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넷플릭스 '에놀라 홈즈'
편집자주
극장 대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작품을 김봉석 문화평론가와 윤이나 칼럼니스트가 번갈아가며 소개합니다.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 에 연재됩니다. 한국일보>
홈즈 가(家) 이야기를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서두 같기는 하지만, 나는 홈즈보다 뤼팽을 더 좋아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이 사실을 입 밖으로 소리내 말하는 걸 꺼리게 됐다. 이 말을 들으면 십중팔구는 미스터리 탐정 장르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돌려주었기 때문이다.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가 얼마나 훌륭한지 잘 알고 있고 책 자체만 보면 나 역시도 홈즈의 이야기를 더 좋아하는 편이지만, 캐릭터로써 뤼팽이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고 항변하면 상황은 더 나빠졌다.
일단 아르센 뤼팽은 탐정이 아니라 괴도이고 그의 활약 대부분은 추리가 아닌 변신 기술과 타고난 외모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므로 당신이 좋아하는 건 추리 소설이 아니라 잘생긴 프랑스 도둑일 뿐이라는 말을, 돌리지도 않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홈즈가 더 뛰어난 탐정인가 뤼팽이 더 신출귀몰한 도둑인가를 놓고 싸우던 프랑스와 영국의 추리소설 독자가 아닌데도, 그런 방식으로 껄끄럽게 나는 홈즈와 멀어졌다.
많은 해외 드라마 팬들이 그렇겠지만,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홈즈를 연기한 영국 BBC의 ‘셜록’ 시리즈 덕분에 뒤늦게 홈즈와 다시 가까워질 수 있었다. 하지만 시즌을 거듭하며 실망스러워졌던 시리즈는 나에게 오직 셜록 홈즈에게 여동생이 있었다는 설정만 남기고 마무리되었다.
이 시리즈에서는 시즌4에 등장해, 남자 형제들 이상의 뛰어난 지능을 가지고 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유폐되어 살아가는 인물로 그려진다. 유러스 홈즈라는 그의 이름을 뚜렷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셜록과 비슷한 능력을 가진 여성이 있다면 그 여성의 이야기는 어떤 방식으로 다르고 또 새로울지를 상상해 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나보다, 그리고 BBC의 ‘셜록’보다도 앞서 같은 상상을 했던 작가가 있었다. 그가 쓴 청소년 소설이 바로 ‘에놀라 홈즈’ 연작이다.
넷플릭스의 ‘에놀라 홈즈’는 이 연작 소설 중 1편인 ‘사라진 후작’ 편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다. BBC ‘셜록’과는 달리 코난 도일의 원작 그대로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여성인 주인공에게 지금보다 더 많은 제약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몸을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조이는 고래등뼈 코르셋으로부터, 여자다운 것으로 여겨졌던 모든 규제와 교육의 방식, 그리고 남성에게 소속되고 의존되어 살아가게 만들어진 사회 시스템까지, 여성을 억압하는 구조는 촘촘하다.
하지만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에놀라(밀리 바비 브라운)는 엄마(헬레나 본 햄 카터)에게서 또래의 다른 여성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교육을 받았고, 그래서 다른 세상을 알고 또 상상할 수 있었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에놀라가 열여섯 번째 생일을 맞이한 날, 엄마가 사라진다. 에놀라는 고향 집을 떠나 런던에 살고있는 오빠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큰오빠 마이크로프트(샘 클라플린)는 에놀라를 엄격한 신부 수업 기숙학교에 보낼 생각만 하고 셜록(헨리 카빌)은 방관한다.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슈퍼맨과 흡사한 모습으로 등장한 낯선 외모의 셜록이 아니기 때문에, 영화는 자신의 힘으로 엄마를 찾기 위해 런던으로 떠난 에놀라에게 집중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장르는 추리라기보다는 모험에 가깝다. 벌어진 사건의 배후나 범인보다는 에놀라가 만나게 될 새로운 세계에서의 성장과 발견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제일 통쾌한 부분은 나누어진 조각이 한 데 모여 퍼즐을 완성시키는 순간이 아니라, 에놀라가 실제로 몸을 부딪치며 남자들의 세계에 싸움을 걸고 마침내 이기는 순간이다. 성인 남성과 맨 손으로 대결하고, 온 힘을 다해 덤비는 십 대 소녀 에놀라는 대체로 쇼파에 앉은 채로 사건을 해결하길 선호하는 오빠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인물이다. 에놀라는 세상 속으로 거침없이 뛰어들고 직접 부딪힌다. 그렇게 살아남는 과정에서 엄마에게 배웠던 모든 삶의 지식이 삶에 적용되는 것을 경험한다. 엄마는 에놀라가 엄마가 없더라도 혼자 살아갈 수 있는 법을 가르쳐왔던 것이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삶의 기술로 위험한 상황에서 자신의 힘으로 빠져나올 수 있는 능력, 싸움의 기술이 등장할 때 영화는 더욱 특별해진다. 발로 뛰고, 발로 차는 에놀라와 함께 격투기를 배우고 몸을 단련하며 세상을 바꿀 준비를 하는 19세기의 여성들을 만나는 경험 역시 특별하다.
