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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은 진짜 고기를 안 먹어야 하는 걸까

입력
2020.09.23 15: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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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현
자현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불교의 승려라면 당연히 육식은 금지될 것이라고 생각되곤 한다. 마치 힌두교에서는 소가 금지식이고 이슬람에서는 돼지가 금지식인 것처럼 말이다. 과연 그럴까? 그러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서유기'로 유명한 삼장법사 현장은 그의 기행문인 '대당서역기'에서, 당시 인도불교가 육식의 유무를 가지고 소승불교와 대승불교로 분리되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즉 소승에서는 육식이 정당화되었다는 말이다.

실제로 소승을 계승한 남방불교인 태국·미얀마·스리랑카 등에서는, 승려가 해당 동물의 죽음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으면 육식은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또 밀교인 티베트불교에서도 육식은 허용된다. 즉 육식 금지는 모든 승려의 보편원칙이 아닌, 한국·중국·대만·베트남의 대승불교에만 적용되는 특수 원칙인 셈이다.

어떤 분들은 육식을 하면 생각이 혼탁해지므로, 수행자는 육식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 주위를 둘러 보면, 초식동물이 육식동물에 비해 지능이 낮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초식동물의 천진함이 수행자의 미덕이 될 수는 없지 않을까?!

사실 육식과 수행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또 불교 육식 문제의 키워드는 육식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살생이라는 '생명'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때문에 붓다는 자신과 관계없는 죽음의 고기는 승려들이 섭취해도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원칙을 제정했다. 즉 생명 존중의 관점에서 육식의 문제를 대하고 있는 것이다.

붓다는 '법구경'에서 "모든 생명 있는 존재는 폭력과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생명을 함부로 죽이거나 죽이게 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여기에서의 '모든 생명'에는 인간만이 아닌 동물도 포함된다.

인도 문화는 윤회론을 배경으로 한다. 윤회론을 상정하게 되면, 인간과 동물 간에는 현상적인 현격한 차이가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이것은 본질적인 차이일 수 없다. 때문에 동물윤리와 같은 생명 존중의 광범위한 구조가 존재하게 된다. 자이나교도인 간디가 비폭력과 불살생을 주장한 것도 이와 같은 윤회론에 기초한 인도 문화의 전통 관념 때문이다.

윤회론을 인정하지 않는 기독교나 이슬람에서는 인간과 동물의 본질을 완전히 다르게 구분한다. 때문에 동물에게는 영혼이 없으며 당연히 천국에도 갈 수 없다. 이러한 관점은 서구에서 가축이 철저하게 식용과 생산의 효율성을 위해 수단화될 수 있도록 한다. 즉 존중받을 수 있는 생명의 범위가 서로 다르게 작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불교 중 대승에서만 육식 금지의 노선을 취한 것일까? 그것은 대승불교가 살생의 문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즉 "먹는 사람이 있으므로 죽이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광의적인 해석인 셈이다.

조선 초의 함허는 성균관에서 '맹자'를 보다가 "군자는 짐승의 죽음을 측은히 여겨 푸줏간을 멀리한다"는 구절을 보고는 깊은 고뇌에 휩싸였다. 그는 군자가 진정한 자비의 인격체라면,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육식을 끊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함허가 출가하는 한 요인이 된다. 여기에서 맹자의 태도가 소승적이라면, 함허는 대승적인 인간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사실 이 문제는 현대의 베지테리안 안에도 존재한다. 채식을 하는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여기에는 분명 살생이라는 생명의 문제 역시 중요한 한 축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모든 육류를 거부하는 비건과 달리, 유제품의 섭취를 인정하는 락토 베지테리안이나 생선과 해산물은 용인하는 페스코 베지테리안 등의 논점은, 인도와 불교에는 일찍부터 존재했던 측면들이다. 즉 여기에는 "어디까지를 생명, 또는 생명의 침탈로 볼 것이냐?"의 문제가 기저에 존재하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육식의 문제는 반려동물의 범위와 동물권의 신장으로 인해, 또 다른 새로운 논점으로 옮겨붙고 있다. 이는 동물의 영혼을 인정하지 않는 유목의 기독교 문화권에서 베지테리안이 더 크게 대두하는 것을 통해서 단적인 판단이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육식의 문제는 붓다가 제기한 것처럼 생명의 문제와 뗄 수 없는 숙명의 얽힘을 내포하고 있다고 하겠다.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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