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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 가린 비대면… 대학생들 “돈 줄테니 대리시험 쳐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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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양심 가린 비대면… 대학생들 “돈 줄테니 대리시험 쳐달라”

입력
2020.07.01 04:3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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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설팅학원ㆍ어플 통해 요청 쇄도
영어 에세이 등 과제도 맡겨?
대학측은 “모니터링 한계” 포기

등록금 반환 및 선택적 패스제 도입을 요구하며 무기한 농성을 벌이던 이화여대 총학생회가 29일 오후 학교측과 대화하기 앞서 교내 파빌리온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등록금 반환 및 선택적 패스제 도입을 요구하며 무기한 농성을 벌이던 이화여대 총학생회가 29일 오후 학교측과 대화하기 앞서 교내 파빌리온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선생님, 보수는 어떻게든 맞춰 드릴테니 B학생 기말시험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고려대 재학생 A(25)씨는 최근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입시학원의 조교에게 황당한 부탁을 받고 적잖이 당황했다. A씨가 다니는 학원이 로스쿨이나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의 학점 관리를 위해 각종 컨설팅을 해주긴 하지만, 시험을 대신 치러주진 않기 때문이다. A씨는 "무려 4과목에 대한 시험과 과제를 전부 대리로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면서 "요즘 대학에서 시험 부정행위가 많다는 얘긴 들었지만 직접 대리시험 요청을 받고 보니 문제가 정말 심각하단 걸 느꼈다"고 말했다.

최근 대학가에 비대면 온라인 시험이 일반화하면서 각종 부정행위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감시 감독이 소홀한 틈을 타서 이른바 ‘컨닝’을 하는 행위는 물론 아예 대리시험을 치르는 사례도 적잖은 것으로 확인됐다. 대다수 대학이 실태를 알면서도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원, 애플리케이션, 지인 통해 '대리시험 청탁'?

30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일부 입시컨설팅 학원이 브로커로 나서 대리시험의 브로커 역할을 하고 있다. 입시컨설팅 학원엔 이른바 명문대에 다니는 대학생들이 강사로 고용돼 있는데, 대학생 강사들이 시급 5만~10만원을 받고 학원생들의 학점관리를 도와주는 일을 한다. 학점을 잘 따기 위해선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공부 방식을 알려주기도 하고 필요할 땐 개인과외를 해주기도 한다.

문제는 최근 일부 학원이 대학생 강사들에게 높은 보수를 내밀며 아예 대리시험을 제안한다는 것이다. 한 입시컨설팅 관계자는 "코로나 여파로 대학 수업과 시험이 비대면 온라인으로 이뤄지다 보니 사실상 누가 시험을 대신 쳐도 확인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일부는 시험을 과제물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다 보니 요즘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시험과 과제를 대신 해줄 수 없느냐는 요청이 (조금 과장하면) 쇄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리시험은 학원뿐 아니라 다른 통로에서도 거래되고 있다. 회계사 민모(32)씨는 "최근 일대일 과외를 연결해주는 애플리케이션(앱)에서 관리회계와 세법 두 과목의 대리시험을 요청받았다"며 "‘돈을 더 줄테니 시험을 대신 쳐달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과제를 대신해 주는 경우는 다반사다. 대학생 정민혁(가명ㆍ28)씨는 “동생의 기말고사 대체 과제가 영어 에세이었는데 전부 내가 다 해줬다"며 "과제는 걸리지도 않고 대리시험은 아니어서 크게 문제라는 생각은 안했다"고 말했다.


애플리케이션(앱) 을 통해 회계사 민모씨에게 대리시험을 부탁하는 장면. 민씨 제공

애플리케이션(앱) 을 통해 회계사 민모씨에게 대리시험을 부탁하는 장면. 민씨 제공


대학측 “비대면 시험이라 징계절차에 한계”

대학들은 과연 부정행위의 현실을 전혀 모르는 것일까. K대 관계자는 “컨닝이나 대리시험 사례를 종종 듣고 있다”면서도 “한두 과목이면 모를까 모든 시험을 모니터링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 웹캠을 활용하면 수강생이 시험을 치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지만 이런 방식을 운영하는 대학은 손에 꼽을 정도다.

부정행위에 대한 징계 학칙이 허술하다 보니 제재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대학 관계자는 "대면시험 때 컨닝 등을 하면 바로 징계할 수 있지만 비대면시험은 진상조사 등이 이뤄져야 하는데 현재 명확한 기준이 없다"고 말했다.

대학가에서 부정행위가 잇따르면서 근본적 대안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성적을 통보받은 후 해당 과목을 성적표에 A~D 등급으로 받을지, 과목 이수를 뜻하는 '패스(pass)'로 받을지 학생이 선택하도록 하는 '선택적 패스제'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상당수 대학은 제도 도입에 부정적이다. 경희대 학생 김민석(27)씨는 “학교가 성적 변별력과 학습의욕 저하를 근거로 선택적 패스제 도입을 반대하고 있는데 정작 부정행위를 막기 위한 대안은 내놓지 않고 있는 게 시험의 공정성을 훼손시키는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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