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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 없는 집합금지' 기본권 침해로 번지는 'K방역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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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 없는 집합금지' 기본권 침해로 번지는 'K방역의 민낯'

입력
2021.01.14 04:30
수정
2021.01.14 10:48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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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자영업자 피해 극심
"생색내기 지원 아닌 손실 보상"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등 단체 회원들이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코로나19 영업제한조치 헌법소원 청구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등 단체 회원들이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코로나19 영업제한조치 헌법소원 청구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서울 마포구에서 5년째 호프집을 운영 중인 한모씨의 지난해 12월 한 달 매출액은 161만8,200원. 1년 전인 2019년 12월 한 달 매출액 5,799만3,700원에 비해 고작 2.8% 수준이다. 손님이 붐비기 시작하는 오후 9시부터 포장·배달만 가능하게 한 ‘핀셋 방역’ 조치 때문이다. 참다 못한 한씨는 지난 5일 “방역조치로 인해 재산권 행사를 침해당했는데 아무 보상조차 받지 못하는 건 위헌”이라며 서울시를 상대로 헌법소원을 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3차 대유행을 막기 위해 지난해 12월부터 고강도 방역조치가 취해졌다. 이에 따라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피해가 극심해지자, 국가가 방역에 따른 손실을 보상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감염 확산 금지라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손실을 감수한 만큼, ‘생색내기식 지원금’이 아니라 ‘제대로 된 보상금’을 줘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는 예산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지만, 보상 없는 집합금지는 과도한 기본권 침해여서 위헌이란 주장이다.


감염병예방법에만 없는 보상 규정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집합금지 조치에 대한 소송이 줄잇고 있다. 한씨와 PC방 사업주 김모씨가 서울시의 '집합제한·금지조치 고시'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이날 헬스장·볼링장·당구장 등을 운영하는 업주 203명도 10억1,5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14일엔 카페운영자들도 민사소송을 낼 예정이다. 집합금지와 집합제한 조치를 규정한 감염병예방관리법이 위헌적이고 불법적이라는 주장이다.

법조계에선 손해배상 소송보다 헌법소원에 주목하고 있다. 손해배상 소송은 정부 방역조치에 과실이나 위법성이 있어야 해서 승소 여부가 불투명하다. 하지만 기본권 제한 여부를 따지는 헌법소원은 다르다.

헌법 제23조 3항은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ㆍ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적법한 공권력 행사라 해도 그로 인해 손실이 발생했다면 국가가 보상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원칙에 따라 가축전염병예방법이나 민방위기본법 등에는 살처분이나 민방위훈련에 따른 피해 보상 규정이 있다. 왜 감염병예방법에만 없느냐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서울중앙지법 한 판사도 “집합금지·제한 명령에 따른 보상 규정이 감염병예방법에는 의료기관에 대해서만 있다"며 "헌재가 입법부작위로 판단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정훈 의원 "기재부 지나치게 소극적"

국회도 이 같은 문제를 모르지 않는다. 보상금 지급 대상에 소상공인·중소기업 등을 포함시키는 감염병예방법 개정안이 8개나 발의돼 있다. 그러나 심사는 지지부진하다. 보건복지부, 기획재정부, 법제처 등이 한결같이 부정적이어서다. 정부는 △손실 규모 산정이 어렵고 △과도한 재정이 들고 △지원을 통해 보상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돈 아끼려고 국가 책임을 자영업자들에게 떠넘기는 격이라는 비판도 강하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영업중단에 따른 손해배상은 △영업을 중단하지 않았을 때의 순이익 △고정비(임대료)라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며 "국세청 자료를 기반으로 충분히 보상금을 산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 의원은 "광범위한 영업제한이 이뤄진 사실상 첫 사례라는 점에서 기재부가 선례를 남기지 않으려 지나치게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세 차례에 걸친 재난지원금으로 일정 정도 보상이 됐다는 주장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집합제한 업종의 업주가 소상공인 새희망자금(2차 재난지원금)으로 받을 수 있는 지원금은 150만원에 불과하다. 액수 자체도 적지만, 작년 매출이 4억원대인 한씨 같은 이들은 이 돈마저 받을 수 없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선별이냐 개별 지원이냐 같은 소모적인 논란이 반복되고 있는데, 피해가 발생한 규모에 비례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명확한 규정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권 "보상 시스템 만들자"

자영업자들의 반발이 확산되면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전향적인 기류가 감지된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지난 11일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영업 손실을 보상·지원하는 제도적 방안 마련을 검토하겠다"며 '보상'을 처음 언급했다. 강훈식 의원은 영업제한 시간만큼 최저임금 기준으로 보상금을 산정, 연 8조7,000억원 정도의 재원을 마련하자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여당 중진인 김두관 의원과 이재명 경기지사도 손실 보상 문제를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나섰다.

홍익표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상당 기간 전부터 영업 제한·집합 금지 업종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재정 당국과 협의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유환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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