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기적' 일군 대표 기업인
1946년 '현대' 상호 만들고, 건설로 승승장구
1971년 조선소도 없이 선박 수주, 74년 '포니' 탄생
기업인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군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21일로 타계 20주기를 맞았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범현대 오너 일가는 서울 종로구 청운동의 정 명예회장 옛 자택에서 순차적으로 제사에 참여했다.
코로나 방역 지침에 순차적 방문 제사
21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현대가 가족들은 20주기를 하루 앞둔 20일 저녁 청운동 자택을 방문해 제사를 지냈다. 올해 제사는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준수하기 위해 시간대를 나눠 순차적으로 지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첫 순서는 정 명예회장의 장손이자 제주를 맡은 것으로 알려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부부였다. 정 회장의 부친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이어 정 명예회장의 아들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 정몽일 현대기업금융 회장이 차례로 참석했다. 며느리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조카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 손자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사장,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부사장, 정성이 이노션 고문과 남편 선두훈 대전선병원 이사장 등도 청운동 자택을 찾았다. 정대선 현대비에스앤씨 사장은 참석하지 않았으나 어머니인 이행자 여사와 아내인 노현정 전 KBS 아나운서는 참석했다.
범현대가 가족과 그룹 임직원은 21일 전후로 경기도 하남시 창우동 선영을 찾을 예정이다.
'한강의 기적' 일궈낸 정주영
정 명예회장은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낸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1915년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에서 가난한 농가의 6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정 명예회장은 16세에 소 판 돈 70원을 들고 상경하며 기업가의 꿈을 키웠다. 18세이던 1931년 자신이 일했던 서울의 쌀가게 '복흥상회'를 인수하며 첫 사업을 시작했다.
1946년 서울 중구 초동에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차리며 '현대'라는 상호를 탄생시켰고, 이듬해에 현대건설의 전신인 '현대토건사'를 설립했다. 한국전쟁 전후 복구 사업을 통해 건설업으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1971년 조선소도 없이 사업계획서 한 장과 울산 미포만 백사장 사진만 들고 영국 런던으로 떠나 26만톤짜리 선박 2척까지 수주하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1974년엔 최초의 순수 국산자동차인 포니를 생산하며 한국 자동차 산업의 기틀을 다졌다.
1992년엔 대권에 도전했으나 고배를 마셨고,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엔 대북사업에 박차를 가하며 1998년 소떼 500마리를 몰고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현재 현대그룹은 정 명예회장의 차남 정몽구 명예회장의 현대자동차그룹, 6남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현대중공업그룹, 5남 고(故) 정몽헌 회장 가족의 현대그룹, 3남 정몽근 회장의 현대백화점그룹 등으로 나뉘어 아산 정주영 회장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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