생테밀리옹이 위치해 있다. 널리 알려진 보르도 와인은 대부분 메독 지구에서 생산된 것들이다. 보르도 5대 샤토 와인을 포함해 그랑크뤼클라세 등급 와인 대부분을 메독에서 생산한다(샤토 오브리옹만 예외로 메독 지구가 아닌 아래의 페삭레오냥에서 생산된다).
그랑크뤼클라세는 1855년 파리만국박람회를 준비하는 과정에 나폴레옹 3세의 지시로 만들어진 등급 체계다. 단 한 차례만 변경이 됐을 뿐, 16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당시의 등급이 유지되고 있다.
―너무나 운이 좋게도 친구의 페트뤼스를 함께 마실 기회가 생겼다.
강의 오른쪽 지역을 살펴보자. 사실 이 지역의 대표 와인을 이야기하려고 앞의 이야기를 언급했다. 바로 포므롤에서 생산되는 명품 와인이자, 메독 지구의 와인들과는 달리 등급 자체가 아예 없는 와인이며, 예의 친구 손에 들린 와인. 바로 페트뤼스다.
페트뤼스는 로마네콩티, 스크리밍이글, 보르도 5대 샤토 와인, 르로이나 앙리자이에가 만든 와인들과 더불어 세계적인 명품 와인이다. 이들 와인은 희소할뿐더러 가격 또한 매우 비싸다. 이 탓에 가짜 와인이 많다는 공통점이 있다. 오죽하면 이런 와인이 경쟁하는 와인은 다름 아닌 가짜 와인이라고 말하는 전문가가 있을 정도다.
천국의 열쇠를 들고 있는 베드로와 연노란색 바탕에 붉은 글씨로 ‘PETRVS’가 선명하게 쓰여 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페트뤼스의 ‘뤼’가 R 다음에 U가 아니라 V다. 라틴어 알파벳에 U가 발명되기 이전 로마인들은 U 대신 V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라벨을 디자인한 보르도대학 미대 학장이었던 로가노 교수의 아이디어다. 또 하나, 페트뤼스는 이름 앞에 샤토가 없다. 와인을 말할 때는 ‘페트뤼스’, 와이너리를 말할 때는 ‘샤토 페트뤼스(société Civile du château Petrus)’라 하는 게 맞다.
―마시기 3일 전부터 페트뤼스를 세워 놓았다. 부유물을 가라앉히기 위해서였다.
포므롤은 전체 포도밭이 800㏊ 정도밖에 안 될 정도로 보르도에서도 가장 작은 마을이다. 그럼에도 페트뤼스, 르팽, 라플뢰르 등 최고가 와인을 생산하는 알짜 마을이다. 메독은 널리 알려져 늘 전성기를 구가한 반면, 21세기 들어서야 알려지기 시작한 포므롤은 그야말로 무명의 마을이었다. 그런 마을에서 생산한 페트뤼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 페트뤼스의 운명은 에드몽 루바(Edmond Loubat)라는 여성이 등장하면서 바뀐다. 루바는 1920년대 리브르네에서 호텔을 운영했다. 호텔 단골 가운데 이따금 와인을 들고 오는 남성이 있었다. 사뱅두아르(M. Sabin-Douarre)라는 이 남성은 포므롤에 포도 농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곧 루바의 눈에 띄었다. 그녀는 그가 가져오는 와인의 맛이 특별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메독 지구의 1등급 와인과 겨룰 만한 맛이었다. 이 와인에 호기심이 생기자 그녀는 그에게 여러 궁금증을 물었다.
―마시기 5~10시간 전에 코르크를 뽑아 입구를 열어놓으라 했지만, 친구는 혹시 가짜 와인일지 모른다는 다소의 긴장감과 불안함 탓에 코르크를 뽑아 놓지 못했다.
사뱅두아르는 페트뤼스 매니저로 일하다 1917년에 그 밭을 아르노 가문으로부터 구입했다. 아르노 가문이 1770년부터 약 150년 동안 경작한 밭이었다. 그들은 밭과 샤토의 이름을 첫 번째 교황의 이름을 빌려 페트뤼스라 붙였다. 1878년 파리만국박람회에서는 페트뤼스가 금상을 받기도 했다. 몇몇 빈티지는 페트뤼스 아르노(Petrus-Arnaud)라는 이름으로 출시되기도 했다. 지역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저 나름대로 인기가 있다고도 했다.
루바는 페트뤼스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녀는 1923년에서 1929년까지 6년에 걸쳐 그 포도밭을 사들였고, 마침내 지분 전부를 소유할 수 있었다.
그녀는 페트뤼스를 세계적으로 알리고 싶었다. 메독 지구의 그랑크뤼클라세 와인들에 비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해 늘 아쉬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소유한 포도밭의 특별함과 페트뤼스 맛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열정적이고 영리한 그녀는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945년, 루바는 당시 유능한 네고시앙이자 와인 생산자였던 장 피에르 무엑스와 손잡았다. 무엑스의 네고시앙 회사에 독점 판매권을 준 것이다. 마침 1945년은 포도 작황이 좋았다. 지금도 1945년산 페트뤼스는 세기적인 빈티지로 알려져 애호가들은 1945년산에 열광한다.
―페트뤼스 주변에 둘러앉은 우리는 숨을 죽이며 캡실을 벗기고 코르크에 스크루를 찔러 돌렸다.
루바의 판단은 정확했다. 무엑스와 손잡은 지 2년이 된 1947년, 마침내 영국 버킹엄궁전에 페트뤼스를 입성시켰다. 당시 엘리자베스 공주의 결혼식 와인으로 페트뤼스가 선택됐다. 1953년에는 여왕의 대관식 자리에도 페트뤼스가 올랐다.
