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미 경제번영네트워크(EPN)의 성공조건

입력
2020.06.30 18:00
수정
2020.06.30 18:23
26면
0 0

미, 반중 경제블록 한국 참여 압박?
트럼프 재선 실패시, EPN 폐기될 수도
참여이익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 필요

 

도널드 트럼프(왼쪽 세 번째) 미국 대통령이 29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추진과 관련한 미국 측 대응 조치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왼쪽 세 번째) 미국 대통령이 29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추진과 관련한 미국 측 대응 조치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중국을 옥죄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가시화되고 있는 가운데 미 국무부는 작년 11월부터 경제번영네트워크(Economic Prosperity Network:EPN)라는 새로운 동맹체 구축에 나섰다. 반중(反中) 경제블록 혹은 중국을 배제한 글로벌 공급망 정도로 이해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아직 그 실체가 명확하지 않다.

논의의 주창자는 키스 크라크(Keith Krach) 미 국무부 경제차관이다. 그는 EPN 구상이 미국 경제안보전략 3대 핵심축의 하나임을 강조하고 있다. 나머지 두 축은 ’국가경쟁력의 획기적 향상’과 ‘미국 자산에 대한 보호’이다. 지난달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EPN이 공급망 뿐만 아니라 디지털, 에너지, 금융, 교육, 연구, 인프라 등 수많은 분야에서 ‘뜻을 같이하는 국가’와 ‘기업’ 그리고 ‘시민사회’가 함께 구축해야 할 다자협력체임을 천명한 바 있다. 작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제4차 한미 고위급 경제협의회에서 EPN 운을 뗐던 그가 지난달 20일 우리 정부에 EPN을 설명한 데 이어 6월 5일 이태호 외교부 차관과의 통화에서는 한국의 EPN 참여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EPN 논의 전개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네트워크’라는 용어이다. 네트워크란 그물망인데 서로 이로운 협력이 가능하도록 연결된 행위자들의 집합을 말한다. 이때 행위자들을 연결하는 중심 요소가 바로 표준이다. 표준은 구성원들을 연계하는 특정 방식이자 이들의 협력을 촉진하는 공유 가치를 말한다. 크라크 차관은 EPN이 ‘신뢰’라는 표준에 의해 움직일 것이며 그 표준을 이루는 가치로는 책임감과 투명성, 상호성 그리고 법치와 재산권에 대한 존중 등을 제시하였다. 하나같이 중국을 겨냥한 용어임을 눈치챌 수 있다.   

미국은 영국과 캐나다, 일본을 중심축으로 삼아 G7(주요 7개국 모임: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일본)과 한국, 호주, 인도, 대만, 이스라엘, 브라질 등으로 EPN의 외연 확장을 꾀하고 있다. 물론 러시아와 베트남, 필리핀, 태국도 우선 포섭 대상이다. 참여국의 숫자 특히 주요국들의 참여가 늘어날수록 네트워크의 힘은 커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두 가지 측면에서 EPN의 미래는 불안하기만 하다. 

첫째, 구성원들의 공유 가치가 명확하지 않다. 크라크 차관의 말 어디에도 ‘자유무역’에 대한 신념을 찾아보기 어렵다. 네트워크에서 공유 가치는 권력이다. 공유 가치가 참여국들의 연결성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EPN을 이끌 미국의 표준은 무엇인가? ‘중국 봉쇄’와 ‘보호무역주의’가 공유 가치가 될 수는 없기에 하는 말이다. ‘자국 우선주의‘를 들고 나와 ’타국의 지지‘를 구하는 모순된 상황이 지금 연출되고 있다.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는 경우 민주당 행정부는 EPN을 폐기하고 일본에 잠시 맡겨둔 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의 운전대를 다시 잡을 수도 있다. 따라서 EPN 구축을 위한 본격적인 논의는 트럼프 재선 이후에야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 상당수 다국적기업들은 중국을 배제한 글로벌 가치 사슬 형성에 내심 난색을 표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보복이 두렵고 탈중국 비용도 엄청난데다 14억이라는 거대 시장을 포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설령 일국 정부가 EPN 참여를 선언해도 그 나라 기업들은 ‘탈중국’이라는 극단적인 방식보다는 신규 투자에 한해 리쇼어링이나 공장 입지를 재조정하는 방식을 택할 전망이다. EPN이라는 반중스크램에 ‘기업’의 참여가 필요한 이유이다.      

미 국무부의 EPN은 가입 비용이 확실하지만 이익은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는 힘든 선택지다. 새로운 네트워크를 이끌 비전과 철학 그리고 참여국과 참여 기업이 누리게 될 이익에 대한 청사진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EPN은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적 구상’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