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부문 심사평
심사는 지난해에 이어 예심과 본심을 통합해 진행했다. 다섯 명의 심사위원들이 600여 편의 응모작을 읽은 후, 그중 한 편을 선정하기 위해 충분한 토론을 거쳤다. 최종 당선 여부를 놓고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눈 작품은 '알파카 월드'와 '티니안에서' 두 편이었다.
'알파카 월드'는 모든 사회 현상이 알파카와 연결돼 있다는 ‘알파카 이론’을 믿는 주인공 ‘연’과 그녀의 가족 이야기이다. 연은 알파카가 가난한 집안을 구원해주리라 여기며 알파카를 사들인다. 처음에는 누나의 말을 믿지 않던 남동생도 점점 그녀의 편에 서게 된다. 하지만 열심히 노동해 돈을 벌어야 한다고 믿는 아버지의 눈에 이들은 헛것에 단단히 빠진 모습으로 비칠 뿐이다.
작가는 황당하게 느껴질 법한 알파카 이론을 거침없이 밀어붙이며 알파카가 이 집안에 스며드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알파카의 청결도와 학업 성적의 연관 관계를 믿는 남매가 함께 알파카를 씻기는 장면은 기이한 웃음을 불러일으키고, 이들 사이에서 겉도는 아버지의 모습에서는 가난을 향한 세대적 인식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이러한 전개에 비추어보았을 때 결말이 약하게 느껴졌다. 우연히 주운 뷔페 초대권 덕분에 연은 가족과 함께 호텔을 찾는다. 출구를 찾다가 발견한 드레스룸의 거울 안에서 본, 인간처럼 두 발로 선 알파카의 모습이 바로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다. 이 강렬한 이미지를 독자들에게 보여주기 전에 했어야 할 이야기들이 있진 않았을까? 몇 단계를 건너뛴, 다소 성급한 끝맺음처럼 느껴져서 아쉬움을 남겼다.
'티니안에서'는 ‘나’와 친구 ‘수혜’가 티니안섬으로 떠난 여행 이야기다. 두 여성은 우연히 마주친 백인 남성들과 여정을 함께한다. 이 과정에서 아시아 여성을 향한 백인 남성의 추근거림, 백인 남자와 놀아나는 여자애들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연장자 남성의 시선, 헤픈 여자와 그와는 다른 여자를 구분하려는 남성의 시도 등이 매우 치밀하게 쌓아져 나간다.
여정의 끝에서는 나와 수혜가 지닌 과거의 비밀이 드러난다. 중학생 때 이들은 몸을 함부로 굴리는 여자애들이라는 의미로 ‘걸레’라고 불리며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작가는 여행 내내 백인 남성들과 거리낌없이 어울려 노는 수혜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에게 ‘지금 당신은 이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질문하고, 혹시라도 그 대답이 이 인물들이 받았던 그 폭력적 시선에 닿아 있지는 않은지 되짚어보게 만드는 구조로 소설을 만들어낸 것이다.
분명한 질문과 함께, 태평양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는 섬을 배경으로 과거의 무게에 사로잡히지 않는 인물들을 그려냈다는 점 역시 이 작가가 앞으로 써낼 이야기들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더불어 '알파카 월드'의 작가 또한 곧 어디선가 다시 만날 수 있게 되리라 믿는다.
황예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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