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운명의 조성' C 단조
편집자주
C major(장조), D minor(단조)… 클래식 곡을 듣거나, 공연장에 갔을 때 작품 제목에 붙어 있는 의문의 영단어, 그 정체가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음악에서 '조(Key)'라고 불리는 이 단어들은 노래 분위기를 함축하는 키워드입니다. 클래식 담당 장재진 기자와 지중배 지휘자가 귀에 쏙 들어오는 장ㆍ단조 이야기를 격주로 들려 드립니다.
C 단조는 베토벤과 뗄 수 없다. 이 조성은 그의 운명이었고, 상징으로 남았다. C 단조 느낌을 설명하려면 작품 하나만 있어도 된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불후의 명곡 베토벤 교향곡 5번을 들어보면 충분하다. 이 교향곡은 이른바 '운명의 노크'라고 불리는 동기, '솔솔솔 미(♭) 파파파 레'로 시작한다. 이 짧은 음악으로도 C 단조를 이해할 수 있다. 10월 29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얍 판 츠베덴 지휘로 KBS교향악단이 이 곡을 연주할 계획이다.
다양한 작곡가들이 모방
장재진 기자(이하 장): 음악사에 길이 남을 위인이지만 베토벤 개인은 생전 썩 행복하지 못했다. 유년시절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받은 경험으로 정서가 불안정했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때가 많았다. 급기야 귀까지 멀자 유서를 쓰기도 했다. 일련의 불운은 그의 작품 세계에 영향을 미쳤을 듯하다. C 단조는 베토벤 인생을 함축하는 표제가 아니었을까.
지중배 지휘자(지): 확실히 C 단조에는 어둡고 염세적인 면이 있다. 베토벤이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8번도 같은 조성으로 만들어졌는데, 부제가 '비창'이다. 이달 23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폐막공연에서 피아니스트 문지영이 연주한다.
장: 베토벤을 존경한 후대 작곡가들도 이 조성으로 곡을 썼다. 대표적으로 슈베르트의 후기작에 베토벤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슈베르트는 병으로 숨을 거두기 직전 피아노 소나타 C 단조 D958을 지었다. 도입부 형태나 선율의 특성이 베토벤 피아노곡을 닮았다. 문지영 피아니스트가 자신의 리사이틀(29일 예술의전당)에서 이 곡을 연주한다.
지: 베토벤에 대한 경의는 시대와 국경을 초월했다. 프랑스의 대표 작곡가 생상스는 자신의 교향곡 3번 '오르간'을 C 단조로 지었다. 베토벤 5번 교향곡처럼 어둡고 불행을 예고하는 듯한 분위기로 곡이 시작된다. 실제 이 곡을 들은 프랑스 작곡가 샤를 구노는 '프랑스의 베토벤'이라고 평가했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마티외 에르조그 지휘)가 21일 예술의전당에서 생상스 교향곡 3번을 무대에 올린다.
장: 피아노 협주곡의 걸작으로 꼽히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도 C 단조로 쓰였다. 묵직하고 낮은 피아노 독주 화음으로 시작하는데 비탄의 감정은 점차 격앙된다. 곡 자체는 대성공을 거뒀지만 작곡 시점은 라흐마니노프가 슬럼프와 우울증에 빠져 침울하던 시기였다.
환희로 끝나는 피날레
지: C 단조는 이렇듯 작곡가들에게 벗어나기 힘든 삶의 굴레와 역경을 상징했다. 하지만 이 조성의 특별한 점은 비탄 그 자체로 머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한 작품 안에서 C 단조는 으뜸음(Cㆍ도)이 같은 조성인 C 장조로 빈번하게 조바뀜되는 경우가 많다. '운명 교향곡'을 비롯해 베토벤 작품 상당수는 C 단조로 시작하지만 C 장조로 끝난다. 비탄으로 음악을 열되 환희로 끝맺는 셈이다. 자신은 불행했지만 희망과 인류애를 노래했던 베토벤의 철학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장: 실제로 C 단조로 작곡된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D958)나 생상스 교향곡 3번,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도 베토벤적인 이야기 구조다. 우울한 시작을 지나 악보의 마지막 겹세로줄로 가면 활력이 넘실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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