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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피해자 보호 뒷전…여론재판 변질 된 '기성용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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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피해자 보호 뒷전…여론재판 변질 된 '기성용 논란'

입력
2021.02.28 16:2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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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용이 27일 전북 전주시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2021 개막전 전북현대와 FC서울의 경기에 나서고 있다. 뉴스1

기성용이 27일 전북 전주시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2021 개막전 전북현대와 FC서울의 경기에 나서고 있다. 뉴스1


초등학교 재학 당시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의혹에 직면한 기성용(32ㆍFC서울)이 K리그1(1부리그) 개막전 직후 기자회견을 자처해 “피해자 회유와 협박은 사실무근”이라며 “빨리 증거를 내놓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피해자들의 법률대리인을 자처하며 논란에 불을 지핀 법무법인 현의 박지훈 변호사는 “증거 전체를 공개하겠다”며 “원하는 대로 판을 크게 키워주겠다”며 맞받아쳤다.

시작부터 가해자가 특정되고 피해자 신분도 금세 드러나면서 기성용과 피해자 측 모두 상처를 입은 상황. 이제 사건은 가해자로 꼽힌 기성용과 피해자 측 가운데 한쪽은 치명상을 입고 무릎을 꿇어야만 끝나는 ‘끝장 승부’로 변질됐다. 체육계에선 공익과 피해자 보호는 미뤄둔 채 채 여론재판으로 치닫는 이번 사건 이후 악습을 바로잡기 위한 용기 있는 폭로가 되레 위축되는 게 아닐지 우려의 시선이 나오고 있다.


가해 증거 내놓으라는 기성용, 판 키우겠다는 법률대리인

기성용은 하나원큐 K리그1 2021 공식 개막전이 열린 27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홈팀 전북의 동의를 얻어 기자회견을 자처했다. 이날 선발 출전한 뒤 전반 36분 만에 교체돼 나온 기성용은 경기 종료 후 작심한 듯 약 30분에 걸쳐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강력한 법적 대응에 나설 뜻을 밝혔다. 24일 폭로 글이 공개된 이후 사흘 만의 기자회견으로, 소속사 및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하지 않고 직접 공식 석상에서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성폭행 의혹에 대해 “나와는 무관한 일이며, 나는 절대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피해자 쪽에서)증거가 있다면 빨리 증거를 내놓기를 바란다”며 “왜 증거를 얘기하지 않고 딴소리 하며 여론몰이를 하는 지 알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피해자들에 대한 회유와 협박을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나는 회유한 적이 없고, 증거가 있다면 (피해자 쪽에서) 내놓으면 된다”고 강조했다.

기성용 기자회견 직후 피해자 대리인을 자처한 박 변호사도 즉각 맞서겠단 뜻을 여러 언론을 통해 전했다. 박 변호사는 “조만간 증거 전체를 공개하겠다”고 했다. 일부 매체를 통해선 “우리도 회의를 통해 기자회견을 할지, 어떤 식으로 할 지 정할 계획”이라며 “(기성용이)원하는 대로 판을 크게 키워주겠다”며 전면전을 선포했다.

기성용이 27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2021 개막전을 마친 뒤 기자회견 하고 있다. 전주=김형준 기자

기성용이 27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2021 개막전을 마친 뒤 기자회견 하고 있다. 전주=김형준 기자



피해자도 특정돼버린 폭로글… 시작부터 ‘공익성’은 뒷전

이번 사건을 둘러싼 핵심 인물은 가해자 A와 B, 피해자 C와 D, 그리고 피해자 법률대리인 자격으로 보도자료를 배포한 박 변호사까지 5명으로, 여기에 기성용과 피해자들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처한 E까지 포함하면 6명으로 늘어난다. 시기(2000년 1~6월)와 장소(전남의 한 초등학교) 등 보도자료 내용이 워낙 구체적이라 기성용(A)과 축구선수 출신 대학 외래교수(B)는 폭로 직후 특정됐고, 기성용의 소속 구단인 FC서울은 물론, 개막을 앞둔 프로축구계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문제는 피해사실을 알리고자 작성된 정보로 인해 가해자뿐 아니라 피해자 C와 D의 신분도 폭로 당일 특정돼 이들의 2차 피해 방지에 실패한 점이다. 피해 상황에 대한 묘사가 선정적으로 적시된 점도 논란이었는데, 이 같은 상황에서 오히려 기성용에 대한 추가폭로는 커녕 C와 D로부터 학창시절 괴롭힘을 당했다는 폭로까지 등장, 성폭행 주장의 신빙성조차 훼손돼버렸다. 체육계는 물론 사회적 파장이 커진 폭로 초반 박 변호사는 취재진 연락을 받지 않거나 선별적으로 대응하면서, 폭로의 공익성 또한 의심받기 시작했다.

반면 가해자로 특정된 기성용은 소속사와 SNS, 그리고 기자회견을 통해 결백을 주장하며 정면돌파 하고 있다. 기성용은 기자회견에서 C, D로부터 피해를 받은 사람들은 계속 나오고 있는 상황을 강조하면서 “지난 20년 동안 연락이 없던 친구들이 먼저 돕겠다고 연락이 온다”며 “당시 (초등학교 축구부)상황에 대해 증언해 줄 수 있는 많은 사람이 있다”고 밝혔다.


진실공방으로 번진 싸움…. ”용기 있는 폭로 위축될까 우려”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은 사건 당시 형사미성년자인데다 공소시효도 지나 형사 책임을 물을 수도 없고 배상도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번 폭로가 과거의 체육계 악습을 바로잡는 계기가 된다면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게 현장 목소리다.

그러나 공익성이 훼손된 채 진실 공방으로 번진 폭로전이 자칫 악습을 바로잡고자 발버둥치는 체육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도 큰 타격을 안길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프로선수 출신 유소년 축구지도자 A씨는 “30대에 접어든 선수나 지도자 가운데 맞거나 때리지 않고 성장한 사람 찾기도 어려울 것”이라며 “체육계 학교폭력 문화에 경종을 울리는 최근 움직임은 반길 일이지만, 그 목적을 공익과 미래가치에 둬야 더 큰 지지를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용철 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 “(진실공방이 된)지금의 상황을 피해자들도 진짜 원하고 있는지, 그리고 피해자 인권에 반하는 일이 없었는지 돌아봐야 할 때”라면서 “누가 이겨도 상처가 될까 우려되고, 더 큰 걱정은 이번 일로 피해자 쪽이 타격을 받았을 때 악습을 바꿀 수 있는 다른 폭로들이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김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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