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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넷' 혁신적 걸작인가, 오만한 영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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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넷' 혁신적 걸작인가, 오만한 영화인가

입력
2020.08.23 18:36
수정
2020.08.23 21:25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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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테넷',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영화 '테넷',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내가 뭘 본 건지 모르겠어요. 중반까진 그럭저럭 이해한 거 같은데 뒷부분은 멍한 상태에서 넋 놓고 봤어요. 감독이 똑똑하다고 자랑하러 만든 건가 싶기도 하고. ‘인셉션’만 해도 이런 느낌은 아니었는데….”

23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한 극장에서 영화 ‘테넷’을 보고 나온 관객 김모(38)씨는 이렇게 말하며 마스크 너머로 얼이 빠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김씨와 함께 영화를 본 이모(45)씨는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흥미로웠지만 난해한 부분이 많아 머리가 지끈거린다”며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한 번 더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26일 정식 개봉에 앞서 호주와 함께 22, 23일 특별 유료 시사 형식으로 전 세계 최초 공개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테넷’을 둘러싼 논란이 벌써부터 뜨겁다. 일부 관객들이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천재성이 드러난 혁신적 걸작이라고 치켜세우는 반면, 또 다른 관객들은 불친절하고 오만하기까지 한 영화라고 불만을 표하고 있다.

‘테넷’은 ‘다크 나이트’ ‘인셉션’ ‘인터스텔라’ 등으로 세계적으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놀런 감독의 신작인 데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 개봉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여서 개봉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3차 세계대전을 막기 위해 미래의 공격에 맞서 현재 진행 중인 과거를 바꾸는 이야기’라는 알쏭달쏭한 줄거리 외엔 알려진 내용이 거의 없어 궁금증을 더했다.

영화는 시작부터 관객의 집중을 요한다. 우크라이나의 오페라 극장에 무장 테러리스트들이 들이닥치자 이를 진입하려는 우크라이나 부대 사이로 신분을 위장한 주인공 ‘주도자(The Protagonist)’가 뛰어들어 임무를 수행한다. 대사든 자막으로든 어떤 설명도 없어 누가 뭘 하는지, 무엇을 위해 뛰는지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3차 세계대전을 막아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떠안게 된 주도자(존 데이비드 워싱턴)는 조직의 연구원에게 ‘인버전’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핵분열의 역복사로 물질의 엔트로피가 반대로 향하는 현상. 영상을 거꾸로 재생하면 시간이 반대로 흘러 사건이 시간을 거슬러 진행되는 것처럼, 인버전이 된 물질은 시간을 역행해 움직인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주인공에게 연구원은 이렇게 말한다.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느끼세요.”

영화는 갈수록 관객을 미궁 속으로 밀어 넣는다. 인버전 된 탄환을 판매한 것으로 추정되는 무기거래상 싱을 만나러 인도에 간 주인공은 동료 요원 닐(로버트 패틴슨)을 만나고, 주인공은 싱과 함께 있던 비밀조직 '테넷'의 일원인 프리야에게서 러시아 출신 갑부 사토르(케네스 브래너)가 미래와 소통하며 위험한 일을 꾸미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사토르의 목표는 오페라 극장에서 우크라이나 보안국의 손에 들어간 핵물질 플루토늄 241을 차지하는 것. 주도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사토르와 그의 아내이나 미술품 감정사인 캣(엘리자베스 데비키)에게 접근한다.

영화 '테넷',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영화 '테넷',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테넷’은 ‘인셉션’에 ‘007’ 시리즈 같은 스파이물을 접목한 뒤 놀런 감독의 또다른 전작들인 ‘메멘토’ ‘인터스텔라’ ‘덩케르크’ 같은 영화를 양념으로 더한 것 같은 작품이다. 영화의 실제 주인공도 놀런 감독이 천착해 온 ‘시간’이다. 여기서 그는 기존의 타임머신, 시간여행 개념과는 전혀 다른 ‘시간역행’을 선보인다. 20년간 발전시킨 아이디어를 토대로 시나리오 작성에만 6년에 걸렸는데, 감독 스스로 “내가 만든 영화 중 가장 야심 찬 영화”라고 말했을 정도다.

‘테넷’은 단서들을 잔뜩 던져준 채 많은 비밀을 감추고 있어 맥락을 놓치지 않으려면 시종일관 대사 한마디, 소품 하나에도 집중해서 봐야 하는 영화다. 장애물이 적지 않다. 시간 순으로 흘러가던 사건이 때로는 역으로 진행되며 이미 일어난 사건과 겹치고, 과거 시점에서 다시 순차적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실제 비행기와 대규모 공항 세트를 충돌시키는 등 눈이 휘둥그래질 만한 액션 신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럴 때도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봐야 한다. 현재와 과거, 순행과 역행, 원인과 결과를 정확히 구분하지 않으면 머리 속의 줄거리가 뒤죽박죽 엉키기 때문이다. 영화가 매우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유인 동시에 N차 관람이 요구되는 이유다.

역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가운데 가장 난해한 영화 중 하나로 남을 만한 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해외에서도 엇갈린다. 영국 일간 텔레그라프는 “놀런의 스펙터클 액션 영화는 우리를 다시 극장으로 불러들이기에 완벽하다"라며 별 5개 만점을 줬다. 반면 또 다른 영국 일간 가디언은 별 5개 만점에 2개를 주며 “관객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유사과학에 대해 고집스럽게 설명하는 이 영화에는 뭔가 거슬리는 점이 있다”고 평했다.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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