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주자들이 연일 '성소수자 이슈'를 정치 광장의 중심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퀴어문화 축제를 도심에서 보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며 성소수자 차별·혐오 발언을 공개적으로 한 것이 시작이었다. 나경원 전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국민의힘 주자들은 "퀴어축제를 불편해하는 사람의 권리도 소중하다"고 호응하며 불을 지폈다. '진보'를 표방하는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우상호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주자들이 침묵으로 몸을 사리면서 '혐오의 불길'이 타오르는 중이다.
그 불길을 지켜보는 정치권은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린다. 중간 계산 결과는 '손실보단 이익'. 이 때문에 혐오 발언을 사과하고 수습하기보단 계속 불을 지핀다. '소수자·약자 혐오'가 정치인들에게 당장의 '손해'가 아닌 이유, 뭘까.
21대 총선, 성소수자 혐오 표현 '최다'
성소수자를 겨냥한 혐오 표현은 선거의 단골 소재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21대 총선 선거운동 현장에서 92건의 혐오 표현이 공개적으로 사용됐다는 조사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혐오 표현 대상은 성소수자(25건)가 가장 많았고, 장애인(14건), 여성(13건), 노동조합(11건), 노인(3건) 등의 순으로 집계됐다.
성소수자 혐오는 특히 노골적이다. 선거 홍보물, 현수막에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홍보 문구를 넣거나, 정책 토론회 등에서 동성애 혐오 발언을 하는 식이다. 인권위는 "신랑이 입장을 하는데 여자가 들어온다면 저는 기절을 할 겁니다"(박지원 당시 민생당 후보 토론회 발언), "동성애 문제 때문에 에이즈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이동섭 미래통합당 후보 토론회 발언) 등을 21대 총선의 대표적 혐오 표현으로 지목했다.
개신교 표 겨냥... 표 얻으면 '남는 장사'
선거판의 성소수자 공격엔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다. ①우선 약 900만명에 달하는 '개신교인들의 표'가 막강하기 때문이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24일 "숫자로 따지면 성소수자는 소수"라며 "성소수자 표를 버리는 대신 개신교 표를 얻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진영을 가리지 않고 성소수자 혐오 발언이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표 득실만 놓고 보면 성소수자 혐오를 선동하는 것이 '남는 장사'라는 불순한 계산을 했다는 것이다.
②성소수자 혐오는 가해자에게 안전한 공격이다. 한국 사회에선 성소수자임을 밝히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다. 조직된 집단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기에 혐오·차별을 가해도 공개적으로 저항하는 힘이 크지 않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혐오 대상이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소수 집단일수록, 혐오의 역풍보다 표 결집 효과 커진다"며 "정치권이 그 취약점을 노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③혐오 발언은 선거 공학 차원에서 '경제적'이다. 소수를 따돌리면 다수의 마음을 모으고 결집하는 게 한결 쉽다. 선거판에서 정책·비전 경쟁보다 수월하고 효율적인 것이 혐오와 배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혐오 정치'와 과거 한국 정치에 기생한 '호남 차별론'이 대표 사례다. 사회학자 오찬호씨는 "소득불평등, 양극화로 인해 한국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차별의 정서를 자극, '내 편'을 쉽게 만들려고 정치권이 혐오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수자 혐오, 정치 전략 아닌 정치 폭력"
안 대표의 '퀴어축제 안 볼 권리' 발언은 '실수'라기보다는 정치적 득실을 고려한 의도적 발언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안 대표는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차기 대선을 앞두고 '보수의 적자'에 등극하고 싶어한다. 성소수자 때리기로 보수의 마음을 사는 것이 '쉽고 안전한 길'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보수의 리트머스지'라 할 수 있는 성소수자 이슈를 안 대표가 자발적으로 꺼낸 것은 말실수보단 계산된 정치 행위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나경원 전 의원, 오세훈 전 시장의 동조와 박영선 전 장관, 우 의원의 묵인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혐오하는 행위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 퇴행이자 폭력이다. 홍성수 교수는 "정치인의 발언은 그 자체로 영향력 크고 사회 표준으로 기능하기 때문에 보다 엄격하게 발화되고 평가돼야 한다"며 "공동체 구성원 일부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이득을 취하는 건 민주주의의 '소수자 보호 원리'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