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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생만 늘리면 공공의료가 살아나나" 어떻게 강화할지가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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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생만 늘리면 공공의료가 살아나나" 어떻게 강화할지가 안 보인다

입력
2020.07.24 04: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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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사 의무복무기간 지나면 수도권 돌아갈것
개원의만 늘어나는 결과 불러올 수도
지역병원 강화 없이 의대생만 늘리면 효과 없어"

의대 정원만 늘리면 뭐해요… 지역의 공공의료를 어떻게 강화할지 지금 아무런 이야기가 없잖아요. 국립대를 중심으로 정원을 배정하고, 이들이 지역 안의 병원들과 협력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공공의료를 강화해야 하는데 지금 정부안에는 전혀 그런 내용이 없죠.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

정부와 여당이 의과대학 정원을 16년 만에 늘리기로 했다. 그러나 의사가 부족하다는 전문가 집단에서도 23일 발표된 정원 확대안을 두고 반쪽짜리라는 평가가 나온다. 의사를 늘리는 목적인 '지역 공공의료 강화'에 대한 충분한 답을 제시하지 못해서다. 당정은 차차 보완하겠다지만 반대파도 찬성파도 '의대 인력 찔끔 늘리고 생색내는 거 아니냐'는 의심을 거두지 못한다.


정부 계획 핵심은 '지역 의무복무 의사'

당정이 23일 내놓은 정책의 골자는 10년간 의대 정원을 4,000명 늘리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2006년 이후 3,058명에 묶인 의대 정원은 2022년부터 최대 3,458명으로 늘어난다. 증원된 인원 400명 가운데 300명은 지역의사로 뽑는다. 지역의사 선발전형을 도입해 전국의 각 지역별로 공공의료와 중증ㆍ필수 의료를 수행하는 의료기관에서 10년간 의무적으로 복무할 인재를 선발하는 것이다. 불이행시 의사 면허를 취소한다. 나머지 100명은 역학조사, 기초과학 등 특수한 분야를 위한 인재로 뽑는다.


학계도 의사 총원 늘리기엔 찬성

의사 총원 확대가 시급하다는데 학계는 대체로 동의한다. 부족한 의사가 수도권 대형병원에 몰려있기에 지역의 공공의료 체계가 부실하다. 강원도의 경우, 분만시설을 갖춘 산부인과 병원이 2013년 31곳에서 지난해 23곳으로 줄었다.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시립의료원에 호흡기 내과 전문의가 없기도 하다. 의사 임금은 서울에서 멀 수록 높아지지만 의사들은 수도권 근무를 선호한다.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단체들은 "의사는 충분하지만 대우와 병원이 형편 없으니 지역에서 근무하지 않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건강보험공단이 의료계에 지급하는 수가를 높이고 지자체와 병원이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지역별 양극화는 경찰 등 다른 분야에서도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특히 농어촌에서는 산모가 적으니 병원이 없는데 '의사가 부족하다'라고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반론이다.

이에 대해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의사 임금은 이미 다른 근로자의 5배 수준인데 얼마를 더 줘야 의사가 지역에서 근무하겠느냐"라고 반박한다. 수가를 높여서 의사에게 임금을 더 주는 방안을 국민이 납득할지도 의문이다. 찬성파는 한국은 유럽과 달리 민간에 의료체계를 맡겨와서 외과 등 필수의료 분야 의사가 부족하다는 인식을 공통적으로 품고 있다. 똑같이 건강보험료를 납부하는데 농어촌에 산다고 산부인과 진료를 못 받으면 안 된다는 주장이다. 그 해법이 공공의료 활성화이고, 그 전제가 의사 인력의 확충이다.


현장, 특히 비수도권 병원들에서는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 인력이 부족하다고 호소한다. 이런 문제 또한 논의하지 않는다면 의사가 늘어난들 누구와 일하겠느냐는 문제제기가 많다. 분당제생병원 직원들이 지난 21일 고려대학교 안산병원에서 GC녹십자와 국립보건연구원이 공동개발 중인 혈장치료제 ‘GC5131A’ 개발에 사용할 혈장을 공여하고 있다. 뉴스1

현장, 특히 비수도권 병원들에서는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 인력이 부족하다고 호소한다. 이런 문제 또한 논의하지 않는다면 의사가 늘어난들 누구와 일하겠느냐는 문제제기가 많다. 분당제생병원 직원들이 지난 21일 고려대학교 안산병원에서 GC녹십자와 국립보건연구원이 공동개발 중인 혈장치료제 ‘GC5131A’ 개발에 사용할 혈장을 공여하고 있다. 뉴스1



배치 계획 부실하면 결국 다들 서울로 간다

그러나 의협과 모든 전문가의 의견이 일치하는 부분도 있다. 이번 대책이 '의대생 늘리기'에 멈췄다는 지적이다. 늘어난 의대생이 △실력을 키워서 △지역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데 핵심의제가 대책에서 빠졌다는 이야기다. 전문가 사이에서는 정부가 늘어난 정원을 사립대 산하 소규모 의대들에 골고루 나눠주는 식으로 대책이 추진되리라는 우려가 있다. 이들이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최악의 경우, 의무복무만 마치고 개원하거나 수도권으로 이주할 수 있다. 의협은 "개원의만 늘어날 것"이라며 대책 자체를 반대한다.

여당은 입시전형을 바꾸는 만큼 지역 의사는 지역에 남을 가능성이 높다는 입장이다. 여당은 오히려 의대 정원 확대를 계기로 소규모 의대들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본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만들어진 의대 10여곳의 정원이 50명이 채 안 되는데 이번 기회에 정원을 늘려 학교가 투자를 확대하면 오히려 의학교육의 질도 제고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교육부에서 만든 기준을 넘기는 학교에 정원을 배정할 것이니 사립대 특혜 논란도 없을 것이라 판단한다.


또 성형하는 개원의만 늘어날까 우려

핵심은 지역의 공공의료 강화다. 어느 지역에 사는 국민이든 의사가 없어서 진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의 주장이다. 의대생 늘리기는 공공의료를 강화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김윤 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최중증 환자(70%)와 중증환자(60%)의 대다수가 상급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정부가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한 공공병원들이 대부분 300병상 미만 규모의 작은 병원이었기에 적절한 치료가 어려웠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지역 병원을 강화하지 않고 의대생만 늘린들, 실력있는 응급의학과, 외과의가 충분히 늘어날지 의문이 많다.

시민단체에서는 날선 입장도 나왔다. 정형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번 대책이 전북지역에 공공의대 하나 그냥 던져주는 지역사업이 돼서는 안 된다. 의사 수를 늘리는 일은 결국 지방정부와 매칭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의협 말대로 의사들 나와서 피부성형하는 꼴 되고, 그러면 정말 죽 쒀서 개 주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결국 정부가 기존 체제에 안주하지 말고, 지자체와 협력해 공공의료와 의료인 교육체계에 혁신적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보건의료분야 원로인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30년간 논의가 달라지지 않아서 지체현상을 느낀다"라면서 "앞으로 10년, 20년 뒤의 정책을 이야기하는데도 과거의 패러다임이 너무 강하게 남아있다"라고 쓴소리를 남겼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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