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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만 국민 이끄는 하드캐리 팀장님 '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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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만 국민 이끄는 하드캐리 팀장님 '정.은.경'

입력
2020.08.25 04:30
수정
2020.08.25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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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뉴구세요?]
"청개구리 팀원들 끌고 가는 고뇌하는 리더 떠올라"
제2대유행 눈앞...비협조ㆍ억측 속에서 단호함 유지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질병관리본부장)이 21일 오후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본부에서 코로나19 국내 발생 현황 및 확진 환자 중간조사 결과 등 정례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질병관리본부장)이 21일 오후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본부에서 코로나19 국내 발생 현황 및 확진 환자 중간조사 결과 등 정례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5,000만 명의 팀원을 '하드캐리(hard carryㆍ중요한 게임에서 팀을 승리로 이끌거나 크게 활약하는 일)' 해야 하는 팀프로젝트하는 팀장 같다."

수도권 교회발(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세가 심상치 않은 가운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중대본) 본부장을 두고 나온 우스갯소리입니다. 물론 이 말 속엔 정 본부장을 향한 걱정과 응원이 묻어 있죠.

코로나19가 국내외를 뒤흔든 지 7개월이 지났지만 하루 신규 확진자가 400명에 육박(23일 0시 기준 398명 확진)하는 등 2차 대유행의 불씨가 사그라들지 않고 있습니다. 국민 모두가 이 사태를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겠지만 가장 답답한 것은 다름 아닌 정 본부장이겠죠.

늘 차분한 모습만을 보였던 정 본부장도 오늘(24일)만큼은 조금 더 단호한 목소리를 냈습니다. 최근 코로나19 검사 과정에서 확진자 수를 조정했거나 유독 보수단체만을 대상으로 검사를 많이 한 게 아니냐는 일부의 의혹 제기가 나온 겁니다.

정 본부장은 "방역당국은 어떠한 눈속임, 차별 없이 코로나19 극복이라는 원칙만 갖고 접근했다"며 "검사를 조정하는 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있을 수도 없다"고 말한 건데요. 그는 "그러한 사안으로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한다면 단호하게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말 안 듣는 국민들 '멱살 끌고 가며' 간절히 호소

이성적이고 막힘 없는 설명으로 국민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정은경 본부장. 하지만 하루하루 수척해지는 낯빛과 늘어나는 정수리 언저리의 흰 머리를 보고 있자면 "혼자서 팀프로젝트를 끌고 가는 '멱살 캐리' 팀장 같다"는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멱살 캐리'란 사람들의 멱살을 잡고 팀에서 활약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 널리 쓰입니다.

21일 정 본부장은 40분 넘게 진행된 정례브리핑에서 "이번 주말에는 안전한 집에 머물러 주기를 부탁드린다"는 말을 다섯 번이나 반복했습니다. 광화문 집회발(發) 코로나19 확산으로 전국 곳곳에 무더기 감염이 속출하자 그는 "전국적 유행 확산이 매우 우려되고 있는 엄중한 상황"이라며 이 같이 말했습니다.

하지만 간곡한 호소에도 말 듣지 않은 국민들은 많았죠. 스타벅스 파주 야당점에서 4차 감염까지 이어지면서 24일 기준 64명이 확진됐음에도 카페 내 '노마스크'족은 여전하고요. 폐장한 해수욕장을 피해 계곡 등 '감시의 사각지대'로 여행을 떠난 이들도 많았습니다. 일부이긴 하지만 전국 곳곳에서 하지 말라는 걸 굳이 꼭 하는 '청개구리' 같은 사람들은 여전하죠.


19일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스타벅스 파주야당역점에 휴점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뉴시스

19일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스타벅스 파주야당역점에 휴점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뉴시스


팀장의 간절한 호소에도 말을 듣지 않는 '5,000만 팀원'들의 모습. 어쩐지 낯설지가 않습니다. 6개월 전인 2월 18일, 대구의 신천지 신도인 31번 환자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뒤 신천지 집회를 중심으로 한 폭발적 집단 감염이 이어졌을 때도 이같은 모습이 나온 바 있습니다.

