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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적 의대 정원 증원만이 능사는 아니다

입력
2020.06.25 04:30
수정
2020.07.01 10:49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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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정부 여당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의과대학 증원과 의사 수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그 근거로 첫째 2017년 기준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 수가 2.3명으로 OECD 평균 3.4명보다 작으며 둘째 감염병 대응을 위한 공공의료 인력이 부족하고 셋째 흉부외과, 산부인과, 외과 등 필수 의료 과 전공 의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만약 의사가 과잉 상태가 되면 과도한 의료비 지출의 원인이 될 수 있고, 반대로 의사가 부족하면 의료 접근성 및 의료의 질을 저하시킬 수 있다. 이 때문에 의사 인력 수급 문제는 각 나라 보건의료 체계의 틀 속에서 논의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이해 당사자인 보험자, 피보험자, 의료 공급자 간 의견 수렴을 위한 거버넌스 구축이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선 이해 당사자 간의 논의 대신 정치적 목적이나 일부 학자의 주도로 이 문제를 다루려고 했다.

정부는 OECD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의 의사 수가 적다고 주장하지만, 보건의료 비용 지출(GDP 대비 경상의료비, 경상의료비 중 정부 의무가입보험 재원 비중, 국민 1인당 경상의료비 지출 등)과 사망률(예방가능, 치료가능)이 OECD 평균보다 낮은 것은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OECD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의 의료수가가 어느 정도 낮은지에 대해서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위험도가 높은 수술을 하면서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낮은 수가, 환자 상태 악화 시의 정신적 압박감, 의료 소송의 위험까지 감수하는데 과연 어느 의사가 산부인과, 흉부외과, 외과를 지원하겠는가. 의료인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비정상적인 의료 체계로는 건강한 대한민국 보건의료 체계를 만들 수 없다. 

정부는 의대 정원 및 의사 수 확대를 통해 부족한 필수 의료 과 전문의들을 양성하려고 하는데, 의료 체계 정상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양적 확대만 꾀하는 것은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른 상황에서 코로나19로 인해 무너지고 있는 의료계를 더욱 절벽으로 내몰 뿐이다. 지방에 의과대학 신설이나 증원을 논하기 전에, 의료 취약 지역의 공공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의사들의 근무 조건 개선, 즉 안정적 신분 보장과 민간 수준의 급여 보장, 자녀 교육 등 정주 여건 개선부터 해결해야 한다. 국가가 의료를 공공재라고 진정 여긴다면 필수 의료 수가를 적정 수준으로 보장하여 의료인들이 너도나도 필수 의료를 택하고 싶게 만들면 될 일이다.

정부는 의료의 공공성 강화라는 명목 아래 의대 신설 및 의사 수 늘리기에 집착할 게 아니라 응급, 외상, 심뇌혈관 등 필수 중증의료 강화, 정신질환, 장애인 등 취약계층과 관련된 보건의료, 재난 및 감염병에 대한 안전체계 구축 등 국민의 생명 및 기본적 삶의 질을 보장하는 필수 의료 구축에 먼저 힘을 기울여야 한다. 이후 보건의료 체계라는 큰 틀 안에서 공급자인 의료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뒤 논의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부회장(전남 의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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