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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남은 녹지공간에 아파트를..." 과천 행복주택에 주민도 상인도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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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남은 녹지공간에 아파트를..." 과천 행복주택에 주민도 상인도 반대

입력
2020.08.0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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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 4일 수도권 13만호 주택공급 을 발표하면서 이 중 4,000세대를 경기 과천에 짓겠다고 밝힌 부지(빨간색 원). 왼쪽에 정부청사 건물과 관악산 자락이 보인다. 과천시 제공

정부가 지난 4일 수도권 13만호 주택공급 을 발표하면서 이 중 4,000세대를 경기 과천에 짓겠다고 밝힌 부지(빨간색 원). 왼쪽에 정부청사 건물과 관악산 자락이 보인다. 과천시 제공

“과촌(果村)으로 남게 해 달라.”

5일 오전 경기 과천시 시청사 인근 한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주부의 말이다.

정부가 전날 13만호 주택공급 계획을 발표하면서 정부과천청사 부지 일부와 유휴지를 포함한데 따른 불만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단지 내 쉼터에서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던 주부 김씨는 “우리는 이곳을 과천이 아닌 과촌으로 부르는데, 시끄럽지 않고 시골마을 같은 아늑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라며 “강남은 아파트 숲으로 돼있어 답답하지만 이곳은 확 트인 공간(정부청사 유휴부지)이 있어 좋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과천은 과거 5층 규모이던 아파트가 최근 재건축으로 고층화되면서 잘 보이던 관악산과 하늘이 잘 안 보여 점차 서울 강남화 돼가는 것 같아 아쉽다”며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남은 확 트인 녹지공간에 아파트를 짓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분노했다.

함께 있던 이모씨는 “(행복주택 반대가) 집값 하락 우려 때문이 아니냐고 따지는 사람들도 있는데 솔직히 누가 좋다고 하겠느냐”며 “무작정 반대라고 생각하지 말고 주민들이 왜 그러는지부터 헤아려야 한다”고 말했다.

과천시 상점가상인회는 5일 오후 정부청사 유휴지 아파트 건립을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걸었다. 유휴지 입구에 내걸린 현수막. 임명수 기자

과천시 상점가상인회는 5일 오후 정부청사 유휴지 아파트 건립을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걸었다. 유휴지 입구에 내걸린 현수막. 임명수 기자

같은 단지에서 만난 50대 남성은 “현 정부 정책을 지지해 왔지만 이번 부동산 정책만큼은 지지하지 못하겠다”며 “녹지공간을 없애는 것도 모자라 과천시를 베드타운으로 만들 작정이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인근 입주민은 물론 원거리의 과천동 등에서도 시민들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주저함없이 “안된다”고 잘라 말했다.

양모(67)씨는 “정부청사가 들어오면서 과천이 커진 것은 맞지만 그로 인한 규제도 많았다”며 “각 부처가 세종으로 이전하는 상황에서 이젠 해당 부지를 과천시민에게 되돌려 주는 게 맞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30대 주부는 “과천에 중학교가 2개에 불과해 지금도 과밀학급으로 운영되는데 3기 신도시와 재건축으로 인한 세대수 증가, 여기에 행복주택까지 들어오면 아이들 학습권 침해는 누가 책임질거냐”며 “책상 앞에 앉아 빈 토지 찾아 무작정 아파트 지을 생각만 하지 말고 공급과 수요, 자급자족할 경쟁력 있는 도시로 만들 생각 좀 했으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과천시 상점가상인회는 5일 오후 정부청사 유휴지 아파트 건립을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걸었다. 유휴지 입구에 내걸린 현수막. 임명수 기자

과천시 상점가상인회는 5일 오후 정부청사 유휴지 아파트 건립을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걸었다. 유휴지 입구에 내걸린 현수막. 임명수 기자

상인들의 반응은 의외였다. 정부 부처가 상당수 세종으로 이전하면서 기관이든 아파트든 아무거나 빨리 들어서길 바라는 마음이 클 것으로 예상했지만, 주민들과 함께 반대 기류가 강해서다.

그레이스상가에 입점해 있는 김모씨는 “저쪽으로 가서 청사 방향을 바라보면 뒤쪽에 관악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며 “그런데 수십 층 아파트가 가로 막는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답답하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천 상가민들 대부분도 반대하고 있다”며 “그냥 두는 게 최선이지만 뭔가 꼭 들어서야 한다면 저층 규모의 지식관련 산업이 들어와야 한다”고 말했다.

함께 있던 다른 상인도 “과천 경마장 인근에 3기 신도시가 들어서는데 그 아파트의 층수만 몇 개 올리거나, 주변에 1~2개 동을 더 지으면 충분히 수용 가능하다”며 “시내 한복판에 왜 아파트 지을 생각을 하는지, 탁상행정 좀 그만하라”고 격앙됐다.

상인회 측은 정부청사 유휴지 입구에 ‘과천시민 전체의 눈에 흙이 들어가도 여기는 안된다’, ‘청와대 앞마당은 몰라도 여기는 안된다’는 반대 입장을 담은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

김종천 과천시장은 정부의 부동산 대책 반대 입장을 표명하며 집무실을 정부청사 유휴부지 한 복판에 차렸다. 텐트 오른쪽으로 정부청사가 보인다. 임명수 기자

김종천 과천시장은 정부의 부동산 대책 반대 입장을 표명하며 집무실을 정부청사 유휴부지 한 복판에 차렸다. 텐트 오른쪽으로 정부청사가 보인다. 임명수 기자

김종천 과천시장은 집무실을 아예 정부청사 유휴지 운동장 한복판으로 옮겼다. 이날 오전 정부 측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휴지 운동장 가운데 텐트 4개동을 설치했다. ‘아름다운 과천 시민과 함께 지키겠습니다’라는 현수막도 붙였다.

김 시장은 전날 긴급성명을 통해 “정부는 서울 등 집값 폭등 문제를 결코 과천 시민의 희생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고 격하게 반응한 바 있다.

시 관계자는 “집무실 설치는 과천시 입장에서 정부의 이번 정책을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결연한 의지를 담은 것”이라며 “이번 결정을 철회할 때까지 운영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내년 1월 준공예정인 2단지 아파트(단지내서 관악산 조망 가능)까지 들어서면 주민반대는 더욱 거세질 수 밖에 없다”며 “정부가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임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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