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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관계 환상적"... 트럼프 기분 맞추는 '김정은식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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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관계 환상적"... 트럼프 기분 맞추는 '김정은식 외교'

입력
2020.09.14 04:3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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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우드워드 저서에 공개된 북미 정상 친서 분석?
직설적이고 원색적인 북한 외무성 표현과 딴판

2019년 6월 '남북미 판문점 회동' 당시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9년 6월 '남북미 판문점 회동' 당시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각하처럼 영향력 있고 뛰어난 정치가와 좋은 관계를 맺게 돼 기쁘다." (2018년 7월30일)

"(2차 북미 정상회담 성과를 위해) 각하께서 다시 한 번 위대한 결단력과 리더십을 보여주길 바란다."(2018년 12월25일)

"우리 우정은 북미 관계를 이끄는 마법의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2019년 6월1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2년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한껏 치켜세웠다. '최고 존엄'인 김 위원장 스스로는 다소 낮추면서다.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사기 위한 절절한 표현도 자주 등장한다. 솔직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과시하던 공개 석상의 김 위원장과 서신 속 김 위원장이 딴판이다.

북한이 북미 비핵화 협상에서 '새로운 제안'으로 미국을 돌려세우기보단 '브로맨스'에 기대 대북 제재를 풀어 보려 했던 셈이다. 기분파인 트럼프 대통령을 어떻게 다뤄야할지를 파악하고 대처한 김정은식 실용 외교일 수도 있다.

38세 나이차 무색한 절절한 '구애'

12일(현지시간) 미 CNN 방송과 AFP통신 등에 따르면, 조만간 미국에서 출간되는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WP) 부편집인의 책 ‘격노’엔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부터 이듬해까지 주고 받은 서신이 담겨 있다.

공개된 편지를 보면, 36세인 김 위원장은 74세인 트럼프 대통령과의 '친분 쌓기'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트럼프 대통령 같은 훌륭한 분과 관계를 맺어 영광스럽다"는 미사여구가 대부분의 편지에 반복적으로 나온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를 '판타지 영화' '마법의 힘' '환상적인 순간' 등 다소 과장된 표현으로 포장하기도 했다. 북한 외무성이 미국을 겨냥해 쏟아낸 직설적이고 원색적인 비판과 한참 거리가 있었다. 과거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나는 사랑에 빠졌다"며 '브로맨스'를 자랑했던 게 '없던 일'은 아닌 셈이다.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난 뒤, 김 위원장은 대내적으로 자력갱생의 자신감을 과시했다. 그런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선 변함 없는 '비밀 구애 작전'을 펼친 것이다. 김 위원장은 2019년 6월에 보낸 친서에선 "당신을 향한 나의 존경심은 확고하다, 우리가 다시 마주 앉을 날이 조만간 올 것으로 믿는다"며 3차 정상회담에 대한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황해북도 은파군 대청리 일대 피해복구 건설현장을 현지지도한 모습을 13일 북한 조선중앙TV가 공개했다. 평양=조선중앙TV 뉴시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황해북도 은파군 대청리 일대 피해복구 건설현장을 현지지도한 모습을 13일 북한 조선중앙TV가 공개했다. 평양=조선중앙TV 뉴시스



성과 위한 '전략'… 느닷없는 친서 공개엔 '부글부글'?

김 위원장의 '과장된 화법'은 어쩔 수 없는 저자세라기 보다는 계산된 전략이다. 쇼맨십에 능하고 활달한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을 고려한 외교 전술이라는 얘기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13일 "김 위원장은 북미 비핵화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고 가려면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 유지가 필수적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라며 "젊은 지도자인 김 위원장이 과거 북한 외교 방식보다 유연하게 대응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두 정상의 '브로맨스'가 역설적으로 북한의 외교 전략 부재를 드러냈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기분을 맞춰 주려 한 것은 북미 실무협상 대신 정상 간 담판으로 승부를 보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김 위원장의 전략은 통하지 않았다. 통일부 전직 고위관계자는 "북미 비핵화 협상이 실무단계에서 어그러질 때마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낸 패턴이 반복된 것 같다"며 "특히 북한이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실무 단계를 걷어차고 트럼프 대통령만 바라본 게 안타깝다"고 평가했다.

이번 친서 공개 자체가 북미 관계에 변수가 될 수 있다. 국가 정상 간 친서를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외교적 결례다. '권위주의적 신비주의'를 고수하는 김 위원장으로선 더욱 타격이다. 다만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바라고 있는 만큼, 당장 수위 높은 비난 공세에 나설 가능성은 적다는 관측이다. 양무진 교수는 "미국 대선 이후 북한이 내밀 '청구서'에 이번 친서 공개 건에 대한 항의도 포함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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