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슨 총리, 거론 회피… "여왕 존경한다"고만
'인터뷰 부적절' 47% vs '적절' 21% 설문조사
美NYT "아슬아슬한 英사회 속 긴장 드러내"
왕실에서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메건 마클 영국 왕손빈의 폭로성 인터뷰에 보수당 정권이 난감해졌다. 여론을 의식해 일단 침묵하고 있지만, 인종주의는 인화성이 워낙 강한 이슈다. 진퇴양난에 빠진 형국이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8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왕실이 메건 주장 관련 조사를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여왕, 그리고 국가 및 영연방을 통합하는 여왕의 역할을 나는 최고로 존경해 왔다”며 “왕실 문제에 대해 거론하지 않는다는 오랜 방침을 이번에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남편인 해리 왕손과 함께 한 인터뷰는 전날 미국에서 영국보다 하루 먼저 공개됐다.
입헌군주제 국가에서 왕실의 위상은 특별하다. 일본이 그렇고 영국도 마찬가지다. 이날 영국 방송 스카이뉴스는 여론이 이들 부부에게 우호적이지 않다며 인터뷰가 부적절했다는 의견(47%)이 적절했다는 답(21%)을 압도한 영국 성인 2,111명 대상 유고브 설문조사 결과를 전했다. 영국 정부가 줄곧 왕실 문제에 선을 그어 온 것은 상당 부분 이런 전통적 국민 정서를 감안해서였다.
더욱이 보수당 기반층은 권위에 더 민감하다. 보수당 소속인 잭 골드스미스 상원의원은 트위터에 “(해리 왕손이) 왕실을 공중분해 시키고 있다”고 일갈했고, 유명 토크쇼 진행자인 피어스 모건은 “메건의 허튼소리는 예상했지만 해리까지 왕실과 군주제를 이렇게 무너뜨리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전기 작가들과 출입 기자들도 침묵할 가능성이 큰 왕실을 대신해 불쾌감을 표시하는 축이다. 왕손 부부가 인종차별 혐의자를 특정하지 않아 왕실 전체가 부당하게 매도되도록 만들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영국에서 인종주의는 잠복해 온 쟁점이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인터뷰가 영국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아슬아슬한 인종차별의 긴장을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영국 버밍엄시립대 방문학자 마커스 라이더 교수는 NYT에 왕손 부부 아들 아치의 왕증손 지위 논의에 피부색 문제가 결부됐다는 건 중요한 문제라고 논평했다. 영국 제1야당 노동당에서도 왕실이 조사에 나서라고 촉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더욱이 메건의 뒤에는 모국인 미국과 세계의 비(非)백인들이 있다. 왕손빈 학대로 영국 왕실이 변화의 기회를 놓쳤다거나 메건의 인종차별 상처를 들쑤셨다는 비판이 속출하는 모습이다. 인터뷰를 방영한 미 CBS방송이 이날 “무례한 것과 인종차별은 같지 않다”며 영국 왕실ㆍ언론을 질타한 메건의 발언을 추가 공개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 희색을 감추기 힘든 인물은 인터뷰 진행자인 미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다. 이날 미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에 따르면 1,710만명의 미국인이 인터뷰를 시청한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 황금 시간대에 방영된 오락 특집물 중 시청자 수가 가장 많았다. 방영권료 700만~900만달러(79억~101억원)를 벌어들인 제작사 하포프로덕션은 윈프리가 운영하는 회사다. AP는 “희생제물과 빌런(악당)들이 등장하는 이번 인터뷰의 유일하고 확실한 승자는 미 미디어 여왕인 윈프리”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1월 영국 왕실과의 결별을 선언한 해리ㆍ메건 부부는 현재 미 캘리포니아주(州)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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