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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고문’ 태도 바꾼 국정원...인혁당 피해자 구제길 열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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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빚고문’ 태도 바꾼 국정원...인혁당 피해자 구제길 열리나

입력
2020.11.20 04: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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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한국일보] 1974년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에 연루돼 8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이창복(오른쪽)씨와 아들 송우(필명)씨가 올해 1월 경기 양평군의 이씨 자택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양평=왕태석 선임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1974년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에 연루돼 8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이창복(오른쪽)씨와 아들 송우(필명)씨가 올해 1월 경기 양평군의 이씨 자택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양평=왕태석 선임기자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인혁당 사건) 피해자들에게 이미 지급했던 배상금 중 일부를 돌려받는 과정에서 연리 20% 이자를 적용해 국가가 ‘빚 고문’을 하고 있다는 지적(본보 1월 11일 자 1, 13면9월 7일 자 12면)과 관련, "돈을 돌려받겠다"는 입장을 고수해 온 국가정보원이 정부와 국회의 해법 모색에 화답하는 쪽으로 입장을 틀었다. 갑작스런 대법원의 판례 변경과 과도한 지연이자 탓에 원래 받았던 배상금에다 수억원을 더한 액수를 국가에 반환해야 할 처지에 몰렸던 피해자들이 '빚의 굴레'를 벗을 길이 열릴지 주목된다.

19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9부(부장 손철우)는 이날 선고 예정이었던 인혁당 피해자 이창복(87)씨 사건의 항소심 선고를 미루고, 기일을 나중에 다시 잡기로 했다. 앞서 이 소송의 피고 측인 국정원이 이달 5일 정부법무공단을 통해 "판결 이외의 해법을 모색 중"이라며 선고 연기를 요청했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선고가 미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 소송은 국가에 돌려줘야 할 반환금을 내지 못한 이씨 측이 “자택 강제 경매만은 멈춰 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낸 청구이의소송이다.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빚 고문 사건은 2011년 대법원 판결에서 비롯됐다. 당시 대법원은 “2009년 가지급된 배상금이 과다 책정됐다”면서 이들에게 지급할 국가 배상금의 지연손해금(이자)을 대폭 줄였다. 결국 피해자들은 △항소심 선고 후 미리 받은 돈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에 더해, △곧바로 반환하지 않으면 ‘더 받은’ 금액의 지연이자까지 합한 돈을 돌려줘야 했던 셈이 됐다. 피해자 중 한 명인 이씨 역시 10억9,600만원의 배상금을 일단 받았다가, 이 판결로 4억9,600만원을 도로 토해 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씨가 갚아야 하는 돈은 연 20% 지연이자 때문에 현재 14억원 이상으로 불어난 상태다. ‘배’(배상금)보다 ‘배꼽’(반환금)이 더 커진 것이다.

돈을 갚을 능력이 없는 피해자들은 살던 집까지 빼앗길 상황에 처했지만 ‘채권자’ 국정원은 강제 환수 원칙을 고집했다. 재판부가 올해 6월 “이자는 면제하고, 3년의 유예기간 동안 집을 팔아 원금을 갚도록 하자”는 조정안을 내놓기도 했으나, 국정원은 “환수를 포기하면 배임 행위가 될 수 있다”며 거부했다.

그러나 이번 선고를 앞두고 국정원은 “법무부 등 유관기관과 협의를 통해 사태 해결을 위해 노력 중”이라며 재판부에 먼저 선고 연기를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은 검토 중인 해법으로 △새로 생기는 법무부 산하 ‘화합과 치유를 위한 국가송무심의위원회’(송무심의위) △국회에서 발의된 국가채권 관리법 개정안 등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국가채권관리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국정원이 법원의 조정안을 수용해 인혁당 피해자들의 채무를 감면해 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생긴다. 개정안은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국가의 과오 지급 등으로 예상치 못한 채무를 부담하게 된 경우, 국가가 제반사정을 고려해 빚을 감면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비록 국정원이 선제적으로 ‘채권을 포기한다’는 식의 획기적 태도까지는 아니지만, 정부와 국회의 조정을 수용하겠다는 유연한 입장으로 돌아서면서 이씨뿐 아니라, 또 다른 과거사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의 ‘빚 고문’ 사태가 풀릴 실마리가 생기게 됐다. 안경호 4ㆍ9통일평화재단 사무국장은 “법원 조정안은 (인혁당 피해자들 구제를 위한) 남은 마지막 수단”이라며 “이번 일을 계기로 피해자들에 대한 분쟁이 합리적으로 마무리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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