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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응천 "강성 지지층에 영합하면 민주당 나락에 빠져"

입력
2021.01.11 20:0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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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송용창의 정치행간’은 의회와 정당, 청와대 등에서 현안으로 떠오른 이슈를 분석하는 코너입니다. 정치적 갈등과 타협, 새로운 현상 뒤에 숨은 의미와 맥락을 훑으며 행간 채우기를 시도합니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며 최근 민주당 위기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있다. 오대근 기자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며 최근 민주당 위기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있다. 오대근 기자

더불어민주당에서 소신파가 사라졌다는 우려는 어제오늘 나온 소리는 아니다. 친문 강성 지지자(문파)들의 극성에 의원들이 눈치를 보며 할 말을 못한다는 지적은 문재인 대통령 집권 초에는 어쩌면 양념 같은 얘기였다. 적폐 청산에 대한 여론의 지지로 봉합됐던 이 문제는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여권에 심각한 딜레마로 떠올랐다. 추미애 법무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추진에 문파들은 열광했지만 중도층이 등을 돌리면서 당심과 민심의 간극이 갈수록 커졌기 때문이다.

이는 다수 언론들의 신년 여론조사에서도 거듭 확인됐다. 중도층 이탈로 여권의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서울과 부산시장 재보궐 선거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이를 만회하려는 듯 최근 여권 지도부에선 통합과 민생 회복의 메시지가 흘러나오고 있지만 강성 지지자들은 요지부동이다.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 사면을 꺼낸 이낙연 대표는 ‘배신자’ 소리까지 들으며 집중포화를 맞아 휘청거리고 있다. 여권이 ‘지지자 정치’의 덫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라는 게 외부자들의 눈엔 확연하다.

하지만 이런 위기에도 여권 내부에선 자성이나 기조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다. 유일한 예외가 조응천 의원이다. 그간 추 장관의 무리한 징계 청구나 토론 문화 실종 등을 지적해왔던 그는 덕분에 “탈당하라”거나 “검찰에 세뇌당했다” 등 온갖 모욕과 조롱도 감수해야 했다. 180석 거대 여당에서 유일한 소신파로 남은 그의 고립이 민주당의 위기를 예고해온 이상 신호였던 셈이다.

조 의원을 만난 것은 지난 6일이었다. 여권에 대한 중도층의 민심 이반으로 그의 경고가 현실화한 터였다. 지난해 말 공수처법 개정안 표결에 불참해 가뜩이나 뭇매를 맞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강성 지지층에 영합하면 당이 나락으로 떨어진다”며 소신 발언을 쏟아냈다. 특히 윤 총장 탄핵 등 당 일각의 목소리에 대해 당과 대통령이 어찌되든, 지지층에 영합해 당내 지분을 확보하려는 자기 정치가 아니냐는 게 그의 일갈이었다. 문파들의 욕을 먹더라도, 설령 이들의 반발로 향후 당내 경선에서 떨어질지라도 당이 살기 위해선 더 큰 민심을 봐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겠다는 각오였다.


"안 보이는 데서 엄지척 해주는 의원들 꽤 있지만…”

- 소신 발언 때문에 지지자들에게 많이 시달릴 텐데.

“몇 년 전에는 많이 당황스러웠는데, 이제는 익숙해졌다. 악플이나 문자 때문에 할 말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프라인에서 사람들을 만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아무리 설득을 해도 도돌이표처럼 처음으로 돌아오니까 자꾸 좌절하게 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개인적으로 그게 무척 힘들다.”

- 당내에 동조자는 없나.

“20대 국회 때는 ‘조금박해’라고 해서 스크럼을 짤 만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요즘은 홀로 된 느낌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혼자인 건 아니다. 제 생각에 동의하고, 안 보이는 데서 엄지척 해주는 의원님들도 꽤 있다. 밖에서 짐작하는 것보다 많다. 하지만 그분들이 나서서 동조해주는 것은 아니고, 이렇게 두들겨 맞는 걸 보면 또 움츠리고.”

- 지지자들에게 밉보여서 다음 경선에서 떨어질 우려는 하지 않나.

