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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리로 먹고 오일로 바르고... "해도 안 걸려" 단속 힘든 신종 마약

입력
2020.06.26 05:00
8면
0 0

<3> 브레이크 없는 신종 마약?
환각효과 강한 '허브' 클럽 등서 쉽게 유통
기호식품 같은 액상대마ㆍ대마쿠키ㆍ러쉬 등 확산
검사 키트도 없어… 뒷북 단속에 규제 사각지대

편집자주

‘한국은 마약 청정국’이라는 믿음은 이제 옛말이 됐다. 지난달 말 대검찰청이 발간한 ‘2019년 마약류 범죄백서’를 보면, 지난해 마약류 사범은 총 1만6,044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증가율도 무려 27.2%였다. 공식 개념은 아니지만 통상 ‘1년간 인구 10만명당 마약사범 20명 미만’인 국가를 마약 청정국으로 일컫는데, 한국의 작년 수치를 환산하면 ‘10만명당 30명꼴’이다. 마약으로부터 결코 안전하다고 볼 수 없다는 얘기다. 우리의 일상 속으로 마약이 깊숙이 침투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현 주소를 4회에 걸쳐 짚어본다.

서울 시내 한 클럽에서 젊은이들이 흥겹게 춤을 추고 있는 모습. 마약 전문가들은 “클럽에서 신종 마약류 투약 및 거래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진 속 클럽과 인물들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한국일보 자료사진ㆍ대검찰청 제공

서울 시내 한 클럽에서 젊은이들이 흥겹게 춤을 추고 있는 모습. 마약 전문가들은 “클럽에서 신종 마약류 투약 및 거래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진 속 클럽과 인물들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한국일보 자료사진ㆍ대검찰청 제공


누구에게든 시간을 거슬러 돌아가고 싶은 ‘그때, 그 순간’이 있다. ‘다른 선택을 했었다면’이라는 후회, ‘그 일만 없었어도’라는 원망과 함께 말이다. 특히 ‘중독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또는 그곳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마약 중독자들은 더욱 간절하다. 필로폰 투약 3년 만에 삶이 붕괴된 황철환(가명ㆍ41)씨도 그렇다.

지난 5일 경기 남양주에서 만난 황씨한테 그런 순간은 ‘2015년 부산 여행’이다. 아는 형과 커피숍 흡연실에 들어갔을 때였다. 형은 “한번 해봐. 좋아”라면서 황씨 담배에 뭔가를 집어넣었다. 담배를 피웠더니 갑자기 ‘붕 뜨는’ 기분이 들었다. 어지럽기도 했다. “이게 뭐냐고 묻자 ‘그런 게 있어’라고만 하더군요. 나중에 알고 보니 허브였더라고요.”

“합성대마 허브와의 만남, 중독의 시작”

‘허브’는 합성 대마를 가리키는 은어다. 대마초와는 성분이 전혀 다르지만, 비슷한 환각 효과를 내는 화학물질을 깻잎이나 쑥 등에 뿌린 뒤 말려서 만든 것으로 2010년대 중반 크게 유행했던 신종 마약류다. 일반 대마보다 환각 효과가 최소 5배 더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황씨는 허브를 접한 이때를 ‘중독의 시작’이라고 표현했다. “마약은 원래 은밀한 곳에서나 하는 줄 알았는데 공개 장소에서 하다니, 꽤 충격이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나도 좀 구해 볼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무렵, ‘A클럽에서 약을 구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평소 자주 찾는 단골 클럽이 있었던 황씨는 A클럽으로 발걸음을 돌렸고, 그곳에서도 친한 직원이 생겼다. 말을 꺼낼까 말까 수개월을 고민하다 은근슬쩍 물었다. “허브라는 게 있다던데….” 의외로 쉬웠다. 클럽 직원이 마약 딜러였던 것이다. 1년가량 허브를 사서 피웠다.

