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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통령의 부패 징역형… '노블레스 오블리주' 사라진 프랑스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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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통령의 부패 징역형… '노블레스 오블리주' 사라진 프랑스 충격

입력
2021.03.03 05:4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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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코지 재임시절 비리로 사법처리된 첫 대통령
최근 프랑스 고위 공직자들 잇따른 비리로 '몸살'

니콜라 사르코지(가운데) 전 프랑스 대통령이 1일 파리 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이날 법정에서 판사 매수 혐의로 집행유예 2년을 포함해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았다. 파리=AP 연합뉴스

니콜라 사르코지(가운데) 전 프랑스 대통령이 1일 파리 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이날 법정에서 판사 매수 혐의로 집행유예 2년을 포함해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았다. 파리=AP 연합뉴스

‘노블레스 오블리주’,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이 말은 이제 원산지 프랑스에서 용도 폐기돼야 할 것 같다. 공직자의 높은 도덕성을 자랑으로 삼던 프랑스 사회가 고위 정치인들의 잇단 부패ㆍ비리 혐의로 발칵 뒤집혔다. 급기야 대통령을 지낸 니콜라 사르코지까지 실형을 받았다. 전직 대통령이 감옥을 수시로 드나드는 한국과 달리, 프랑스에서 재임 시절 비리로 징역형을 받은 대통령은 처음이다. 게다가 모든 혐의가 규명된 것도 아니라 추가 재판 결과에 따라 사회적 후폭풍이 더 거세질 수도 있다.

보수우파 공화당 소속으로 2007~2012년 재임한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법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2014년 불법 정치자금 의혹 수사와 관련, 내부기밀을 제공하는 대가로 질베르 아지베르 당시 대법관에게 퇴임 뒤 화장품 업체 로레알의 고위직을 차지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꼬드긴 혐의다. 다만 징역 2년 실형 이상만 구금되는 프랑스 관례상, 복역 수모는 피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프랑스 사회는 침통한 분위기에 빠졌다. 프랑수아 보너트 금융검사장은 “한 때 사법부 독립을 보장하던 전직 대통령이 공적 지위를 이용해 사적 이익을 추구한 범죄라는 점에서 특히 심각하다”고 개탄했다. 1958년 제5공화국을 출범시킨 이후 프랑스 현대사에서 7명의 전직 대통령 중 사르코지만 유일하게 범법자로 몰락했다. 그만큼 치욕적인 불명예다. 2011년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이 공금유용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적이 있으나 사건 자체는 1990년대 파리시장 재직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사르코지는 직접 재판에 나간 첫 전직 국가원수라는 오명도 썼다.

최근 몇 년간 프랑스는 고위 공직자들의 비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대부분 사르코지의 측근들이라 심각성이 더하다. 정권 자체의 타락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르코지 정부에서 총리를 지냈고 대선 후보였던 프랑수아 피용은 하원의원 시절 부인을 보좌관으로 위장 취업시켜 혈세를 낭비한 혐의로 징역 5년, 집행유예 3년을 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 중이다. 내무장관을 지낸 클로드 게앙은 과거 경찰로부터 매달 1만 유로(약 1,400만원) 현금을 받아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 징역 1년형을 받았다. 또 사르코지당 출신인 파트리크 발카니 전 르발루아시 시장은 탈세ㆍ돈세탁 혐의로 5년형을 살다가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2013년 사회당 정부에선 탈세를 적발해야 할 국세ㆍ예산장관(제롬 카위자크)이 스위스 비밀은행 계좌를 이용해 세금을 탈루한 혐의로 실형에 처해진 어처구니 없는 사건도 있었다.

사르코지 측은 즉각 항소 의사를 밝혔지만, 정치 인생은 완전히 끝났다는 평가다. 파스칼 페리노 파리정치대 교수는 “사르코지는 퇴임 후에도 정치적 후계자 부재에 힘입어 우파세력 배후에서 대체 불가능한 킹메이커로 군림했지만 이번 판결로 정치 생명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고 짚었다. 그는 2012년 대선에서 영수증을 위조해 대선자금을 불법 조성한 혐의로 이달 말 또 다른 재판을 받아야 한다. 이 밖에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리비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에게서 뒷돈을 받은 혐의도 받아 당분간 정치적 재기는 요원한 상황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일련의 사건은 프랑스 정치 엘리트에 대한 대중의 좌절감을 불러일으켰다”고 지적했고, 페리노 교수도 “사르코지의 범죄 혐의는 정치인 모두가 부패했다는 부정적 인상과 불신을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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