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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도 따다준다던 남편이었는데..." 베이루트 폭발참사로 우는 사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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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도 따다준다던 남편이었는데..." 베이루트 폭발참사로 우는 사연들

입력
2020.08.08 18:20
수정
2020.08.08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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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루트 항구 인근 병원서 일하던 쌍둥이 동생?
일 때문에 두 달에 한 번 만나던 자상한 남편
대학교 학비를 벌며 부모 돕던 착한 아들

6일 레바논 남부 사르바 마을에서 열린 베이루트 대폭발 참사 희생자 장례식에서 한 유가족이 고인의 관을 붙잡고 오열하고 있다. 베이루트=AP 연합뉴스

6일 레바논 남부 사르바 마을에서 열린 베이루트 대폭발 참사 희생자 장례식에서 한 유가족이 고인의 관을 붙잡고 오열하고 있다. 베이루트=AP 연합뉴스


"달도 따다준다던 자상한 남편이었는데..."

지난 4일(현지시간) 발생한 레바논 베이루트 폭발 참사 현장에서 희생자들의 아픈 사연들이 가슴을 적시고 있다. 병원에서 일하는 쌍둥이 동생을 잃은 언니, 달도 따다주겠다며 가족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한 남편, 학비와 부모님을 위해 돈을 벌었던 아들 등 우리네 삶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다. 베이루트 폭발 참사로 150여명의 사망자와 5,0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나왔다. 실종자는 60여명이며 생활터전을 잃은 이재민도 30만명에 달한다.

원치 않은 영원한 이별을 한 쌍둥이 자매

AP통신은 8일(현지시간) 이번 폭발로 인해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영원히 함께 할 것만 같던 쌍둥이 자매 제시(31)와 조이스는 이번 폭발 참사로 원치 않은 이별을 했다. 두 사람은 같은 학교를 다녔고, 같은 수업을 들었으며, 각자 결혼 후 어린 딸을 키우고 있었다. 그러다 폭발 참사 당일 조이스는 제시를 다시는 볼 수 없게 됐다. 제시는 베이루트 항구 인근 생조지병원 의료센터 9층 노인병동에서 일하는 직원이었다. 사고 당일 조이스는 제시의 휴대폰에 연락을 취했지만, 통화가 된 건 동생이 아닌 낯선 남자였다.

조이스는 동생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이 남자는 피를 흘리고 있는 여성의 시체 옆에서 벨이 울리는 휴대폰을 발견했다고 했다. 사람들이 그녀를 다른 병원으로 옮기려고 했으나 그녀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고. 조이스는 "그 죽은 여성이 동생이라는 것을 즉시 알아차렸다"고 말했다. "우리는 함께 태어났다. 죽음도 함께 맞이했다면 좋았을 텐데..."라며 조이스는 눈물을 글썽였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폭발 참사 이틀 전인 일요일이었다. 5살짜리 딸을 둔 조이스는 계속 엄마를 찾는 동생의 2살된 딸을 맡아 키울 계획이다. "동생 제시는 적어도 제게 딸을 남겨주었습니다. 그것은 제시의 일부가 남겨진 것이죠."

가족에 헌신한 자상한 남편이자 아빠

소하 사데와 남편 지하드 사데(44)는 생조지병원에서 희귀병 치료를 받고 있는 6살 딸 젬마를 돌보고 있었다. 폭발 사고 당일은 젬마가 병원에서 마지막으로 치료를 받는 날이었고, 이튿날이면 퇴원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밖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걸 본 아내는 걱정이 돼 간호사를 찾아갔다. 그 순간 폭발이 일어났다.

병실로 돌아온 소하는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남편을 발견했다. 그녀는 남편을 업으려고 애쓰면서 깨진 유리 조각 위를 맨발로 다니며 계단을 내려갔다. 주변 사람들이 소하를 도우려고 했지만 남편은 숨을 거둔 뒤였다. 소하는 "남편은 눈을 뜨지 않았다"며 "(몸을 떠난) 그의 영혼을 봤다"고 울먹였다.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가자지구의 중심도시 가자시티에서 6일 어린이들이 레바논 베이루트 대폭발 참사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촛불을 밝히고 있다. 가자시티=AP 연합뉴스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가자지구의 중심도시 가자시티에서 6일 어린이들이 레바논 베이루트 대폭발 참사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촛불을 밝히고 있다. 가자시티=AP 연합뉴스


소하의 기억 속 남편은 항상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자상한 남편이자 아빠였다고 말한다. 그녀의 남편은 자신이 자란 나이지리아의 라고스에서 호텔 매니저로 일했다. 비록 두 사람은 떨어져 지냈지만 남편은 두 달에 한 번씩 레바논을 방문했다. 그가 번 돈으로 부모님과 동생을 돕는 데 쓰기도 했다.

그녀는 "내가 달을 원한다면 남편은 달을 가져다 줄 것"이라며 자상했던 남편을 떠올렸다. 사고 전 일요일 남편은 아내에게 파자마 세트를 선물했고, 딸에겐 가장 좋아하는 야채샐러드를 접시에 담아주었다. 소하는 폭발로 사라진 병원 앞에서 여전히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학비 벌며 부모님 생각하던 성실한 아들

어머니 노하드 아키키는 열심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던 아들 조(23)의 시신을 간신히 수습했다. 폭발 사고 후 이틀이 지난 후였다. 내심 아들이 살아있기를 바랐던 모정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조는 한 달에 한 번 베이루트 항구의 거대한 곡물 창고에서 2교대로 일했다. 폭발 사고 당일 조는 초기 폭발을 목격하고 휴대폰으로 촬영 후 친구에게 전송했다. 그 후 더 큰 폭발이 일어났고, 조는 다시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조의 고향인 크파르디비안시(市)의 와심 음하나 시장은 "조는 화재 영상을 보낸 뒤 사라졌다"며 "우리는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희망은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시신이 이틀 간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하드도 한 방송과의 인터뷰를 통해 "아들을 기다리고 있다"며 조가 살아 돌아오기를 기도했다.

그러나 희망은 고통이 되어 돌아왔다. 노하드는 아들의 시신을 수습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착하고 성실했던 아들을 잃은 노하드는 억장이 무너졌다. 전기공학과 학생인 조는 3년 동안 이 창고에서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일했다. 그는 부모님의 생활에도 보탬이 되기 위해 일하는 속정이 깊은 아들이었다. "이제는 부모님이 걱정된다"는 조의 여동생 마한나(16)도 오빠를 그리워했다.

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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