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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문 없는 기차역은 공포"... 시민 호소에 응답한 국내 중소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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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문 없는 기차역은 공포"... 시민 호소에 응답한 국내 중소기업

입력
2020.09.29 04:3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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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D하이테크, 세계 최초 로프스크린도어 상용화
국내외 역에서 시범 운영... 기능, 안전성 입증
작년 불가리아와 계약에 이어 세계로 수출 타진

한성무 SKD 하이테크 대표이사가 전남 광양 공장에 설치된 로프스크린도어(RSD) 앞에서 제품을 설명하고 있다. SKD 하이테크 제공

한성무 SKD 하이테크 대표이사가 전남 광양 공장에 설치된 로프스크린도어(RSD) 앞에서 제품을 설명하고 있다. SKD 하이테크 제공


2003년 2월, 전 국민을 충격에 빠트린 대구지하철 참사를 보며 전남 광양에 있는 중소기업 SKD 하이테크의 한성무(60) 대표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당시는 국내 지하철역에 막 스크린도어(안전문)가 설치되던 시점이었다. 그런데 지하철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두꺼운 강화유리로 만들어진 안전문이 승객 대피를 방해해 오히려 더 큰 참사로 이어질 거란 우려가 한 대표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며칠 더 고민하던 그는 좀 더 안전하고 편리한 안전문을 직접 개발하기로 결심했다.

그로부터 17년 후,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안전문이 탄생했다. SKD 하이테크가 세계 최초로 개발해 상용화에 성공한 '로프스크린도어(RSD)'다. RSD는 우리가 주변 지하철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플랫폼스크린도어(PSD)'의 각종 단점을 보완한 제품이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불가리아의 바실레브스키, 오팔첸스카역에 최근 SKD 하이테크가 설치한 RSD가 운영을 시작했다. SKD 하이테크는 지난 해 9월 불가리아 소피아메트로폴리탄과 12개 역에 RSD를 공급하는 1,100만 달러(130억원) 계약을 했는데 이 중 두 개 역에 먼저 RSD를 설치했다. 나머지 10개 역에도 차례로 RSD가 들어설 예정이다. 불가리아 메인 뉴스에서 RSD를 직접 소개하는 등 현지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는 전언이다.


불가리아 바실레브스키와 오팔첸스카 역에 설치된 RSD. SKD 하이테크 제공

불가리아 바실레브스키와 오팔첸스카 역에 설치된 RSD. SKD 하이테크 제공



기존 폐쇄형 스크린도어(PSD, 위)는 다차종 열차가 통과하는 승강장에서는 무용지물이지만 로프스크린도어(RSD, 아래)는 아무 제약 없이 설치 가능하다. SKD 하이테크 제공

기존 폐쇄형 스크린도어(PSD, 위)는 다차종 열차가 통과하는 승강장에서는 무용지물이지만 로프스크린도어(RSD, 아래)는 아무 제약 없이 설치 가능하다. SKD 하이테크 제공


SKD 하이테크가 개발한 RSD는 PSD와 달리 어느 승강장이든 설치가 가능하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PSD는 열차 출입문에 맞춰 문이 좌우로 열리기 때문에 출입문 위치가 서로 다른 여러 종류의 열차가 지나가는 승강장에선 무용지물이다. 국내에도 KTX와 새마을호, 무궁화호 등이 한 승강장을 통과하는 일반철도 역에는 안전문 없는 곳이 많다. 반면 RSD는 여러 가닥의 로프가 천장에서 바닥으로 오르내리는 방식이라 열차 종류와 무관하게 설치할 수 있다.

또 폐쇄형인 PSD의 경우 안전문 바깥과 열차 사이에 사람이 끼어 다치거나 사망하는 사고가 종종 발생하는데 개폐형인 RSD는 이런 위험성도 최소화했다.

강철 재질로 된 RSD 로프는 단단하면서도 유연하다. 승강장에서 강한 힘을 가하면 탄성에 의해 오히려 안쪽으로 튕겨 지하철 선로로 떨어지는 사고를 방지한다. 한성무 대표는 "복싱 경기장 링과 비슷한 원리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지하철 화재 등 위급 시에는 닫혀 있는 RSD를 성인 남성이 들 수 있는 무게라 탈출 공간도 쉽게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충남 논산역에서 시범 운영됐던 RSD. SKD 하이테크 제공

충남 논산역에서 시범 운영됐던 RSD. SKD 하이테크 제공


SKD 하이테크는 2005년 RSD 초창기 제품을 선보인 뒤 꾸준히 기능을 향상시켜 왔다. 이후 15년 간 충남 논산역과 광주 녹동역, 대구 문양역을 비롯해 '철도강국' 일본 도쿄의 츠키미노역과 스웨덴 스톡홀롬의 아케쇼브역 등 국내외에 제품을 시범 설치해 안전성을 입증 받았다. SKD 하이테크는 지난 해 불가리아와 정식 공급 계약에 이어 일본, 프랑스, 영국, 스웨덴, 대만 등과도 현재 수출 계약을 추진 중이다.

지금까지 들어간 RSD 개발비만 120억원. 중소기업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금액과 시간을 투자했다. 사실상 2000년 회사를 창업한 뒤 벌어들인 이익금 전부를 쏟아 부었지만 한 대표는 "국민 생명을 보호하는 기술에 투자한 거라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했다.

그는 논산역에서 RSD를 시범 운영할 때 이용객에게 받았던 설문지에 적힌 절절한 호소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논산역을 자주 이용하는 3살, 5살 두 아이 엄마입니다. 안전문이 없는 기차역은 너무 공포스럽고 아이 가진 부모에게 지옥과도 같습니다. 서울에서 지하철 타는 국민 목숨만 소중합니까? 모든 기차역에 안전문을 설치해주세요. 국가에 간곡히 바랍니다.'

한 대표는 이 설문 내용을 소개하며 "국민 안전을 위해 어떤 구애도 받지 않고 전국 모든 승강장에 안전문을 설치할 수 있는 시대가 빨리 와야 한다"고 다시 한 번 힘줘 말했다.

윤태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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