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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태어나 다행”이라는 젊은이들, 우경화 징조일까

입력
2021.01.20 04:3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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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일본의 젊은 세대는 우경화하고 있나?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수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현지 대학에 재직 중인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일본 젊은이들의 '보수화'는 우경화의 징조라기보다는 좌파와 우파를 가르는 기성 세대의 정치적 감각이 젊은 세대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의 기성 세대들도 진지하게 숙고할 필요가 있는 지점이다. 일러스트 김일영

일본 젊은이들의 '보수화'는 우경화의 징조라기보다는 좌파와 우파를 가르는 기성 세대의 정치적 감각이 젊은 세대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의 기성 세대들도 진지하게 숙고할 필요가 있는 지점이다. 일러스트 김일영

◇‘일본에서 태어나서 다행’이라는 일본의 젊은이들

“일본에 태어나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일본의 젊은이를 만나기는 어렵지 않다.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 음식이 맛있으니까” 라든가 “기모노 (일본의 전통 의상)가 예뻐서” 라는 등 자문화에 대한 친근함이 나라에 대한 호감으로 표현되는 경우도 있고, 혹은 “사람들이 친절해서” 혹은 “거리가 깨끗해서” 라는 식으로 낯선 외국에 대한 막연한 거리감이 사회에 대한 긍정적 평가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한번은 “도쿄 디즈니랜드가 있으니까” 라는 허탈한 이유를 대는 젊은이가 있어서 웃고 말았다. 그가 진심으로 디즈니랜드 때문에 “일본에서 태어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일상 속에서 무심코 접하는 긍정적인 요소를 자기 나라, 자문화에 대한 애착으로 환원해 본 가벼운 마음이었다고 생각한다.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라고 하기에는 거창하지만, 이런 가벼운 마음가짐도 넓은 의미에서는 애국심의 범주에 포함된다.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해 자긍심을 갖는 태도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지나친 애국주의는 득보다 실이 많았다. 자기 나라에 대한 충성심을 제일 중요한 가치로 우선시하다가 다른 나라나 타문화에 대한 혐오나 공격을 합리화하는 논리로 악용된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는 트럼프 정권 하의 미국 사회일 것이다. “미국을 더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부르짖는 대통령의 애국주의가 문화적, 경제적 배타주의를 부추기는 부정적인 힘으로 작용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사회도 애국주의의 부작용을 단단히 경험했다. “전쟁에 협력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심” 이라는 프로파간다가 대대적으로 울려퍼지는 가운데, 전쟁에 반대하는 이들은 “국민으로서 자격이 없다”는 비난을 견뎌야 했다. 문화적 배타주의가 세계 질서를 위협하는 최근의 상황을 보아도, 애국심이 전쟁을 합리화한 과거의 교훈을 돌이켜도, 지나친 애국주의는 득보다 실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매사에 애국심을 강조하는 현상은 사회가 우경화하는 징조다. 그렇다면 일상 속에서 빈번하게 “일본에 태어나서 다행”인 이유를 찾아내는 일본의 젊은이들은 우경화하고 있는 것일까.

◇젊은 세대는 ‘이데올로기와 무관한 보수화’ 중

최근의 연구 결과를 보면, 일본 사회 전반적으로 우경화하는 경향은 비교적 명백하다. 그런데 젊은 세대의 특징을 떼어놓고 보면 이색적인 점이 있다. 우선 애국주의는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에서 공통으로 강화되고 있는 요소다. 일본의 젊은이들이 “일본에서 태어나서 다행”인 점을 자주 찾아내는 것도 이런 경향의 일환일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역사적, 문화적, 인종적 순수성을 강조하는 배타적 성향은 오히려 약해졌다. 순혈주의라고 부르는 이런 성향은 애국주의와 발맞추어 강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미국을 위대하게”라는 슬로건이 울려퍼지면서 다른 나라 뿐 아니라 자국내의 유색 인종마저 혐오, 배격하는 풍토가 불거졌다. 그런데 일본의 젊은이의 경우에는 애국심을 고취하는 풍조는 강해지지만 순혈주의와 배타주의는 줄어든 것으로 조사되었다. “일본에서 태어나서 다행”이라는 자부심은 커졌지만, 공격성으로 변질되기 쉬운 성향은 약해졌다는 뜻이니, 일반적인 우경화 양상과는 거리가 있다.

