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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법 1년, 동료 하나둘 사라지고 처우 제자리...원격수업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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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법 1년, 동료 하나둘 사라지고 처우 제자리...원격수업이 두렵다"

입력
2020.07.27 20: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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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대학강사 356명 설문... 5명 중 4명 "바뀐 게 없다"

7월 17일 노태훈 강사가 서울대에서 여름학기 온라인수업을 준비하고 있다. 노씨는 최근 재임용에 합격해 '2년 고용계약서'를 받았지만, 고용 안정감을 체감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왕태석 선임기자

7월 17일 노태훈 강사가 서울대에서 여름학기 온라인수업을 준비하고 있다. 노씨는 최근 재임용에 합격해 '2년 고용계약서'를 받았지만, 고용 안정감을 체감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왕태석 선임기자


11년차 대학강사인 김수정(44·가명)씨는 지난해 3월, 10년째 출강했던 서울 A사립대와 지방 B국립대에서 새 교번을 부여받았다. 학교 측은 같은 해 8월 강사법이 시행돼 대학 강사들에게도 ‘교원 지위’가 부여되는데 따른 조치라고 설명했다. 한데 A대학의 동료강사 C와 김씨의 교원증이 달랐다. “새 교번 신청하는 방법 물어보면서 그 선생님(C강사) 교번 신청란을 보게됐는데 ‘초빙교수’라고 돼있는 거예요. 저는 ‘시간강사’였거든요.”

강사와 초빙교수의 차이는 다음 학기에 밝혀졌다. 강사법이 첫 적용된 2019년 2학기, 20년간 이 학교에 출강했던 C강사는 자취를 감췄다. 27일 김씨는 “A대학에 C강사가 가르친 과목의 전공학과가 없다. 전공학과가 있는 교양수업은 학과에서 해당 강사를 보호해 ‘시간강사’로 교번을 부여했고, 전공학과가 없는 과목은 강사를 ‘초빙교수’로 위촉해 (강사법이 시행된) 8월 1일자로 다 잘랐다”고 말했다. 자신의 전공과목이 A대학에 개설돼있던 김씨는 공개 채용을 거쳐 ‘교원(강사)’이 됐다.

강사법 시행 후 20명 듣던 강의 50명이 들어

남은 교원들의 업무량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강사법 시행을 대비해 강사수와 강좌수를 꾸준히 줄여온 A대학은 2019년 2학기에 또다시 강사수와 강좌수를 대폭 줄였고, 2년 사이 김씨가 맡은 과목의 수강생은 2배 이상 늘었다. “원래 전공생이 20명이라 수강 정원 30명이 안 찼던 과목인데, (2019년도 2학기) 수업 첫 날 강의실에 들어가 보니 50명이 앉아있는 거예요. 교양강좌가 줄어서 학점 채우느라 타과생 30명이 들어온거죠.” 김씨는 첫날 수업 후에야 대학이 수강 정원을 30명에서 60명으로 늘려 과목을 개설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학교 전공수업의 수강 정원은 강의자가 아닌, 학과 재량으로 결정됐다. 대학들은 퇴직금과 국민연금을 들어주고 3년의 ‘재임용 절차’를 보장해야 하는 김수정씨에게 합법적으로 가능한 최다 수업시수(학교당 6시간)를 배분했다. 그만큼 임용에 탈락한 강사들의 일자리가 줄어든 셈이다.

강사법 시행 후 수업료가 시간당 3,000원쯤 올랐고, ‘교원’ 지위도 확보됐지만 김씨는 고용 안정감이나 대학에 소속감을 느끼지는 않는다고도 덧붙였다. 고용·산재 보험은 강사법 시행 이전부터 학기마다 고용계약서를 쓸 때면 가입했고, 건강보험은 여전히 지역가입자로 남았다. 강사법 시행 후 자신에게도 국민연금 가입과 퇴직금이 주어진다고 하지만 이 혜택은 재임용에 탈락된 후에야 체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부가 그렇게 자랑했던 ‘방학 중 임금’은 학기 전후 일주일씩 총 4주치가 지급됐다.