“의원을 한 번 더 하느냐, 못 하느냐는 부차적인 문제다. 거기에 목 매면 자영업자밖에 안 되지. 의원들이 거기에 매몰되니까 자꾸 진영논리를 따르고 한목소리밖에 못 낸다. 공적 책임을 앞세워야 하는데 선후가 뒤바뀌는 바람에 제 역할을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강성 지지자들 입맛에 맞춰 이익 보려는 사람들이 더 문제”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인터뷰 도중 머리를 감싸며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오대근 기자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인터뷰 도중 머리를 감싸며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오대근 기자

- 실제 지지자들의 당내 영향력은 어떤가.

“2017년 대선 경선 전후로 온라인 입당이 많아졌는데, 그 때 강성 당원들이 많이 들어왔다. 이분들이 굉장히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당내 경선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쓸데없이 튀는 얘기했다가 찍혀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다들 하는 것 같다.”

- 당이 강성 지지자들에게 휘둘려 발목이 잡힌 모습이다.

“눈치 봐서 말을 안 하는 사람들도 있고 강성 지지자들 입맛에 맞춰서 이익을 보려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후자가 더 큰 문제다. 서울·부산 시장 보궐 선거 경선, 대선 후보 경선이 있는데, 이런 흐름이 계속되면 국민들에게 역동적이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민심에 역행하는 목소리가 계속 나올 수 있어 걱정이다."

- 이런 식으로 가면 위기라는 공감대는 없나.

“추세가 좋지 않다는 데는 다들 공감하고 있다. 근데 최근 법원 결정에 대해 ‘사법 쿠데타’라는 식의 반발이 나왔는데, 이건 삼권 분립이나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적 태도와 관련된 게 아닌가. 강성 지지자들이 그렇게 얘기한다고 해서 그에 영합하고 이를 부추기면 당이 나락으로 빠진다. 이런 얘기를 할수록 민심과 더욱 멀어지고 당의 위기가 고착화된다.”

- 일부 의원들은 앞장 서서 윤 총장 탄핵론까지 제기했다.

“그게 정말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 정말 대통령에게 도움이 된다고 하는 말씀인지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면 강성 지지층에 영합해서 정치적 지분을 늘리기 위한 것 아니냐. 탄핵론이 문제가 아니라, 이런 구조를 깨야 한다.”

- 이낙연 대표는 연초 사면론을 제기했다가 당내 역풍을 맞았다. 사면 찬반과는 별개로 국민통합 쪽으로 기조 변화를 보이는 것 같은데.

“이 대표가 합리적으로 말씀하시는 분이었는데, 작년 전당대회 때부터 급속히 경도된 모습이었다. 해가 바뀌면서 원래 모습으로 복귀하는 듯 한데, 사면론 자체는 충분히 하실 수 있는 말씀이다. 다만 전략적인 준비가 부족했던 게 아닌가 싶어 아쉽다.”

- 지난 한 해는 추·윤 갈등으로 시끄러웠다. 당이 올해는 어떤 의제를 내세워야 한다고 보나.

“올해는 선거가 있는 해다. 갈등 이슈는 최소화하고 민생 문제에 집중해 성과를 내야 한다. 자영업자·교육·노년·빈곤 관련 문제가 계속 나온다. 작은 문제라도 코로나19 시대엔 그 하나하나가 그 분들에겐 생존이 달려 있다. 신년 여론조사에서 눈길을 끈 게 우리 정부가 촛불 정신을 잘 계승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37.8%만 '예'라고 답한 거였다. ‘아니다’가 58.2%였다. 정권 출범 6개월 때는 긍정이 69.8%였다. 32%포인트가 줄었다. 그 ‘32’는 3년 동안 우리 정부와 당에 실망하고 떠나신 분이다. 우리가 진정성을 갖고 손을 내밀면 돌아오실 분들이다.”


“검찰이 가장 싫어하는 주장했는데도 검찰 편이란 오해 받아”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 오대근 기자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 오대근 기자

당심과 민심이 갈라지는 민주당의 위기가 표면화한 계기는 지난 한 해를 들끓게 했던 윤 총장 징계와 검찰 개혁 문제였다. 윤 총장 징계를 ‘찍어내기’로 보는 중도층과 달리, 문파들은 검찰 개혁의 상징처럼 밀어붙였다. 이 과정에서 검찰 개혁의 방향이 잘못됐다는 조 의원의 지적을 들으려는 지지자들은 없었다. ‘검사 본색을 드러냈다’는 식의 지탄을 받기 일쑤였다.

