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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복권" 임종석이 드러낸 '86세대의 퇴행적 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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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복권" 임종석이 드러낸 '86세대의 퇴행적 낭만'

입력
2021.03.31 10:30
수정
2021.03.31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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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2019년 1월 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후임 비서실장에 노영민 주 중국대사를 임명하는 내용을 포함한 수석비서관급 이상 인사를 발표한 뒤 소감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2019년 1월 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후임 비서실장에 노영민 주 중국대사를 임명하는 내용을 포함한 수석비서관급 이상 인사를 발표한 뒤 소감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자주 글을 올리는 정치인은 아니다. 2019, 2020년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라곤 14개가 전부다. 그런 임 전 실장이 최근 페이스북에 '폭탄 발언'을 던졌다. 메시지의 방점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 '복권'에 뒀다. 임 전 실장은 23일 비서 성추행 혐의로 피소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그렇게 몹쓸 사람이었냐"고 반문했다.

피해자 A씨가 기자회견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 자리가 바뀌었다"며 호소한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나온 글이다. 유명 정치인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유도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민주당 역시 "자제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내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임 전 실장은 이튿날인 24일에도 박 전 시장을 옹호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재차 올리며 '실언'이 아닌 '소신'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86운동권의 고립된 낭만주의?

임 전 실장의 발언에 대한 '문화적' 해석은 86운동권 세대의 특유의 이분법적 세계관에 주목한다. 선(민주화 세력)과 악(군부 세력)이 대결하는 세상에서 성폭력은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되며, 오히려 '거악 척결'에 방해되는 요소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고는 동료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낭만'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한 민주당 소속 보좌진은 임 전 실장의 발언을 두고 "86운동권 정치인식 낭만주의의 발로"라고 분석했다.

임 전 실장과 함께 대표적인 86운동권 출신 정치인인 우상호 민주당 의원도 지난달 10일 "박원순이 우상호고, 우상호가 박원순"이라며 결백을 호소하는 박 전 시장 배우자의 글을 공유해 논란을 샀다. 성폭력 사건과 피해자의 2차 가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우 의원은 박 전 시장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논하는 동지"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치권 내 권력형 성폭력이 사회 문제로 부상한 시기에, 이 같은 유력 정치인들의 언행은 성폭력 문제에 대한 대응 능력을 '1980년대로 퇴행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임 전 실장의 발언은 성폭력이 존재하는 구조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박원순 성폭력 사건을 인정하지 않는 지지자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한 것"이라며 "운동권 내 성폭력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던 80년대에 사고가 머물러 있는 게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용기 있는 임종석'으로 존재감 키우기?

임 전 실장의 언행은 고도의 정치적 계산에 따른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박 전 시장을 언급하는 건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엔 악영향을 끼치지만, 차기 대선까지 멀리 보면 '득'과 '실'이 팽팽하다는 논리다.

박 전 시장 성추행 피해자의 말을 여전히 믿지 않고 박 전 시장에게 부채 의식을 갖고 있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임 전 실장의 발언을 '실수'가 아니라 '용기'로 해석하고 임 전 실장을 다시 봤다고 말한다. 임 전 실장이 차기 대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박 전 시장 미화는 강성 여권 지지층의 마음을 살 전략적 카드가 될 수 있다. 이미 대형 주자 반열에 올라 박 전 시장을 공개적으로 두둔하지 못하는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이재명 경기지사와 차별화할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임 전 실장이 존재감을 키우려고 나섰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임 전 실장에게 실제 그런 의도가 있었다면, 성추행 사건을 정치에 이용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홍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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