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부문 당선자 강보라씨 수상소감
14년 가까이 잡지사 기자로 일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일은 오래 해왔으니까 이제는 저의 목소리를 조금 내어 봐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쓰면서, 이 또한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래 해왔지만 여전히 서툰 일이었고 그 와중에 밥벌이를 챙기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에는 거의 생업을 포기하고 썼습니다.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으면서 잠깐 유료 강좌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티니안에서'는 그때 과제로 낸 엽편이 출발점입니다. A4용지 두 장 분량의 이야기에 살을 붙이는 과정에서 저는 이 소설이 여성의 성욕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여성의 성욕, 그중에서도 어린 여성의 성욕은 페미니즘의 가장 구석진 자리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저는 늘 구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하필 거기 눈이 갔던 것 같습니다.
‘I deserve it’ 이라는 영어 표현이 있습니다. 맥락에 따라 ‘난 그럴 자격 있어’ 라는 자부어린 선언이 되기도, ‘난 그래도 마땅해’ 라는 자조 섞인 한탄이 되기도 하는 말입니다. 지금 제 심정이 꼭 그렇습니다. 스스로 조금 대견한 것도 사실이지만 한편으론 이런 상을 받다니 정말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솔직히 말하면 후자 쪽 마음이 훨씬 큽니다. 그렇지만 부족한 신인의 가능성에 손을 들어준 분들에게 존중을 표하는 일 또한 제겐 중요하기에 필요 이상으로 손사래 치진 않으려 합니다.
남편과는 연애 시절부터 소설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밤이면 만원에 네 캔짜리 맥주를 탁자 위에 올려두고 요즘 읽고 있는 소설이 얼마나 근사한지 혹은 아쉬운지 앞 다퉈 의견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러다 비슷한 시기에 함께 홀린 듯 습작을 시작했고 얼마 후 남편이 먼저 소설가가 되었습니다. 둘이서 산에 오르다 혼자 뒤처진 양 어쩐지 민폐를 끼치는 기분이었는데 이렇게 다시 함께 걷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쓰면서 이런 건 소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물음표를 자주 띄웠습니다. 더는 저 자신을 의심하지 않도록 해주신 심사위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얼마 전 첫 책을 낸 나의 다정한 문우, 사랑하는 엄마와 가족들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 제게 소설쓰기의 즐거움을 가르쳐주신 홍희정 선생님, 매달 스타벅스에서 서로의 작품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했던 진, 석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낍니다. 글을 쓰는 동안 마음 깊이 의지했던 안 선배와 손 선배, 제게 티니안 섬의 존재를 알려준 정 선배에게도 큰 빚을 진 기분입니다. 오랫동안 코트 밖 관중이었던 제가 실은 플레이어라는 걸 최초로 일깨워준 사람, 글을 쓸 때 제 머릿속을 지배하는 유일한 독자이자 최고의 편집자인 남편에게 오늘은 맥주 말고 위스키 한잔 하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1982년 서울 출생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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