신년에는 검찰 개혁 같은 갈등 이슈보다 민생 이슈에 집중하자는 조 의원의 바람과 달리, 친문 강경파들은 올해도 검찰의 수사권을 뺏자는 내용의 검찰 개혁 시즌2를 앞세우며 당 지도부를 압박할 가능성이 여전하다. 해결되지 못한 윤 총장 문제와 검찰 개혁 시즌2는 당심과 민심을 더 벌어지게 만들 수 있는 복병이다.

- 검찰 출신이어서 검찰 편을 든다는 공격도 많이 받지 않나.

“말하기도 지쳤다. 벽에 대고 얘기하는 느낌이다. 검찰이 가장 싫어하는 게 1차 수사권을 뺏기고 2차 수사권과 소추권만 갖는 거다. 나는 애초부터 이걸 주장했다. 검찰이 제일 싫어하는 걸 얘기했는데, 무슨 검찰 편을 든다는 말인가. 참여정부 시기 부패방지위에 파견 나가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정부 입법안을 만들었다. 그게 공수처법의 모태다. 그 일로 찍혀서 일 년 만에 검사 사표를 냈다. 박근혜 정부 때는 공직기강비서관을 하다 쫓겨난 뒤에 이른바 ‘청와대 문건’ 사건으로 구속영장까지 청구됐다. 검찰이 나를 어떤 식으로든 엮으려 들었다. 직접 당해보니까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갖고 있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확실히 깨달았다. 그래서 의원이 된 뒤 법사위 위원으로 오자마자 수사와 기소가 분리돼야 한다고 주구장창 외쳤다.”

- 여권이 뒤늦게 수사와 기소 분리를 주장하고 나섰는데

“원래 청와대가 설계한 안은 수사를 전담하는 K-FBI를 만드는 거였다. 검찰의 경우 1차 수사권은 없애고 K-FBI에 대한 사법적 통제와 소추를 맡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검찰에 6대 범죄 수사를 남기고, 경찰은 검찰의 사법적 통제를 받지 않는 식으로 거래가 이뤄졌다. 그러면서 엉망이 됐다. 이제 와서 경찰에게 6대 범죄 수사를 모두 넘기면 경찰 통제는 누가 하나. 경찰 통제가 안 되는 상태에서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서는 안 된다. 경찰의 정보와 수사도 분리해야 한다. 내 주장은 애초 설계했던 안 대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 윤 총장이 야권 대선주자 1위인 것도 비정상적인 현상이다.

“정말 그로테스크하다. 윤 총장을 검찰총장까지 밀어주면서 스타로 만들어줬다가 추 장관이 들어선 뒤 180도 입장을 바꿔 반대 방향으로 힘껏 밀었다. 그 과정에서 눈덩이가 커진 것이다. 야당 입장에서도 참 난감할 것이다. 자기네 인사들을 적폐로 잡아넣었던 윤석열을 우리 사람이라고 할 수도 없고 내팽개칠 수도 없고. 나는 윤 총장 임명을 처음부터 반대했다. 인사청문회가 열리기 전 토론회에서도 “수사 편의성을 위해 법치주의를 깨고 있다”고 수사 방식을 지적했다. 당시 민정수석실에도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 보수와 진보 양쪽 정부를 오가면서 속살을 본 셈인데, 우리 정치의 문제가 뭐라고 보나.

“5년마다 정부가 바뀌는데, 새 정부가 제일 먼저 하는 게 직전 정부 흔적 지우기다. 내가 여러 정부에 관여를 했는데, 나라 망하게 하려고 일하는 정부는 없었다. 어느 정부든 대한민국 잘 되게 하려고 죽을 힘을 다했다. 그 마음만큼은 믿어줘야 한다. 그런데 다른 정부에 대해선 과소평가가 아니라 아예 폄훼한다. 이중 잣대를 갖고 이전 정부는 모두 악이고 자기 정부는 선이라고 평가하는 것이다. 체제가 다르거나 이민족이 쳐들어와서 지배하는 게 아니지 않나. 전 정부에서 출세했다고 배척하는 것도 맞지 않다. 그러면 쓸 사람이 없다. 잘한 것은 제대로 평가해서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

송용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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