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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여대생 아버지 “딸 성폭행 진범 따로 있다” 마르지 않는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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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여대생 아버지 “딸 성폭행 진범 따로 있다” 마르지 않는 눈물

입력
2021.04.03 15:00
수정
2021.04.03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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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경찰 초동수사 극히 부실”?
23년 만에 국가 배상 인정받았지만?
“사건 실체 미궁… 배상도 상식 이하"

23년 전 대구에서 성폭행 후 숨진 여대생의 아버지 정현조씨가 3일 대구의 한 아파트에서 휴대폰에 저장된 딸의 사진을 보고 있다. 그는 "진범은 따로 있다"고 말한다. 전준호 기자

23년 전 대구에서 성폭행 후 숨진 여대생의 아버지 정현조씨가 3일 대구의 한 아파트에서 휴대폰에 저장된 딸의 사진을 보고 있다. 그는 "진범은 따로 있다"고 말한다. 전준호 기자

23년 전 '대구 여대생 성폭행 사망사건'의 유족들이 2일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지만 아버지 정현조(73) 씨는 여전히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5부(재판장 이관용)가 수사기관의 부실한 초동수사로 인한 정신적 피해를 물어 지연손해금을 포함한 1억3,000만원 가량의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으나 사건의 실체가 전혀 밝혀지지 않았고, 배상금도 상식 이하라는 주장이었다. 단순교통사고로 치부하며 부검 당시 정액검사도 하지 않았던 경찰은 정 씨의 끈질긴 재수사 요구로 사건 발생 15년 후인 2013년 스리랑카인 3명을 범인으로 지목했으나 증거불충분으로 2017년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정 씨는 "애당초 스리랑카인은 범인이 아니고, 진범은 따로 있다"고 주장한다. 재판 다음날인 3일 대구 수성구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업무를 보고 있는 정 씨를 만났다.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겼다.

"성폭행 사망사건을 단순교통사고로 초동수사한 경찰의 잘못과 책임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감사하다. 하지만 초동수사만 제대로 됐어도 23년 세월을 끌지 않았을 것이다. 사건 발생 직후 생업을 아내에게 맡기고, 진상 규명을 위해 뛰어다니면서 겪은 가정사를 열거하면 배상의 수준은 10%도 되지 않는다. 항소를 고려하고 있다."

(재판부는 “부모에게 각각 2,000만원, 형제 3명에게 각각 500만원씩 총 5,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사건이 발생한 발생한 1998년부터 연 5%인 지연손해금을 더하면 총 1억3,000만원 정도다.)

-초동수사 무엇이 문제였나.

"딸이 트럭에 치여 숨졌을 당시 속옷이 벗겨져 있었다. 성범죄 정황이 뚜렷한데도 경찰은 부검에서 혈액과 알콜검사만 하고 정액채취검사를 누락했다. 당시 부검의가 '몸에서 정액이 소량 검출됐으니 국과수 조사결과가 나오면 수사가 시작될 것'이라고도 했지만 수사는 단순교통사고로 일단락됐다. 경찰도 문제지만 수사를 지휘한 검찰 책임이 크다."

(정은희 양은 대학교 1학년이던 1998년 10월17일 새벽 5시10분쯤 대구 구마고속도로에서 23톤 트럭에 치여 숨졌다. 학교 축제 후 귀가하던 정 양은 집 반대 방향으로 7.7㎞ 떨어진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숨졌고, 입고 있던 속옷도 사고 현장 인근에서 뒤늦게 발견됐다.)

-2013년 스리랑카인 3명이 범인으로 지목돼 수사를 받았다.

"스리랑카인은 범인이 아니다. 경찰이 스리랑카인을 범인으로 단정할 때 '정액 양성반응이 나왔다'며 사진으로 제시한 딸의 팬티는 사건 직후 현장에서 발견된 것과 달리 많이 훼손돼 있었다. 또 거들은 형태와 길이가 달랐다. 은희와 쌍둥이인 딸이 속옷을 같이 입기 때문에 확인할 수 있었다. 경찰에 증거물을 확인해보겠다고 요청했으나 묵살당했다."

(2013년 범인으로 지목된 3명 중 2명은 이미 스리랑카로 돌아갔고 정 양을 고속도로 아래 굴다리로 데려가 성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은 혐의로 기소된 K씨는 2017년 무죄가 확정됐다. 경찰은 K씨를 스리랑카로 추방했고, 현지에서 기소됐다. 여고생 성매매 혐의로 DNA를 채취당한 K씨는 정 양 속옷의 DNA를 대조하는 과정에 일치판정이 나와 범인으로 지목됐다.)

23년 전 대구에서 성폭행 후 숨진 여대생의 아버지 정현조씨가 3일 대구의 한 아파트에서 딸 사건과 관련된 자료를 검색하고 있다. 전준호 기자

23년 전 대구에서 성폭행 후 숨진 여대생의 아버지 정현조씨가 3일 대구의 한 아파트에서 딸 사건과 관련된 자료를 검색하고 있다. 전준호 기자

-정액이 묻은 속옷이 사고 직후 현장 부근에서 발견된 것과 다르다는 말은 증거물이 자의든 타의든 조작됐다는 얘기인데.

"그렇다. 사고 직후 본 속옷과 다르다. 경찰이 부검을 하면서 정액검사도 하지 않았으니 온갖 의혹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진범이 따로 있다는 얘기인가.

"당시 경찰 조사를 받은 사람들 중에 범인이 있는 것으로 안다. 심증은 가지만 경찰이 물증을 통해 밝혀야 할 사안이다."

-1998년 사건 발생 후 23년간 어떻게 지냈나.

"당시 구두디자인사를 하다 반찬가게를 연 지 1주일 만에 사고소식을 들었다. 경찰 수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아 아내에게 가게를 맡기고 전국을 뛰어 다녔다. 생계를 위해 2011년 아파트 경비일에 다시 뛰어들었지만 시간날 때마다 진상규명에 매달리고 있다. 가족들이 겪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앞으로 활동 계획은.

"올 초에도 경찰에 재수사를 요구했다. 공소시효가 지났더라도 사건의 실체는 밝혀져야 한다. 나는 못 배웠지만 검경은 실체를 규명해야 하는 것 아닌가. 범인이 딸의 묘지에 가서 '잘못했다'고 빌면 끝낼 수 있다. 그래야 나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대구= 전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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