와인의 명성이 높아지자,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 또한 페트뤼스의 열혈 애호가가 되었다. 1960년대 초반에는 뉴욕의 유명 레스토랑 파비용에서 록펠러, 오나시스 같은 인사가 페트뤼스를 즐겼다고 한다. 그러자 와인 컬렉터들과 호사가들이 ‘케네디 와인’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페트뤼스는 등급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보르도 5대 샤토 와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 이른다. 페트뤼스가 5대 샤토 와인보다 더 맛있다는 평도 나왔다.
그러던 차에 잠시 위기가 닥쳤다. 페트뤼스의 인기가 정점으로 치닫던 1961년, 안타깝게도 루바가 자손 없이 세상을 떠났다. 조카 둘에게 지분이 상속되었지만, 와인에 대한 애정과 철학이 없는 이들은 지분 다툼을 벌였다. 다행스럽게도 1964년과 1969년에 장 피에르 무엑스와 그의 아들 장 프랑소아 무엑스가 지분을 모두 인수하기에 이른다. 구슬 서 말을 운 좋게 얻을 수도 있겠지만, 구슬을 멋진 목걸이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따로 있는 법인가 보다.
―코르크가 깨지기 시작했다. 아차, 올드 빈티지 와인의 코르크를 뽑을 땐 아소를 사용해야 했다.
무엑스는 1964년 다시 한번 도약의 계기를 만든다. 장례가 촉망되는 젊은 와인 메이커 장 클로드 베루에를 영입한 것이다. 베루에는 1964년부터 2008년 은퇴할 때까지 무려 44년 동안 페트뤼스의 양조 책임자로 일하면서 페트뤼스를 최고 와인으로 만들었다(지금은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올리비에 베루에가 양조를 책임진다). 같은 해에 무엑스는 바로 옆 포도밭을 샤토 가쟁에게서 사들였다. 기존 밭 7.06㏊에 4.42㏊가 늘어 포도밭이 11.48㏊가 됐다.
사실, 페트뤼스가 유명한 이유는 메를로 한 품종만으로 놀라운 맛을 빚어냈다는 데 있다. 보르도의 샤토들이 여러 품종을 블렌딩하는 것과는 대조되는 면이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명품 와인이 될 수 없다. 뛰어난 양조 기술과 마케팅 능력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페트뤼스 포도밭의 테루아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대부분의 와인 명산지는 구릉지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포므롤을 비롯한 보르도의 포도밭은 해발고도가 20~30m 정도밖에 안 되는 평지다. 페트뤼스 포도밭만큼은 예외로 포므롤에서 가장 높은 해발 40m 포므롤 고원(Pomerol Plateau)에 위치한다. 그 덕분에 바람이 잘 통하고 배수가 좋다. 여기에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매우 독특한 토양이 있다.
―어쩔 수 없이 코르크를 병 속에 빠트리고 조심스럽게 디캔터에 와인을 따랐다.
포므롤 고원 주변은 대부분 자갈층이지만, 페트뤼스가 자리 잡은 언덕은 점토층이다. 특이하게도 지반의 상층과 하층을 구성하는 점토의 성질이 다르다. 상층의 표토는 검은 점토층이 60~80㎝로 덮였으며, 그 밑에는 자갈층이 두껍게 펼쳐져 있다. 하층은 푸른 점토층(l’argile bleue=blue clay)이 깊게 자리했다.
그런데 이 하층부 일부에 페트뤼스 밭에만 특이하게도, 페트뤼스 부토니에르(Petrus boutonnière)라 부르는 견고한 산화철 성분 점판암(hard iron-rich Crasse de fer)이 원반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푸른 점토층은 조직이 매우 치밀해 포도나무가 뿌리를 내릴 수 없을 정도다. 자연히 포도나무 뿌리가 영양분을 찾아 고되게 옆으로 뻗어 나갈 수밖에 없다. 푸른 점토층 위에 뿌리가 넓게 퍼지면서 영양분과 수분을 간직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지는데, 포도나무는 건조한 여름에 이곳의 수분을 끌어 올려 줄기 곳곳에 공급한다. 이 덕분에 타닌 함량이 높지만 부드러운 질감을 가진, 복합적인 향과 맛이 응축된 메를로 와인이 만들어진다.
이 푸른 점토층은 포므롤 고원의 20㏊에만 펼쳐져 있는데 페트뤼스의 포도밭은 단 1㏊만 제외하고는 모두 이 점토층 위에 있다. 무엑스가 나중에 샤토 가쟁에게서 사들인 포도밭 역시 푸른 점토층 위에 있었으니, 가쟁이 그야말로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었다.
페트뤼스는 현재, 장 피에르 무엑스의 아들인 장-프랑수아(jean-François)와 손자 장 무엑스(Jean moueix)가 이끌고 있으며, 올리비에 베루에(Olivier Berrouet)가 아버지를 이어 양조 책임을 맡고 있다. 얼마 전에는 지분의 일부(20%)를 콜롬비아계 미국인 억만장자 알레한드로 산토 도밍고에게 넘겼다고 한다.
―우리는 곧 각자의 잔에 페트뤼스를 따랐다. 색과 향이 잔을 따라 맴돌다 눈과 코로 퍼졌다. 누가 먼저였을까, 우리는 페트뤼스를 입 속에 흘려 넣었다. 입 속 가득 맛과 향을 퍼뜨린 페트뤼스를 삼키고는, 우리는 말없이 눈빛을 주고받았다.
시대의창 대표ㆍ와인 어드바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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