공개 채용 형식을 거치지만 ‘학과 연줄’이 있어야 임용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도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점이다. A대를 비롯해 서울 주요 사립대를 두루 출강했던 김씨는 “다른 대학들도 (강사 공개 채용에) 지원자가 그 대학·그 학과 출신인지 여부를 생계 보호(임용)의 첫 번째 요건으로 보더라”면서 “학과와 연줄이 있어야 강사가 될 수 있는 근본적 ‘커넥션’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A대학 학부를 거쳐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사법 시행 후 신분 안정됐다” 5명 중 1명 뿐

이런 경험을 한 건 김수정 씨뿐만이 아니다. 8월 1일 강사법 시행 1년을 앞두고 한국일보가 전국 대학강사 356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5명 중 4명은 “강사법 시행 후에도 처우가 개선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강사법 개정 이후 신분이 안정됐다는 응답은 22.2%, 소속감이 높아졌다는 응답은 17.9%에 불과했다. 설문은 한국비정규교수 노조에 의뢰, 지난 17일부터 20일까지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강사법 시행 후 기존보다 신분이 안정됐다고 체감하십니까?

강사법 시행 후 기존보다 신분이 안정됐다고 체감하십니까?


강사법 시행 후 실질적으로 처우가 개선됐습니까?

강사법 시행 후 실질적으로 처우가 개선됐습니까?


지난해 8월 1일부터 시행된 강사법(고등교육법 개정안)은 대학 강사에게 교원 지위를 부여, 1년 이상 임용과 3년간 재임용 절차를 보장하는 것이 골자다. △방학 기간 임금 지급 △재임용 거부 처분 시 강사의 소청심사권 부여 △퇴직금 지급과 산재·고용보험, 국민연금 가입 의무화 등 처우개선 부분을 담았다.

그러나 이번 설문조사에 응한 대학강사들은 고용안정과 처우개선 모두 실질적인 체감을 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강사법 시행 후 기존보다 신분 안정을 체감했다는 응답자는 5명 중 1명꼴(매우 그렇다 4.8%·약간 그렇다 17.4%)에 불과했다. 대다수는 강사법 시행 이전과 같거나(32%) 오히려 신분이 불안정해졌다(별로 아니다 25.3%·매우 아니다20.5%)고 체감하고 있었다. 대학에 대한 소속감 역시 43%가 기존과 같다고 응답한 반면 소속감이 커졌다는 응답은 5명 중 1명(약간 그렇다 14.3%·매우 그렇다 3.6%)이 채 되지 않았다.

처우가 실질적으로 개선됐다는 응답은 24.5%(매우 그렇다 2.3%·약간 그렇다 22.2%)에 불과했다. 37.9%는 기존과 같다고 대답했고 37.6%는 처우가 개선되지 않았다(별로 아니다 20.5%·매우 아니다17.1%)라고 답했다.


강사법 시행 후 수입 변화는 어떠합니까?

강사법 시행 후 수입 변화는 어떠합니까?


응답자 대부분이 강사법 시행 이전과 비교해 수입이 같거나(39.3%) 오히려 줄었다(약간 줄었다 16%·많이 줄었다 16%)고 답했는데, 이유는 출강 대학 수가 줄어 결과적으로 수업시수가 줄어든 때문이다. 출강 대학 수가 줄었다는 응답자는 18.8%(대학 1개 감소 13.8%·2개 이상 감소 5%)로 늘었다는 응답 10.3%(1개 증가 8.1%·2개 이상 증가 2.2%)보다 많았다. 수업시수 역시 감소했다는 응답(1~3시간 감소 19.1%·4~6시간 12.9%·7~9시간 3%)이 늘었다는 응답(1~3시간 증가 7.9%·4~6시간 2.5%·7~9시간 2.8%) 보다 2배 이상 많았다.

이런 이유로 강사법 시행 이전보다 강사제도가 열악해졌다는 의견(약간 열악해졌다16.3%·매우 열악해졌다 16.6%)이 개선됐다는 의견(매우 개선됐다 2.7%·약간 개선됐다 21.1%)보다 많았다. 10명 중 7명이 강사법 개정보안이 ‘매우 필요하다’(68.3%)고 답했는데, 가장 시급한 보완책으로 퇴직금 및 직장 건강보험(32.6%) 가입을 꼽았다. 현재 최소 1년인 계약기간을 연장해달라는 의견(28.7%)과 강의료 및 방학중 임금을 인상해달라(23.3%)는 요구가 뒤를 이었다.


강사법 시행 후 교육자로서 미래가 긍정적으로 변했습니까?

강사법 시행 후 교육자로서 미래가 긍정적으로 변했습니까?


개정 강사법에서 개선돼야 할 점은 무엇입니까?

개정 강사법에서 개선돼야 할 점은 무엇입니까?


