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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 않을 권리

입력
2021.02.22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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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2019년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9년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18일 제3지대 안철수·금태섭 예비후보의 토론회에서 국민의당 안 후보가 퀴어축제를 ‘보지 않을’ 권리를 언급하면서 논란이 됐다. 안 후보는 샌프란시스코의 퀴어 행진이 시내 도심에서 열리지 않는다는 잘못된 정보를 언급하며 어린아이 등을 고려해 “거부할 권리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뒤이어 국민의힘에서도 나경원?조은희 예비후보가 도심 개최 반대 의견을 밝혔다.

▦프라이드 퍼레이드로 불리는 퀴어 행진은 1970년 6월 28일 미국 뉴욕, 로스앤젤레스 등에서 시작됐다. 한 해 전 경찰이 뉴욕의 게이 바를 급습해 동성애자들을 체포하자 시민들이 저항했던 스톤월 항쟁을 기념한 것이다. 1960년대까지 동성애자 처벌·차별법이 있었던 미국이 2015년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기까지 커다란 전환의 동력은 1970년대에 불붙은 성소수자 인권 운동이었고, 프라이드 퍼레이드는 그 상징인 셈이다. 행진은 전 세계로 퍼져나가 이제 없는 나라가 없을 정도다.

▦후보들의 발언이 기만적인 것은 “동성애자 차별은 없어야 한다”면서도 그들에게 ‘안 보이는 곳에 있으라’고 하는 점이다. 아웃카스트(불가촉천민), 흑인, 여성 등 소수자에게 ‘비가시화’를 강요하는 것이 곧 차별과 억압의 기제라는 것을 인류학자 김현경씨는 책 ‘사람, 장소, 환대’에서 밝힌다. 그는 “(동등한 권리를 갖는 공동체 구성원으로 인정할 것이냐 하는) 성원권의 문제는 분류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이며, 인식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학의 문제”라고 썼다.

▦‘내 눈에 띄지 않는 한 너를 용인하겠다’는 주장은 차별, 혐오와 같은 말이다. “나도 안철수 후보를 보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어느 댓글을 보면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있다. 청각장애인을 차별하지 않는다며 수화통역사를 보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고, 어린이보호구역에 반대하지 않는다면서 과속할 권리를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서울시장이 되려는 정치인이라면 왜 성소수자들이 서울광장에 나오려 하는지 퀴어축제에 참가해 알아보기를 권한다.

김희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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