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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여행의 기록

입력
2021.04.18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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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카트만두 ⓒ게티이미지뱅크

네팔 카트만두 ⓒ게티이미지뱅크


17년 전 나는 네팔 카트만두에 있었다. 중국 횡단을 마치고 카트만두를 거쳐 인도로 남하하는 여정이었다. 나는 인도 동부 캘커타에서 여정을 시작하기 위해 동쪽 접경으로 출국하기로 했다. 입국 시 통과 비자를 끊었기에 다음 날 저녁까지 네팔 동부에 있는 카카르비타에서 인도의 다르질링으로 나가야 했다.

카트만두에서 동쪽 국경까지는 대략 버스로 스무 시간쯤 걸렸다. 나는 오후 2시에 출발해서 다음 날 아침에 도착하는 버스를 예약했다. 여정이 길었기에 조금 안락하다는 버스를 예약했다. 출발 장소에 30분 전에 도착하니, 여행사 직원은 버스가 이미 오전에 떠났다고 했다. 당시 네팔은 정부군과 마오이스트(마오쩌둥 주의) 간의 내전이 한창이었다. 교통 사정이 늘 불안정했고, 정체 소식을 들은 버스가 현지 승객들을 모아 일찍 출발해버린 것이었다.

나는 내일까지 국경을 반드시 넘어야 한다고 했다. 여행사에서는 다른 버스가 있다며 어딘가로 나를 안내했다. 잠시 뒤 나타난 것은 낡고 지저분한 만원 버스였다. 육십 명 정도가 정원인 버스의 비좁은 좌석 사이로 맨 뒤의 구석 자리만 딱 하나 남아 있었다. 간신히 내 몸을 앉힐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었다. 이 버스를 타는 수밖에 없었다.

만원 버스는 그럭저럭 주행을 시작했다. 여행은 상당히 고역이었다. 좌석이 너무나 비좁고 딱딱했으며 버스는 심하게 덜컹거렸다. 전신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해가 저물고도 버스는 한참 어두운 산을 넘어 운행했다.

자정이 다 되어 버스는 갑자기 멈추었다. 눈앞에 다른 버스도 줄 서서 멈춰 서 있었다. 나는 사정을 물었다. 옆 사람은 정부군이 통행을 막았다고 했다. 언제 재개될지 모르지만, 아침까지는 일단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사람들은 바람도 쐴 겸 바깥에 나왔지만 깜깜한 산속이었고 상황이 변할 것 같지 않았다. 날이 추워 모두가 버스로 돌아왔다. 우리는 기약 없는 운행을 기다려야 했다. 어떻게든 잠이라도 청해야 했지만 멈춰 있는 버스의 좁은 좌석에서 편히 잠들기는 어려웠다. 버스 안의 육십여 명은 맨정신으로 산속의 어두운 도로 한가운데에서 추위를 견디며 아침을 기다렸다. 창으로는 달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몇 명이 조용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언어로 된 노래는 영적이고 신비로웠다. 고산 지대의 음악이라 조금 더 신과 가깝다고 느낄 만큼. 나는 알아듣거나 따라 부를 수 없었지만, 곧 버스 안의 모든 사람들은 그 노래를 조용히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들의 음률은 단순했고 가락은 길게 늘어졌고 목소리는 맑았다. 한 노래가 끝나면 이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다른 노래를 시작했다. 달빛이 쏟아지고 고요한 선율이 울려 퍼지는 버스였다.

불안한 마음과 욱신거리는 육체는 가라앉기 시작했다. 버스는 삽시간에 신비로운 공간이 되었다. 그들은 노래를 부르며 하나둘씩 잠들기 시작했다. 머리를 기대고 꿈의 세계로 빠져든 사람이 늘어갔다. 서로가 서로를 위한 자장가를 부르면서 버스는 평온한 꿈의 세계로 주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잠에 빠져든 사람만큼 노랫소리는 가늘고 은은해졌다. 대략 십여 명이 남아 노래를 부를 때, 나 또한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해가 떠 있었고, 버스는 주행 중이었다. 우리는 지난밤을 서로의 음악으로 견뎌낸 것이었다.


남궁인_삶과 문화_필진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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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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