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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조민 자격을 따지기 전에

입력
2021.01.21 18:00
수정
2021.01.22 1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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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원
김희원한국일보 논설위원

입시부정 판결 후 자격박탈 요구 높아
성범죄 의사 면허유지 땐 왜 침묵했나
공적책임 강화해 집단이기주의 넘어야

법정에서 조작된 것으로 판단된 조민씨의 동양대 표창장. 이후 의사국가시험에 합격한 조씨의 면허박탈을 요구하는 의사들이 나왔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법정에서 조작된 것으로 판단된 조민씨의 동양대 표창장. 이후 의사국가시험에 합격한 조씨의 면허박탈을 요구하는 의사들이 나왔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씨가 의사국가시험에 합격한 후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무자격자가 흰 가운을 입고 의사 행세를 하게 됐다”며 “의사 면허증과 가운을 찢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분개하고 개탄한다”고 밝혔다. 또 대법원 판결까지 기다리겠다는 부산대 총장, 교육부 장관 등을 비판했다. 의사회는 지난달 조씨의 응시효력 정지 가처분신청을 냈었다(각하).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조씨의 의사면허를 정지해 달라는 전문의의 청원도 올라왔다.

2019년 9월 이후 흔한 정치적 반응의 하나로 볼 수 있지만 일부 의사의 적극적이고 엄중한 대응이 나는 불편하다. 조씨를 옹호해서가 아니다. 마땅히 적극적이고 엄중하게 나서야 할 문제에 침묵하던 모습이 확연히 대조돼서다. 2007년 한 내과의사가 수면내시경 환자들을 성폭행해 형사처벌을 받은 후 진료를 재개했을 때 그의 면허 박탈을 주장하는 의사의 목소리는 없었다. 2019년 수술실에서 마취 환자들을 상습 성추행한 인턴은 3개월 정직 후 문제 없이 병원으로 돌아왔다. 부정한 표창장으로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한 조씨에게 의사 될 자격이 없다고 일갈하는 의사들이, 환자 몸을 노리개 삼은 동료에 대해선 왜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가. 혹 환자에게 피해를 준 것보다 부정하게 의사집단에 끼어든 것을 더 참을 수 없는 걸까?

의사가 성인(聖人)이어야 한다거나 성범죄자는 어떤 직업도 가져선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어떤 직업군이든 직무와 관련해선 엄격한 윤리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기자라면 기사 날조는 해임이 마땅한 윤리 위반이며, 프로스포츠 선수라면 승부조작이 가장 비난받을 일이다. 환자의 몸과 마음을 다루는 직업이라면 성범죄나 살인은 퇴출 사유다. 그런데도 면허 대여, 진료비 부당청구 등 의료법 위반이 아닌 한 의사 면허는 불사신이다. 성범죄자에겐 보건복지부 행정규칙으로 자격 정지 1개월~1년이 가능할 뿐이다.

전문가집단 중에서도 유독 의사집단은 자정기능이 취약하다. 변호사 법무사 공인회계사 등은 금고 이상 형을 받으면 면허가 취소된다. 대한변호사협회 한국세무사회 등은 징계한 변호사·세무사의 이름과 사유를 공개한다. 의뢰인을 보호하면서 전문가집단의 평판을 유지한다. 반면 20대 국회에서 강력 범죄시 의사 면허를 취소하고 징계 내용을 공개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됐을 때 대한의사협회(의협)는 “특정 직업군을 불합리하게 차별하는 과잉규제”라는 입장을 냈고, 대한병원협회는 “(의사의) 명예실추 등 과도한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 측면을 고려해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의사들은 헌신적으로 일하고, 의학회와 전문의들은 방역정책이 중심을 잡도록 중요한 자문을 한다. 그러나 집단이기주의를 드러낸 사례들을 목격한 후 우리 사회는 의사에 냉랭한 시선을 갖고 있다. 지난해 공공의대 설립 등에 반대한 의료계 파업에 여론은 차가웠다. 의협은 ‘전교 1등’ 논란으로 비뚤어진 엘리트의식을 널리 알렸고 최근 코로나19로 약 2만명(6%)이 초과 사망했다는 근거 불명의 주장으로 또 한번 신뢰를 잃었다. 파업에 사과 한마디 안 한 전공의들은 구제 반대 여론만 높였다. 모든 의사가 문제일 리는 없으나 의사 단체들은 분명 반감 유발자다.

의사들은 전문가로서 공적 책임에 대해 더 민감해질 필요가 있다. 환자를 성심껏 진료하는 것이 시작이지만 끝은 아니다. 자정 기능, 환자 보호에 대한 법적 책임, 공공의대 설립 등 공적 이슈에 전문적 의견을 내야 한다. 조씨의 의사자격에 드물게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그가 진짜 전교 1등이 아니어서’는 아니기를 바란다.

김희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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