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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녀 꼽고 트월킹...신혜선 '조선 아재'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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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녀 꼽고 트월킹...신혜선 '조선 아재'의 맛

입력
2021.01.08 04:3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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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반전 인기 드라마 살펴보니]

tvN 드라마 '철인왕후'에서 배우 신혜선은 성 반전 코믹 연기를 선보여 화제몰이중이다. 극에서 신혜선은 조선시대 중전의 몸으로 21세기 남자 쉐프 장봉환을 연기한다. 신혜선은 "봉환 연기가 더 편하다"고 말했다. tvN 제공

tvN 드라마 '철인왕후'에서 배우 신혜선은 성 반전 코믹 연기를 선보여 화제몰이중이다. 극에서 신혜선은 조선시대 중전의 몸으로 21세기 남자 쉐프 장봉환을 연기한다. 신혜선은 "봉환 연기가 더 편하다"고 말했다. tvN 제공


가채에 봉황이 새겨진 비녀를 꼽은 기품있는 한복 자태. 누가 봐도 왕실의 여인인데 그의 말과 행동엔 '족보'가 없다. "맞장 떠!" 도통 뜻을 알 수 없는 말을 폭포수처럼 거칠게 쏟아내는가 하면, 산삼주만 보면 "오, 예"라고 환호하며 코가 삐뚤어질 때까지 마신다. 시쳇말로 '저세상 텐션', 망나니가 따로 없다.

tvN 드라마 '철인왕후'가 배우 신혜선의 능청 극강 '조선 아재' 연기로 인기다. 시청률 12%를 웃돌며 지상파 등을 통틀어 주말 같은 시간대 남녀 20~49세 시청률 1위 왕좌를 줄곧 꿰찼다. 죽을 고비를 넘긴 조선 시대 중전 소용(신혜선)의 몸에 21세기 '바람둥이' 남자 쉐프 봉환(최진혁)의 영혼이 깃들어 벌어지는 좌충우돌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신혜선이 치마를 훌렁 벗어 던지고 속바지만 입은 채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방정맞게 발을 떠는 추태 연기를 보면 웃음이 절로 터진다. '허세남'으로 분한 신혜선의 코믹 연기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꽉 막힌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과 '비밀의 숲' 등을 통해 진지하고 어두운 이미지가 강했던 배우가 일군 반전이다.


"왕에 '조용히 자다 가' 애드리브" 신혜선 '아재 본능'

성 반전 코믹 연기는 신혜선의 숨겨진 '아재 본능'을 땔감으로 활활 타오른다. 소속사 YNK엔터테인먼트 김민수 대표는 "신혜선이 평소에 워낙 털털해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것 같다"며 "다만, 너무 선을 넘지 않으려 고민하며 연기했다"며 웃었다. 신혜선의 또 다른 측근은 "신혜선이 걸음걸이까지 털털해 데뷔 초엔 주위에서 걱정할 정도였다"며 "고등학교도 남녀공학(강하늘과 동기)을 나와 남자 친구들과도 스스럼없이 지내는 편이고, '철인왕후' 속 모습이 그간 신혜선이 맡은 역 중 가장 신혜선답다"고 귀띔했다. 신혜선의 남성 연기가 생활 연기에 가깝다는 게 지인들의 말이다. '철인왕후' 윤성식 PD는 "신혜선이 빗속에서 트월킹(상체를 숙이고 엉덩이를 빠르게 흔들며 추는 춤)을 할 때 촬영 현장이 웃음바다가 됐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3회에서 철종(김정현)에 '조용히 자다 가라'고 한 대사도 신혜선의 애드리브"라고 말했다.


그래픽=박구원 기자

그래픽=박구원 기자


성이 확 바뀔만큼 변해야... 구태 벗어나려는 몸부림

남녀의 영혼이 뒤바뀌어 벌어진 소동이나 남장여자 설정은 드라마의 흥행 코드다. 여배우들이 남자를 연기해 화제를 모은 MBC '커피프린스 1호점'(2007)을 비롯해 SBS '바람의 화원'(2008)·'시크릿가든'(2010), KBS2 '성균관 스캔들'(2010) 등이 대표적인 예다.

성을 숨긴 설정은 현대극에선 노동시장에서 외면 당해 생계를 위한 선택으로 주로 그려지지만, 사극에선 더 풍부한 함의를 갖는다. 유교사회에서 억압받는 여성의 현실을 보여주면서 잘못된 권위를 확 뒤집는다. 그러면서 극적 전개는 더욱 강해진다. 드라마 평론을 하는 박진규 작가는 "여성의 몸에 들어간 남성이나 남장여자 설정은 남자와 여자가 바뀔만큼 확 변하지 않으면 결국 기존 사회의 구태를 벗어날 수 없다는 얘기"라며 "그 도발을 통해 금기와 편견에 갇혀 자유롭지 못한 이들에 대리만족의 즐거움을 안겨줄 수 있다"고 의미를 뒀다.


가벼운 웃음으로 소모되는 성 반전... '2차 가해' 주의

파격엔 종종 진통도 따른다. 중전의 입을 통해 "조선왕조실록 한낱 지라시"란 내용을 내보낸 '철인왕후'와 화가 신윤복을 여자로 재해석한 '바람의 화원'은 역사 왜곡 논란으로 흔들렸다. 표현의 자유를 빙자한 역사 훼손이란 비판이었다.

성 반전을 가벼운 웃음 소재로 활용하는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철인왕후'에선 중전인 소용이 남장을 한 채 기생집 '옥타정'을 찾아 술판을 벌인다. 지난해 집단 성폭행 미수 사건이 불거진 클럽 옥타곤을 연상케 하고, 일부 남성들의 왜곡된 유흥문화를 성 반전을 방패막이 삼아 재현해 불편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철인왕후'엔 기생집 접대부가 남장한 소용이 여자인 걸 알고도 맞고, 중전이 같은 여성에 호감을 보이는 등 퀴어(성소주자)적 요소가 발견된다"며 "하지만 화제성 측면에서 가볍게 다뤄졌고, 성 반전이 진취적인 메시지로 살아날 수 있도록 제작진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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