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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의 정치가 별건가

입력
2021.01.08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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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박능후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달 15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제4차 저출사고령사회 기본계획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박능후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달 15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제4차 저출사고령사회 기본계획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한 여당 국회의원 행보를 볼 때마다 ‘무슨 의도에서 이런 걸 할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 의원은 교육계 갈등이 첨예한 사안에 특정 교원단체 요구를 대변하는 행보를 자주 보이며 ‘현장 출신 교육 전문가’를 자처한다. △학급당 학생 수 16명 이하 △초등 돌봄교실 지방자치단체 이관 같은 제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맞춰 교육세가 줄어도 시원찮은 마당에 교사 더 뽑고 복지 늘리자니. 이분 주장을 들을 때마다, 나는 ‘우리 동네에 출마하면 절대 찍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교원보다 비혼자가, 비혼보다 학부모 유권자가 많은 현실을 감안하면 이분은 국회의원 재선 의지가 없는 듯하다. 이분 다음 꿈이 뭐든 간에 당장 국민의 대표 자리에서 이런 모습을 계속 보여준다면 교원 아닌 국민에게 배신도 이런 배신이 없다.

최근 발표된 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보면서, 특정 국민의 대표를 자처하는 일이 범정부적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애 낳은, 이왕이면 더 많이 낳은 ‘정상가족’에 혜택을 몰아주는 저출산 대책이 십수년에 걸쳐 시행됐고 ‘합계 출산율 0.84명’으로 실패했는데도, 정책 뼈대를 고대로 두고 지원 규모는 더 늘렸다. 다자녀 혜택 기준을 3명에서 2명으로 완화하고 육아휴직 지원비를 대폭 올린 4차 계획을 보면서 “공무원 맞춤 정책인가”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세종시 합계 출산율은 서울보다 2배 높은 1.47명으로 두 집 중 한 집은 아이 둘쯤 낳는다). 20~30대의 비혼율이 63%(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달하는데, 혼외 출산율 2.3%인 나라에서 이런 대책을 보면서 내 세금이 제대로 쓰인다고 만족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출산율이 얼마나 증가하도록 기본계획을 설계했느냐는 질문에 담당 공무원은 “출산율을 목표로 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답했다. 그럴 거면 아젠다를 저출산에서 근로자 보육 복지로 바꾸고 이를 위해 세금 수백조 원을 써도 될지, 국민을 설득했어야 했다. 앞서 세 차례 저출산 대책이 왜 실패했느냐는 질문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저출산 없는 나라에서도 이뤄지는 예산이고 일상 예산을 저출산 기본계획에 다 취합해, 실질적으로 이 정책을 위한 예산은 적다.” 국정을 뻥튀기해 홍보한다고 국무위원(당시 후보자)이 실토한 셈이다.

20~30대 1인가구, 비혼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현실에 대처하려면 더구나 이들을 지지 기반 중 하나로 선출된 정부라면 다른 대처가 필요하다. 인구 감소가 시작된 지금 ‘저출산이 나쁜 건가’ 생각해볼 때가 됐다는 말이다. 인공지능(AI)이 일자리를 대체할 거란 걱정과 저출산이 노동력?경제력 감소로 이어진다는 프레임은 얼핏 봐도 앞뒤가 안 맞지 않나.

방송인 사유리처럼 비혼 출산자를 위한 대책, ‘사유리-되기’도 포기한 1인 가구의 주거?노후 대책을 수립하는 게 출산축하금 200만원 주는 것보다 불평등 해소에 효과적일 거라 확신한다. 84㎡ 임대아파트보다 52㎡ 민영아파트 공급 늘리고, 고독사 대책 수립하고, 줄어든 인구로도 먹고살 만한 성장 동력을 찾는 게 미래를 준비하는 보다 현실적인 방안이다. 무엇보다 이 정부를 지지했던 20~30대에 신의를 지키는 정책이다.

이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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