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넷플릭스 '그 남자의 집'
편집자주
극장 대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작품을 김봉석 문화평론가와 윤이나 칼럼니스트가 번갈아가며 소개합니다.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 에 연재됩니다. 한국일보>
인간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 것일까? 천국과 지옥은 정말 있는 것일까? 착한 일을 하면 천국으로, 나쁜 짓을 하면 지옥으로 간다고들 흔히 말한다. 누군가는 이곳이 지옥이라고도 한다. 누군가는 지구의 어디에 태어나는가, 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나는가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말한다.
십여 년 전, 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 내전 당시 벌어진 일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제국주의 국가들의 횡포, 독재정권의 만행 등이 원인인 시에라리온 내전은 1980년대부터 시작되어 1991년 본격적으로 RUF반군과 대립했고 2000년대 초반이 되어서야 어느 정도 수습이 되었다. 내전 과정에서 20만 명이 넘게 죽었고 25만 명의 여성들이 성적 학대를 받았고 7,000여 명의 소년병들이 존재하며, 4,000명 이상의 사람들의 손과 발이 절단되’었다고 한다.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와 그레그 캠벨의 책 '다이아몬드 잔혹사'를 보면 시에라리온 내전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다.
시에라리온 내전은 RUF반군이 저지른 손발 절단 사건 때문에 더욱 끔찍하게 기억에 남았다. 한 번은 그들이 지원하는 후보가 선거에서 당선되지 않자 마을에 난입하여 남자들의 손목과 발목을 잘라버렸다고 했다. 한 인간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폐인으로 만들어버리는 짓이다. 더 참담한 것은, 10대 초반 소년병에 의해 그런 폭력이 저질러지곤 했다는 것이다. 반군은 10살도 안 된 아이들을 끌고 가서 마약에 취하고, 폭력에 빠져들게 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사건들이 시에라리온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이곳은 지옥이 아닐까? 아니 차라리 지옥이 이곳보다 낫지 않을까?
르완다와 브룬디에서는 부족 간의 내전이 벌어졌다. 벨기에는 식민지 르완다의 통치세력으로 소수인 투치족을 내세워 다수의 후투족을 지배했다. 1962년 독립 후에도 구조는 변하지 않았고 결국 내전이 발생했다. 1993년부터 시작된 내전에서는 결국 투치족이 승리했고 그 과정에서 부족 간의 대학살이 이루어졌다. 인권단체에서는 내전 기간에 100만 명 이상이 살해당했고, 투치족의 70%가 죽었다고 주장한다.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되면서 벌어진 내전처럼, 어제까지 이웃이었던 이들을 잔인하게 살해했다. 우리 부족이 아니니까, 우리 민족이 아니니까.
'그 남자의 집'을 보면서, 르완다 내전이 떠올랐다. 볼과 리얄 마주르 부부는 아프리카에서 영국으로 온 난민이다. 부족 사이에서 벌어지는 학살을 피해 도망쳤고, 바다를 건너다 딸을 잃었다. 아내인 리얄은 두 부족의 상징을 칼로 몸에 새겨 넣었다. 상징이 없으면 상대 부족으로 간주되어 살해당하기 때문에. 둘만 겨우 살아남은 마주르 부부는 심사에서 통과하여 살 집을 얻는다. 지원금을 받지만 아직 일을 할 수 없고, 이사를 갈 수도 없고, 지시받은 대로 따라야 한다. 그래야만 언젠가 영주권을 받게 된다.
벽 곳곳에 구멍이 뚫리고, 바퀴벌레가 득실거리고, 안팎으로 쓰레기가 가득한 집이지만 부부는 만족한다. 처음으로 맞은 평화이고, 다시 태어난 것이고, 새로운 기회가 열리는 땅에 오게 되었다. 지옥에서 벗어나 이제야 인간이 사는 이승으로 온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사는 곳도 그리 평화롭지는 않다. 동네의 흑인 아이들은, 길을 묻는 리얄을 조롱하다가 아프리카로 가 버리라고 조롱한다. 옷을 사러 쇼핑몰에 간 볼을 경비원은 졸졸 쫓아다니며 감시한다. 그들이 직업을 구하게 되면 또 다른 차별이 벌어질 것이다.