원격수업 확대되면 대량 실업 발생할라

3년차 대학강사 노태훈(36)씨가 ‘강사법 위력’을 체감할 때는 강의실보다 학과 동료들을 만날 때다. 국내 대학원생들의 경우 박사과정 수료 후 해당 대학 등에서 수업강의로 생계를 해결하면서 수년에 걸쳐 학위논문을 쓰는 게 관행이 됐지만, 강사법 이후 공개채용이 의무화되면서 “학위부터 따는 분위기”로 급변했다는 설명이다. “서류심사부터 박사 수료자랑 박사는 다르잖아요. 강사자리 자체가 줄어드니까 다들 학위가 있어야 그 자리라도 보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7월 17일 노태훈 서울대 강사가 불꺼진 연구실에서 여름학기 온라인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노씨는 대학 '조교' 를 겸임하면서 개인 연구공간을 배정받아 온라인수업을 진행해왔지만, 별도의 연구실이 없는 대다수 대학 강사들은 1학기 원격수업 시행 초기, 장소를 마련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왕태석 선임기자

7월 17일 노태훈 서울대 강사가 불꺼진 연구실에서 여름학기 온라인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노씨는 대학 '조교' 를 겸임하면서 개인 연구공간을 배정받아 온라인수업을 진행해왔지만, 별도의 연구실이 없는 대다수 대학 강사들은 1학기 원격수업 시행 초기, 장소를 마련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왕태석 선임기자


노씨는 지난해 이맘 때 서류전형과 면접, 필기시험까지 거쳐 서울대 교양글쓰기 수업을 맡았고, 이번 여름학기 글쓰기수업도 원격으로 진행한다. 강의개선방안과 연구실적, 학생들의 강의평가 등을 거쳐 재임용에 통과해 최근 ‘2년’이 보장된 고용계약서를 받았지만 “강사법으로 처우가 개선됐거나 고용이 안정됐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답했다.

“건강보험이라도 들어줘야 직장이란 소속감이 들텐데, 강사법 최종안에서 빠졌거든요. 대학들이 ‘3년 임기’를 생각하고 강사를 뽑아야 하니까 수업할 사람이 부족하면 새 강사를 뽑기보다 기존에 뽑은 강사한테 한 과목 더 주는 방식을 택하니까 이제 주변에 ‘걔 요새 강의 나가냐’고 물어보지도 못하는 분위기에요. 주변에 강사법 시행되고 (처우가) 괜찮아졌다는 말은 거의 못 들었어요.”

실제로 강사법 시행 전후 대학 강사자리는 급격히 줄었다. 교육부와 곽상도 미래통합당 의원실 등에 따르면 국내 일반대학의 총 강사수(중복 포함)는 2018년 2학기 5만1,448명에서 2019년 1학기 4만6,925명, 2019년 2학기 3만5,565명으로 급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올초 집계한 2020년 1학기 강사 고용 예정 인원은 4만명대로 작년 1학기 수준을 회복했다. 차츰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 1학기 강사 수는 다음달 말 집계된다.

노씨에게 강사법보다 위력적인 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전격 실시된 원격수업이다. 내년부터 대학들이 원격수업 비율을 상시적으로 높여 수백명씩 듣는 대형강의를 늘리면 강사 수가 지금보다 더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교육부는 지난 2일 31개 대학 총장이 참석한 ‘포스트 코로나 교육 대전환을 위한 3차 대화’에서 현행 20%로 제한한 일반대학의 원격수업 과목개설 비율을 대학 자율로 맡기겠다고 밝혔다. 원격수업 비율이 늘어나는 만큼 전임교원 1인당 학생수 8명(의학)에서 25명(인문사회)인 대학 설립 법정 기준을 완화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노씨는 “똑같은 커리큘럼으로 많게는 한 학기 수십개 개설하는 필수 교양과목을 원격수업으로 진행하면, 해당 과목 강사는 해고되거나 학생과제 점검·첨삭하는 수준으로 역할이 축소되고 임금도 줄어들 것”이라며 “이 흐름이 강사 입장에서 제일 두렵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강사법 시행 1년을 맞아 다음달부터 대학강사제도 발전협의회를 개최, 연말까지 강사제도 개선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노사정 대화와 마찬가지로 대학강사·조교와 대학, 정부 ‘3자’가 만나 현장 애로사항을 전달하고 중장기 대책을 의논한다.

이윤주 기자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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