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 후보가 2등 후보를 견제하려고 선거를 일부러 망치려 하겠습니까."
이재명 경기지사와 가까운 더불어민주당의 한 의원은 22일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지사가 민주당의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패배를 은근히 바라는 게 아니냐는 '설'을 반박하면서다. 여권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를 이 지사 진영이 기획 폭로했다는 음모론이 나도는 터다. 민주당이 보선에서 지면 공천을 한 직전 당 대표이자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인 이낙연 전 대표가 큰 상처를 입게 되기 때문이다.
'해당 행위'라는 비판이 쏟아지자, 이재명계는 특유의 기동력을 동원해 '4·7 보궐선거 원팀'을 강조하고 나섰다. 이 지사 본인도 박영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를 측면 지원 중이다.
오세훈 협공·박영선 캠프에 인력 지원
친이재명계의 원팀 과시 행보는 이 지사가 지난 11일 "지상 최대의 이간 작전이 시작됐다"며 '발끈'한 뒤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 지사는 이 전 대표 측과의 충돌이 있었다는 언론 보도를 반박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사적 욕망보다 공익을 우선하는 진짜 민주당원은 원팀 정신을 잃지 않는다"고 했다.
'원팀 강조'의 한 축은 인적 지원이다. 이 지사의 측근인 이규민 민주당 의원이 박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서울중소기업육성특별위원장' 직책을 맡았다. 박 후보가 19일 '시민 1인당 재난위로금 10만 원 지급' 공약을 내놓자, 이 의원은 "경기도 재난기본소득과 마찬가지로 서울시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반겼다. 이 의원과 또 다른 이재명계인 김병욱, 임종성 민주당 의원은 박 후보 캠프로 보좌진을 파견했다.
친이재명계는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견제에도 열심이다. 16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병욱 의원은 오 후보의 '내곡동 셀프 수용' 의혹을 언급하며 정부의 조사를 요구했다. LH 사태 관련 현안 질의가 정무위 소집 목적이었지만, 김 의원은 보도자료까지 내면서 오 후보를 겨냥했다.
이재명, 페북에 박영선 책 '공유'
이 지사는 공직선거법상 광역단체장의 선거 중립 의무 때문에 명시적 선거 운동을 할 수 없다. 이에 선거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박 후보 지지 메시지를 '은근히' 발신하고 있다. 20일엔 페이스북에 박 후보의 저서인 '박영선과 대전환' 표지 사진을 공유하며 "정치인 박영선의 철학과 비전이 오롯이 담겨 있다"고 홍보했다. 17일엔 박 후보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시절 방문했던 경기 평택시의 스마트팜 기업을 찾아 적극 지원을 약속했다. 여권 관계자는 "박 후보를 측면 지원하기 위한 이 지사의 기획 일정으로 봐야 한다"고 귀띔했다.
'잡음 차단'에도 나섰다. 친이재명계 핵심인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15일 "3기 신도시는 경기주택도시공사(GH)가 주체가 되고, LH는 보조 참여하는 방향으로 하는 게 어떤가"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전체공개'로 올렸다가 '친구공개'로 바꿨다. 이 지사의 '어부지리 역할론'을 주장한 것으로 해석돼 시끄러워진 데 따른 것이다. 정 의원은 "불필요한 오해를 사는 것 같아서 공개 대상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조직적·적극적 '원팀 행보', 왜?
이 지사 진영의 '원팀 행보'에는 친문재인계에 공격 빌미를 주지 않겠다는 전략적 판단이 깔려 있다. 4·7 보궐선거가 끝나면 대선 레이스가 시작된다. 여권 주류인 친문계의 '심기'를 건드려 유리할 게 없다. 이 지사는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과 각을 세운 이후 친문계의 마음을 사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의 보궐선거 패배가 '정권교체론'에 불을 붙이면 이낙연 전 대표뿐 아니라 이 지사도 동반 추락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하는 대목이다. 이 지사의 한 측근 의원은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지면 선거판에서 야권의 파이만 커지는 효과를 낳는다. 이 지사에게도 결코 유리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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