'그 남자의 집'은 사회드라마가 아니라 환상적인 호러 스타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마주르 부부는 벽을 쿵쿵 치거나 구멍 안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무엇인가를 본다. 처음에는 쥐나 새가 들어온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점점 과거의 기억과 조우한다. 끔찍한 원혼들을 만난다. 바다에서 죽은 딸과 학살에서 죽어간 이웃들을 보게 된다. 그들은 희생을 원한다. 리얄은 옛이야기를 들려준다. 훌륭하지만 가난한 남자가 집을 갖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강해 남의 것을 빼앗기 시작했다. 강변에 살던 노인의 집을 빼앗았지만, 노인은 밤의 악귀인 아페스였다. 남자가 크고 새로운 집을 지을 때마다 악귀도 함께 머물게 되었다. 그리고 리얄은 덧붙인다. 바다에서 아페스가 우리를 따라왔어.
악령을 만나면서, 부부의 대응방식은 서로 다르다. 볼은 가지고 온 모든 것이 저주받았다며 불태워버린다. 이건 내 집이고, 절대로 뺏기지 않을 것이라 선언한다. 리얄은, 이건 우리 집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들은 유령이 아니라고. 수많은 것을 이미 겪었는데 내가 유령을 두려워할 것 같냐,고 말한다. 소리치고 싸우지만 결국 그들은 함께 한다. 그들이 싸워야 하는 것은 단순한 악령이 아니다. 그들의 과거를 옭아매고 있는, 그들이 지나온 모든 과정의 절망이고, 원한이고, 두려움이다.
볼은 도망치고 싶다. 집을 바꿔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이유를 말하라는 담당 직원의 말에 볼은 답할 수 없다. 악령을 본다고 하면 미쳤다고 생각할 것이다. 정신 이상으로 판단한다면 영주권을 받기 힘들어진다. 결국 볼은 집으로 돌아가고, 이곳에서 살기 위해 싸운다. 자신을 희생할 각오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한 일을. 자신이 저지른 잘못과 과오들을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 마주르 부부가 도망치고 싶어 했던 비밀도.
볼과 리얄 부부는 가해자가 아니다. 누군가에게 폭력을 가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엄청난 야만의 현장에서 도망치다가 아수라장에 휩쓸린 정도다. 하지만 그들은 실수, 잘못을 했고 결국 모든 것은 바다를 건너 따라왔다. '그 남자의 집'은 마주르 부부의 과거를 황량하면서도 절절하게 그려낸다. 작은 식탁에서 밥을 먹던 볼이 홀로 바다 위에 떠 있는 장면으로 바뀌고, 리얄이 집에서 도망치다가 자연스레 마을에서 학살당한 친구들을 만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살기 위해서, 그들이 해야만 했던 과오들이다.
공포 장르에서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밖에서 온 괴물이거나 내면의 악이다. 두 가지가 엮이는 경우도 많다. 끔찍한 폭력을 당하다 보면, 벗어나기 위해 자신도 폭력을 가하거나 누군가 무엇인가를 희생시킨다. 단지 살아남기 위한 행동이었지만 그 역시 죄다. 결국은 과거가 자신을 옥죄고, 심연으로 끌어들인다. 선한 인간은 종종 나쁜 짓을 저지른다. 지금 혹은 미래의 행복을 위하여 기꺼이 눈을 감고, 선뜻 폭력을 휘두른다. 스스로 눈을 뜨고, 늘 지켜보지 않으면 우리는 아주 쉽게 가해자가 된다.
'그 남자의 집'은 단순하게 문제를 파고든다. 그들이, 우리가, 인간이 저지른 최악의 만행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시에라리온과 르완다의 그들이 악마이기 때문에 저지른 학살이 아니다. 그들은 인간이고, 인간은 종종 악마가 된다. 악마에게 유혹당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언제나 악마가 될 수 있는,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다. 인간은 실수도 잘못도 할 수 있고 악마가 될 수도 있지만, 자신의 선택으로 돌아서 나올 수도 있다. 도망친다고, 외면한다고 악은 사라지지 않는다. “악령은 늘 따라 다니죠. 사라지지 않아요. 함께 살아가는 거죠. 그들을 받아들여야 자신을 똑바로 볼 수 있어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