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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인들은 정말 마늘을 싫어할까

입력
2020.08.10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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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인의 마늘사랑은 세계에서 으뜸이다. 우리는 대부분의 음식에 마늘을 넣고, 그것을 만병통치약으로 칭송하고, 그 매운 것을 날로도 잘 먹는다. 우리에게 이상한 것은 오히려 외국에서 마늘 때문에 치르게 되는 곤욕일 것이다. 독일에서 버스 앞자리에 앉은 할머니가 나에게 마늘을 먹었냐고 묻던 일 등이 우선 떠오른다. 그러다 다른 나라에서는 식당에서 풍기는 마늘향의 유혹에 못 이겨 안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이런 상반된 경험들을 바탕으로, 유럽을 다음의 세 지역으로 구분해볼 수 있겠다. 1) 마늘을 좋아하는 라틴문화권(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2) 마늘을 싫어하는 게르만문화권(영국, 독일, 북유럽), 3) 마늘을 좋아하는 슬라브문화권(동유럽). 아울러 유럽에서 마늘에 대한 호불호가 시대, 계층에 따라 달라짐을 볼 수 있다.

마늘은 이미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에 널리 퍼져 있었다. 로마시대의 글에는 게르만인과 빈민들이 마늘을 많이 먹는 것으로 묘사된다. 계층과 지역에 따라 마늘의 선호가 달랐던 현상은 중세에도 이어졌다. 16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절대왕정이 등장하면서 마늘은 궁정에서 금지된다. 19세기에 마늘은 도시 미식가들을 위한 고급 요리에 재등장하는데, 식사 후 냄새가 나지 않도록 유제품, 파슬리 등으로 입가심을 했다. 프랑스 음식 부야베스는 해산물과 감자, 토마토 등에 마늘을 넣어 끓인 스튜이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밥과 국수 요리에도 마늘이 들어간다.

영국에서는 산업화와 더불어 시민사회가 형성되고 근대 위생관념이 퍼졌는데, 마늘이 입 냄새와 체취를 유발한다는 이유로 새롭게 혐오 대상이 되었다. 영국인들은 프랑스인들의 마늘애용을 ‘프랑스적인 것’으로 비웃곤 한다.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이탈리아를 방문할 때는 마늘을 사용하지 말라고 요청하여 자국 음식에 자부심이 높은 이탈리아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렸다고 한다. 영국에는 고기, 야채, 과일 등을 넣어 구운 파이, 푸딩이 많은데, 마늘 등의 향신료로 미각을 자극하는 요리법과 거리가 먼 탓인지 그다지 명성이 나있지는 않다.

19세기 중반 산업화가 시작된 독일(그리고 북유럽)에서도 근대 위생관념이 도래하면서 마늘은 천대를 받는다. 이 시기에 비스마르크가 독일제국을 통일하는데, 마늘에 대한 독일인들의 태도는 유난히 민족주의적이었다. 특히 동유럽인들(식생활에 마늘 애용)이 싼 노동력으로 독일로 이주해오면서 마늘에 대한 거부감도 커졌다. 1960년대 인권운동, 학생운동 등의 격변 속에서 독일에서는 환경과 자연식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다. 이때는 그리스, 이탈리아에서 남유럽인들이 독일로 들어왔는데, 돼지고기, 소시지 등의 고칼로리 전통식 대신 마늘을 이용하는 지중해 음식이 건강식으로 점차 인기를 끈다.

유럽의 마늘 혐오 전통에 당한 후, 한국에 가면 느끼는 것이 여기저기 풍기는 마늘향과 그것에 관대한 태도이리라. 유럽에서 마늘이 겪은 우여곡절의 운명에 비해, 한국에서 그것이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것이 신기해진다. 마늘혐오가 독일 민족주의의 모습이었던 것과 반대로, 마늘 사랑과 한식 자부가 한국 민족주의의 한 모습일까? 혹은, 밥이 보약이라는 식문화에서 몸에 좋은 마늘이 모두의 환영을 받는 것인가? 마늘과 유럽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번에는 마늘과 한국의 끈끈한 인연의 역사가 궁금해진다.



김윤정 ‘국경을 초월하는 수다’ 저자ㆍ독일 베를린자유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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