다른 척도에서도 반전이 있었다. 사회적 안정과 권위, 질서를 중시하는 보수적 성향이 중장년층보다 젊은 층에서 오히려 더 크게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젊은이는 권력에 맞서고 기존 질서에 대항한다는 이미지가 있다. 그런데 정반대로 젊은 세대일수록 권위에 복종하고 치안을 중시하는 성향이 현저했다. 한편,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기존의 권위를 옹호하는 태도가 뚜렷했다. 사회 문제가 있으면 공동체가 협력해서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의식보다는 개인적 차원에서 극복해야 한다는 사고 방식이 지배적이고, 그러다 보니 빈부 격차나 사회 계층이 존재하는 것을 긍정한다. 예컨대, 일본에서는 젊은 층에서 원자력 발전소를 지지하는 여론이 우세하다.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하는 ‘탈원전’ 정책보다, 일본 정부가 수십년 동안 추진해 온 경제 성장 중심 정책을 유지하는 것이 더 안정적이라는 것이다.

종합하자면 일본의 젊은 세대는 명확히 우파적 사상에 접근 중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사회적 권위나 기존 질서를 옹호하는 보수 성향은 더 강해지고 있다. 왜일까. 일본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 나아가 취업, 가족, 연애 등 젊은이들이 일상 생활 속에서 느끼는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대체로 받아들여진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더 커질 수 있는 개혁보다는 기존 질서와 안정성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편, 부모 세대로부터 풍요로움을 제공받은 경험이 보수적인 태도를 부추긴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부모 세대에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젊은이일수록 권위주의를 선호하는 성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정치적 우경화는 아니지만, 사회적, 경제적으로는 보수적인 권위와 질서를 중시하는 이런 상황을 ‘이데올로기 없는 보수화’ 라고도 한다.

◇한일 젊은 세대, 문화 차이보다 세대 차이가 더 크다

한일 젊은이들은 외국에서 만나면 쉽게 친구가 된다. 역사 문제 등 정치적 이슈에 대한 이견도 있지만, 언어의 장벽만 넘으면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 비교적 말이 잘 통하기 때문이다. 국제 교류 프로그램에 참가한 한일 대학생들에게 “세대 차이와 문화 차이 중 어느 쪽이 더 크게 느껴지는가”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는데, 전원 입을 모아 “세대 차이가 훨씬 더 크다”고 답했다. 같은 문화권에 속하고 의식주 생활 습관이 비슷하다는 점도 있겠지만, 인터넷과 SNS 등 동일한 미디어 환경 속에서 생활한다는 측면이 미치는 영향도 클 것이다. 실제로 세계 어디를 가나 구글로 검색하고,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등 SNS에 일상 생활을 차곡차곡 공개하는 젊은이를 흔하게 만날 수 있다. 젊은이들이 관심을 가진 주제도, 생각하는 것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도 의외로 비슷비슷하다. 더구나 한국과 일본은 문화적으로 비슷할 뿐 아니라 동질적인 사회 문제를 안고 있다 보니, 취업이나 연애 등 고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의 젊은이의 정서를 이해하는 것이 한국의 젊은이들을 보다 잘 알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한 것이다.

젊은 일본인의 ‘이데올로기 없는 보수화’를, 그저 옆 나라의 남일로 치부할 것은 아니다. 젊은이들이 권위나 기존 질서에 저항하기는 커녕 오히려 옹호하는 현상은, 개혁파와 수구파를 구분하는 구시대적 진영 논리에서는 ‘보수화’로 보인다. 하지만 일본의 젊은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실체 불명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와의 결별이 과거의 질서를 지키자는 보수적 의지에 의한 것은 아닐 듯하다. 어찌 보면 고달픈 경쟁 속에서 패배감을 맛보기 일쑤인 현실과 타협한 자연스러운 결과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데올로기 없는 보수화’는 젊은 세대가 우경화하는 징조라기보다는, 좌파와 우파를 가르는 기성 세대의 정치적 감각이 젊은이들에게는 아무런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한일을 막론하고 기성 세대들이 진지하게 숙고할 필요가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칼럼에서 인용한 연구는 田?俊介編著 (2019)『日本人は右傾化したのか:デ?タ分析で?像を?み解く』(勁草書房)에 실렸다.

김경화 칸다외국어대 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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