19세기 런던에는 불평등과 차별뿐 아니라 거기 맞서는 여성들이 있었다. 이들을 지켜보며 이 여성들의 싸움이 정말로 살과 살이 닿고, 물리적 위협에 처하는 싸움이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것이다. 물론 가장 좋은 점은, 에놀라가 이긴다는 것이다.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긴 이름과 선거법 개정인 투표권 모두를 가진 소년 후작(루이스 파트리지)의 이야기는 ‘에놀라 홈즈’의 또 다른 한 축이다. 영화는 이 부분에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에놀라에게 주인공이자 영웅의 서사를 모두 선사한다. 에놀라는 위험에 처한 소년을 구하고, 중요한 순간에 자신을 희생해 소년을 돕고, 소년 대신 싸우고, 이긴다. 소년 중심의 영웅 성장 서사를 고스란히 뒤집은 이 관계의 구도는, 밀리 바비 브라운의 강단 있는 연기까지 힘입어 더없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에놀라에게 모든 상황을 이끄는 역할이 부여되었음에도 이들의 성별과 계급으로 인해 둘의 마지막 선택은 차이가 나게 된다.
후작은 에놀라와 함께 모험을 통해 세상을 배운 뒤 다시 대저택으로 돌아가 자신에게 세상이 이미 부여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으로 세상을 바꾸는 데 힘을 보탠다. 하지만 에놀라는 세상을 바꿀 가능성이 있는 정치, 투표의 권한이 남성에게만 있었고 그나마도 최상위 권력층에게는 대물림이 되었던 시대의 집, 가부장의 권력이 작동하는 공간으로는 돌아가지 않는다. 에놀라는 혼자 살아가기로 한다. 많은 성장 서사에서 남성의 성장은 귀환으로, 여성의 성장은 탈출과 홀로서기로 마무리되는 패턴은 영화 밖에서도 다시 곱씹어 볼 만한 주제다.
이 맥락 안에서 엄마의 동료이자 동생 에놀라의 주짓수 선생님이기도 했던 여성이 셜록 홈즈와 나누는 대화 장면은 에놀라가 등장하지 않음에도 특별히 언급할 필요가 있다. BBC ‘셜록’의 극장판인 ‘셜록: 유령신부’는 같은 주제인 19세기 영국의 여성 인권운동을 다룬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비밀을 밝혀낸 셜록은 여자들을 뒤에 병풍처럼 세워두고 여성 인권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다. 그때 셜록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다른 얼굴의 셜록에게 대신 쏘아붙일 때의 통쾌함이란. “당신은 권력 없이 사는 인생이 어떤 건지 몰라요. 당신은 정치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죠. 왜냐하면 당신은 세상을 바꾸는 데 아무런 관심이 없기 때문이에요. 본인에겐 이미 딱 좋은 세상이라서.”
배경이 될 생각이 없는 여성들, 맞서 싸우기로 한 여성들에게는 목소리가 있다. 세상은 누가 바꾸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꾸는 것임을 안 여성들을 가둘 수는 없다. 이야기는 이제 시작됐을 뿐이다. 앞서 언급한 원작 소설은 총 6권이다. 다들 알겠지만 이 문장의 의미는, 아직 에놀라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다음 시즌의 제작 확정 소식을 기다릴 작품이 넷플릭스에 하나 더 늘어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에놀라라는 독특한 이름의 뜻에 관해 이야기 할 필요가 있겠다. 영어단어 ‘Alone’을 거꾸로 읽으면 에놀라가 된다. 혼자. 흔히들 혼동하지만, 혼자라는 것은 외롭다는 말과 동의어가 아니다. ‘에놀라 홈즈’는 누군가의 배우자가 되기 위한 준비가 아니라 읽고, 보고, 듣고, 배우고, 운동하고, 싸울 준비를 할 때, 우리는 혼자의 힘으로 설 수 있고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한다.
“내 인생은 온전히 나의 거야. 우리의 미래는 오직 우리에게 달려있어.” 이렇게 정직하고 필요한 메시지를 정확한 대상, 자기 자신과 같은 젊은 여성들에게 정직하게 전달하는 영화와 인물을 사랑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홈즈와 뤼팽을 비교하는 질문을 받거나, 이 질문이 너무 낡아버린 것이라면 좋아하는 탐정 캐릭터 또는 좋아하는 십 대 여성 캐릭터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이렇게 말하기로 했다. “저는 홈즈를 좋아합니다. 에놀라 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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