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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나지 않은 민사린의 이야기... 카카오TV '며느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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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나지 않은 민사린의 이야기... 카카오TV '며느라기'

입력
2021.01.12 04:3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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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지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카카오TV 웹드라마 '며느라기'는 한국 기혼 여성의 삶을 극사실적으로 그려냈다는 평을 받으면서 세대를 넘나드는 여성 시청자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카카오TV 제공

수신지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카카오TV 웹드라마 '며느라기'는 한국 기혼 여성의 삶을 극사실적으로 그려냈다는 평을 받으면서 세대를 넘나드는 여성 시청자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카카오TV 제공


한국의 며느리라면 누구나 거치는 시기가 있으니, 이른바 '며느라기(期)'다. 수신지 작가의 동명 웹툰에 따르면 "며느리로서 어찌어찌 해야만 할 것 같은 마음이 생기는" 때다.

"시가에 가면 가만히 앉아 있기가 영 불편해서 차라리 설거지라도 하는 게 편하다고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솔직히 앉아 있는 게 편하지 어떻게 설거지하는 게 편해~ 내가 어리니까 내가 하는 게 맞지, 라고 생각해본 적은요?"

그렇다면, 100%다. 당신의 며느라기.

기혼 여성들만의 사적인 서사로 머물던 '시월드' 속 이야기를 논쟁거리로 끌어올린 2007년 웹툰 '며느라기'가 2021년에도 화제의 중심에 섰다. 지난해 11월부터 매주 토요일 한 편씩 카카오TV에서 공개되고 있는 웹드라마 '며느라기'가 7편 만에 조회수 1,000만을 넘어선 것. 웹드라마의 경우 100만뷰를 성공 기준으로 삼는 만큼 그 자체로 커다란 성과다.


며느리가 된 민사린(박하선)은 결혼 후 자꾸만 "제가 할게요"하고 나서게 되는 '며느라기(시댁 식구한테 예쁨 받고 칭찬 받고 싶은 시기’)'에 당황스기만 하다. '며느라기'의 한 장면

며느리가 된 민사린(박하선)은 결혼 후 자꾸만 "제가 할게요"하고 나서게 되는 '며느라기(시댁 식구한테 예쁨 받고 칭찬 받고 싶은 시기’)'에 당황스기만 하다. '며느라기'의 한 장면


무엇보다 일상에 스민 부조리함을 과장없이 섬세하게 드러내면서 가부장제의 구조적 문제까지 건드리는 건 '며느라기'의 가장 큰 성취다. '며느라기'는 민사린(박하선)이 대학 동기인 무구영(권율)과 결혼 후 마주하게 되는 '며느리'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을 정밀하게 그린다.

시월드에 입성한 사린의 고난뿐 아니라 시어머니이자 평생 집안 제사를 모신 큰집 며느리인 기동, 시누이인 동시에 며느리인 무미영(최윤라) 등 각자 중첩된 자리에 발 딛고 있는 인물들의 입장을 두루 보여준다. '며느라기'를 연출한 이광영 PD는 제작발표회에서 "성별이나 역할에 따른 가치나 생각에 대해 옳다, 그르다 답을 내리기보다는 시모, 며느리, 아들 등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 공간으로 생각하고 연출했다"고 밝혔다. 이들 모두 각자 자기 위치에서 정해진 역할을 했을 뿐 악의가 없다는 점에서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러면서도 '며느라기'는 그 '위치'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짚는다. 시월드 안에서 사린은 '며느리'로만 존재한다. 시모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이름도 '구영이 처'다. 회사에서 인정 받아 해외출장을 가게 된 사린 앞에서 시모는 아들 끼니 걱정부터 한다. 혹 아들보다 월급을 더 받는 건 아닌지 우려한다. 며느리에게 앞치마 선물을 하고, 음식하는 걸 돕겠다는 아들은 주방 밖으로 쫓아낸다. "며느리가 시모 생신상을 차리는 건 당연한 일"이 된다. 시가 식구들이 못되서가 아니다. 가부장제가 정한 여성의 자리, 며느리라는 역할에 요구되는 소임일뿐이다. 누군가에게는 안온하고 따뜻한 풍경 속 자리한 구조적 폭력을 '며느라기'는 놓치지 않는다.


민사린의 남편 무구영(권율)은 가부장제의 최대 수혜자다. 평생 고생한 엄마를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스스로 도울 생각을 하기보다는 "엄마, 조금만 기다리세요. 사린이는 다를 거예요"라며 사린의 대리효도를 기대한다. 카카오TV 제공

민사린의 남편 무구영(권율)은 가부장제의 최대 수혜자다. 평생 고생한 엄마를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스스로 도울 생각을 하기보다는 "엄마, 조금만 기다리세요. 사린이는 다를 거예요"라며 사린의 대리효도를 기대한다. 카카오TV 제공


'며느라기'가 고부간 '을들의 싸움'에서 한 발짝 나아가는 지점이기도 하다. 평생 아내의 가사노동에 의존한 채 살아와 제손으로 밥 한끼 차려먹을 줄 모르는 시부와 고생한 엄마 대신 일해줄 며느리를 데려왔으니 제몫의 효도는 다한 것처럼 구는 구영은 가부장제의 최대 수혜자다. 불합리를 인정하면서도 구영은 사린에게 "부모님 만나는 날만 그렇게 있어주면 안 될까"라고 한다.

이 거대한 공모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까. 국을 더 먹으려고 주방으로 향하는 중학생 조카손자에게 "아서, 남자가 거길 왜 가"라고 말리면서, 행주로 상을 닦는 5세 여아에겐 "시집 잘 가겠네"라고 하는 장면이 겹쳐지는 명절 아침은 의미심장하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여성은 주방, 남성은 거실에 자리한 풍경은 어느 가정이든 다르지 않을 것이다. 웹툰에서 사린의 엄마는 사린에게 "느린 것 같아도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어. 바뀌더라도 천천히 바뀌어야 탈이 없는 거야"라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탈이 나지 않도록 그렇게 천천히, 조금씩 익숙해지면 어쩌지?" 사린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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