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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갈 데가 없다” 성범죄 출소자 이야기 들어보니

입력
2021.03.03 04:30
수정
2021.03.03 09:39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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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소자 3인 만나보니
"혼자 남겨진다면 차라리 교도소가 나아
재범률 되레 높아질 수 있어"
출소 10명 중 3명 범행지 돌아가
전문가 "먹고 사는 문제 돕는 게 근본적 해결책"

강간 등으로 복역했다가 지난해 출소한 한 성범죄자가 다리에 찬 전자발찌. 박지영 기자

강간 등으로 복역했다가 지난해 출소한 한 성범죄자가 다리에 찬 전자발찌. 박지영 기자

"왜 살던 곳으로 돌아가냐고요? 다른 지역에 고시원을 따로 얻어서 사는 방법도 고민해봤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2018년 주거지 인근에서 여성을 강제 추행해 2년 가까이 복역한 김현수(가명·49)씨는 지난해 출소 후 범행지 인근이자 이전에 살던 곳인 수도권 한 지역으로 돌아왔다. 김씨는 전자발찌로 감독받고 있으며 이곳에서 직장을 얻었다. 김씨에 따르면 그의 주거지는 피해자가 사는 곳에서 불과 700m 떨어져 있다. 김씨는 "다른 지역에 가면 사람들을 새로 사귀어야 하는데, 서로 스트레스 받을 것 같아서 고민 끝에 살던 곳으로 왔다"고 말했다.

조두순(69)을 비롯한 많은 성범죄자들은 출소 후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간다. 성범죄자의 범행 장소가 대부분 주거지 인근이란 점을 감안하면, 출소 후 피해자와 멀지 않은 곳에 다시 터를 잡는 셈이다. 시민들 불안감은 커지고 있으나, 출소자들을 강제로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키는 대안은 인권침해 문제로 전문가 사이에서도 지지받지 못하고 있다. 결국 '안전한 공존법'을 마련하는 방법 외에는 마땅한 묘수가 없는 상황이다.

수도권 성범죄자 30%가 거주지와 범행지 일치

실제 성범죄자 10명 중 3명은 출소 후 자신의 범행지 부근으로 돌아오고 있다. 한국일보가 법원으로부터 신상정보 공개 명령을 받아 '성범죄자 알림e'에 등록된 성범죄자 중 인구 밀집지역인 수도권에 거주하는 1,622명(2020년 말 기준)의 주거지를 전수 분석한 결과, 486명(30.0%)의 거주 시·군·구와 과거 범행 시·군·구가 일치했다. 서울은 성범죄자 중 23.6%가 거주지 인근에서 범행을 저질렀고, 경기가 35.7%, 인천은 23%에 달했다.

수도권 신상공개 성범죄자 중 거주 시·군·구와 과거 범행 시·군·구가 일치하는 비율

수도권 신상공개 성범죄자 중 거주 시·군·구와 과거 범행 시·군·구가 일치하는 비율

성범죄자 스스로도 범행지 인근에 사는 게 편치 않을 법도 한데, 왜 다수가 돌아오는 것일까. 최근 한국일보가 만난 출소자 3명은 그 이유로 △가족과 지인이 있어서 △다른 지역으로 옮기기엔 경제적 어려움이 있어서 △전자발찌를 찬 채로 다른 지역에서 적응하긴 더욱 힘들 것 같아서 등을 꼽았다. 3명 중 1명은 거주지가 범행지 인근이고, 또 다른 1명은 범행지 바로 옆 자치구(區)에 산다.

출소자들은 정서적 불안감이 커서 새 주거지에 정착하는 데 부담을 느낀다고 말한다. 강간미수로 4년여 복역 후 지난해 출소한 이진호(가명·44)씨는 "회사가 아무리 좋아도 서울에서 근무하던 사람을 울릉도로 보내면 되겠느냐"며 "가족과 지인이 사는 곳으로 가야, 만날 사람도 있고 대화할 사람도 있어 안정이 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취업 제한이 엄격해 작은 경제활동이라도 하려면 익숙한 지역에 거주하는 게 필요하다고도 했다. 김현수씨는 "전자발찌를 차고 있어서 주거지로부터 일정 거리를 벗어나선 안 되는 탓에 동네를 중심으로 일할 수밖에 없다"며 "생활 반경이 좁아서 새로운 지역에서 일거리를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라고 말했다.

지난해 출소한 성범죄자 3명이 설명한 자신이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온 이유.

지난해 출소한 성범죄자 3명이 설명한 자신이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온 이유.


"터전 떠나 혼자 남겨지면 안정감 멀어져"

출소자들은 자신들을 사회에서 격리하거나 거주지를 제한할 경우 재범률이 되레 높아질 수 있다고 본다. 가족이나 지인을 만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안정감을 찾지 못하고 혼자 남겨진다면, 우발적 재범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김현수씨 역시 마지막 범행 당시 혼자 생활 중이었다고 한다. 김씨는 "혼자서만 생활하다보니 스트레스가 극심해졌고 정신을 차리고 나자 어느새 사고를 친 이후였다"고 했다.

미국은 다수 주(州)에서 학교나 공원 등 인근에 성범죄자가 거주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인구밀도가 높은 한국에선 거주지를 제한하면 경제활동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을수록 재범률이 높아진다는 게 전문가들 진단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7년 1월부터 2020년 9월까지 재범한 전자발찌 착용자 가운데 직업이 없었던 비율은 57.3%(138명)에 달한다. 청소년을 성폭행해 5년간 복역하고 출소한 박정현(가명·30)씨는 "그렇게 해선 안 되지만, 심리치료도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고립되면 '어차피 교도소에서 먹여주고 재워주는데 재범하면 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고립 전략 한계... 안전한 공존법 고심해야"

정부도 성범죄자의 사회적 고립을 가장 경계하고 있다. 법무부는 지난해 조두순 출소 전에 그의 재범 가능성이 적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는데, 경제활동은 물론 사회활동 계획이 없어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될 수 있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법무부 관계자는 "성범죄자를 어떤 특정 공간에 격리하거나 거주지를 제한하는 것은 되레 재범 위험성을 키우는 일"이라며 "피해의식이나 반항심만 키우고, 범죄예방 효과도 적어 예산이 낭비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성범죄자를 영구 격리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시민들이 안전하게 살 권리를 충족시키면서 성범죄자 재범률도 낮출 수 있는 현실적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진단한다. 성범죄자 교화를 맡아 온 코사코리아(COSA Korea) 박정란 대표는 "격리하는 것보다는 그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게 실질적인 범죄 예방책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박지영 기자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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