2월 22일. 정 본부장은 "신천지 교회의 모든 신도들은 가능한 한 최대한 집에 머물고 외출을 자제해달라"며 "주말에 종교행사나 소규모 모임 등은 자제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큰 바람이었을까요? 당시 명성교회, 소망교회, 사랑의교회 등 대형교회 일부는 대면 예배를 강행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2월 26일 문재인 대통령은 "(정 본부장이) 조금 허탈하지 않을까, 보통 이런 상황이면 맥이 빠지는데"라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5,000만 국민과 팀프로젝트를 해야 하는 대통령의 애틋한 마음이 '보건 사령탑'에게 전해졌을까요.

대통령은 '애틋한 마음' 드러냈는데 국민들은…

코로나19 확산 국면이 조금 잠잠해져 갔던 4, 5월에도 '5,000만 팀원'들은 팀장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4월 29일부터 5월 5일까지 일주일 동안 이어진 황금연휴 기간 제주에는 무려 19만6,000명의 관광객이 찾아 갔습니다. 분명 4월 24일 정 본부장이 "코로나19는 오늘도 현장에서 계속되는 현재진행형 위험"이라며 "만약 사회적 거리두기가 느슨해진다면 언제든 코로나19 유행은 언제든 재발하거나 폭발할 수 있는 재난 상황임을 같이 인식해 달라"고 강조했는데도 말이죠.

결과적으로 정 본부장의 호소는 물거품이 됐습니다. 당시 황금연휴에 '이태원발 코로나 '가 발생한 겁니다. 이태원발 첫 확진자인 용인 66번 환자가 5월 1일 밤 12시부터 2일 사이에 클럽 5곳을 돌아다니면서 전국에 비상이 다시 한번 걸렸습니다. 이정도면 거의 함께 프로젝트를 해야 하는 팀원 한 명이 잠수를 탄 것을 훨씬 넘어섰다고 볼 수 있겠죠.

8월에도 이같은 모습은 재현됐습니다. 7월 31일 정 본부장은 "8월 휴가철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여행지, 해변, 캠핑장, 유흥시설, 식당과 카페에서는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 방역수칙을 준수해 주실 것을 거듭 당부드린다"고 강조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15일 광화문 광장에는 보수단체 회원 등 2만여 명이 운집했고, 13일~17일 21만3,000여 명이 제주도를 방문했습니다. 사랑제일교회발 감염자가 꾸준히 늘고 있음에도 24일 경기도에 따르면 지난 주말 경기도 내에서만 교회 424곳이 대면예배를 강행했고요. 열심히 팀을 이끌어온 팀장의 마음은 헛헛하기만 할 것 같네요.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정부 및 여당 규탄 관련 집회에서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정부 및 여당 규탄 관련 집회에서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프랑스 대통령은 국민 질타, 뉴욕주지사는 대통령 저격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 국민들에 속이 타들어 갈 법도 합니다만, 정은경 본부장은 늘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국민들 앞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좀 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포커 페이스'라 불릴만 하죠.

다른 나라 '팀장'들은 어떨까요? 3월 15일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전국 다중이용시설 폐쇄 조치를 내린 배경을 매우 감정적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는 "국민들에게 '더 이상 카페에 앉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사는 것은 스스로를 서로에게 노출시키는 바보 같은 짓'이라는 것을 말한 것"이라며 국민들을 공개 저격한 것이죠.

3월 15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국민들에 '바보 같다'며 질타하고 있다. 프로그램티비 홈페이지 캡처.

3월 15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국민들에 '바보 같다'며 질타하고 있다. 프로그램티비 홈페이지 캡처.

프랑스에는 마크롱 대통령이 있다면 미국에는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州)지사가 있습니다. 다만 쿠오모 주지사는 국민이 아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화가 잔뜩 났습니다. 쿠오모 주지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의료용품 국유화, 군 동원 등 각종 요구사항을 거침없이 내뱉으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습니다.


앤드류 쿠오모 미국 뉴욕주지사가 지난달 6일 뉴욕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앤드류 쿠오모 미국 뉴욕주지사가 지난달 6일 뉴욕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어떻게 보면 답답한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 이들의 모습이 보통 사람의 모습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정 팀장'이 이런 불같은 모습을 나타내기 전에 하루빨리 코로나19가 끝나기를 기원해봅니다. 그럴려면 5,000만 팀원들이 팀장의 말을 잘 들어야 겠습니다.


손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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