그리고 이듬해, 황씨는 필로폰으로 넘어갔다. “허브를 하면서 ‘대마초도 이 정도인데, 흔히 말하는 필로폰은 얼마나 좋은 걸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어요. 딜러한테 물으니 그것도 구해 주더군요.” 이렇게 접한 필로폰은 황씨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교도소를 다녀왔고, 안정적이었던 직장도 잃었다. 무엇보다 하반신 마비 등 장애까지 생겼다. 지난해 8월 단약(斷藥ㆍ약을 끊는 것)에 들어간 지 10개월째, 그는 의료기관과 치료공동체의 도움을 받으며 새 삶을 위해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경계심 덜한’ 신종 마약, 급속도로 퍼져

이 같은 사례는 이른바 ‘신종 마약’의 위험성을 보여주고 있다. 황씨의 인생을 망가뜨린 결정타는 분명 필로폰이지만, 스스로 ‘중독의 시작’이라고 했듯 그 길을 터 준 건 허브였기 때문이다. 그가 별다른 경계심도 없이 허브에 손을 댄 데에는 이유가 있다. “당시(2015년)는 허브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던 때라, 검사 키트가 없었어요. ‘이건 해도 안 걸려’라는 말이 돌아서 구하기도 쉬웠어요.” 문자 그대로 ‘새로운 마약류’였던 탓에, 소변ㆍ모발 검사로 투약 사실이 꼼짝없이 드러나는 기존 마약들과는 달리 형사처벌에 대한 두려움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는 얘기다.

신종 마약은 필로폰, 코카인, 헤로인, 대마초 등 전통적인 마약들과의 구별을 위한 실무상의 개념으로, 비교적 최근 ‘시장’에 풀린 마약류를 통칭하는 용어다. 합성 대마인 허브를 비롯해 액상 대마 카트리지, 대마 젤리, 대마 오일, 속칭 ‘러쉬’(알킬 니트리트류)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초 큰 파문을 일으킨 ‘클럽 버닝썬 게이트’로 이슈가 된 엑스터시와 GHB(일명 ‘물뽕’)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신종 마약류가 국내에서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검찰청의 ‘2019년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마약류 압수량은 전년 대비 14.6% 줄어든(415㎏→362㎏) 반면, 신종 마약류는 71.8%나 증가(48.2㎏→82.7㎏)했다. 특히 대마계 마약류와 ‘러쉬’의 압수량은 61.9㎏으로, 전년(23.2㎏)과 비교해 167%나 치솟았다. 대검은 “대마 오일은 마사지 오일처럼 몸에 바르고, 러쉬는 향수처럼 코로 흡입하는 등 기호식품처럼 친숙하게 투약할 수 있어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계속 확산되는 추세”라며 “아주 위험한 단계”라고 설명했다.

법의 사각지대서 등장… “분석 기법 개발해야”

게다가 마약 범죄의 암수율(드러나지 않은 범죄 비율)이 실제 적발 건수의 20~30배라는 걸 감안하면, 국내에서 유통되는 신종 마약류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 마약 전문가는 “버닝썬 사태로 드러난 것처럼 클럽에서 신종 마약의 투약, 거래가 활발히 일어난다는 건 수년 전부터 공공연했던 이야기”라며 “단속과 수사를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형사정책연구원은 ‘신종마약류범죄 발생실태와 통제정책’ 보고서(2017년)에서 “신종 마약류에 대한 데이터 축적, 모니터링 강화와 함께 신속한 분석ㆍ확인을 위한 시험법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제언한 바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하수역학 기법’을 이용한 신종ㆍ불법 마약류 사용 행태 모니터링 기반을 구축하는 사업을 수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도시 내 하수처리장에 모이는 하수에서 마약 성분이 검출되는지 분석해, 보다 정확한 마약류 사용 실태를 파악해 보겠다는 것이다.

당국의 ‘진짜 고민’은 감시의 눈을 피하려는 새로운 마약류가 앞으로도 계속 등장할 것이라는 데 있다.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는 신종 마약이 먼저 사회 곳곳에 퍼지게 되고, 단속 및 적발은 이를 포착한 이후에야 가능한 ‘사후적 조치’라는 얘기다. 때문에 선제적인 안전 관리 정책을 세우는 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지금은 불법이지만) 10년 전 일본에서 허브는 합법이었고, 자동판매기에서도 팔았다. 도쿄로 놀러 간 친구가 대량 구입해 귀국하면 다같이 모여서 피웠다”는 김은희(가명ㆍ29)씨의 경험담은 법망의 빈틈을 파고드는 신종 마약류의 속성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마약과의 전쟁은 끝이 나지 않는 ‘영구 전쟁’일 수밖에 없는 셈이다.

김정우 기자
박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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