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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원 같은 취사장교 없어서? 軍 ‘부실급식’ 사태 계속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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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원 같은 취사장교 없어서? 軍 ‘부실급식’ 사태 계속되는 이유는

입력
2021.05.21 17:00
수정
2021.05.21 19:07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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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페이스북 페이지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육대전)에 11사단 예하 부대 장병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람이 이날 점심 배식 메뉴가 부실했다며 사진과 함께 글을 게재했다. 육대전 캡처

19일 페이스북 페이지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육대전)에 11사단 예하 부대 장병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람이 이날 점심 배식 메뉴가 부실했다며 사진과 함께 글을 게재했다. 육대전 캡처

'현대판 임오군란'에 비유되는 병사들의 '부실 급식' 사태에 국방부가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고강도 감사까지 착수했지만 오히려 폭로는 더 확산되고 있다. "국방부의 개선책에도 우리는 여전히 교도소보다도 못한 밥을 먹고 있다"는 게 추가 제보의 배경이다.

이에 서욱 국방부 장관은 20일 전군 주요 지휘관 100여 명을 소집해 대책을 논의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격리 장병의 생활여건 개선책을 마련한 지 13일 만이다. 수뇌부의 지시가 현장에 통하지 않고 있다는 위기감도 반영됐다. 전투 대비 태세 유지ㆍ강화에 주력해야 할 장성들이 한 달 넘게 병사들의 '식판'만 쳐다보는 상황이 됐다.

서욱 국방부 장관이 14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영내 근무지원단을 찾아 김승호 국방부 근무지원단장으로부터 격리장병용 급식과 포장 용기 등을 보고받고 있다. 국방부 제공

서욱 국방부 장관이 14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영내 근무지원단을 찾아 김승호 국방부 근무지원단장으로부터 격리장병용 급식과 포장 용기 등을 보고받고 있다. 국방부 제공


사태 한 달째… 1차 책임은 현장지휘관의 관리 소홀

지난달 18일 육군 51사단 소속 병사의 '부실 급식' 폭로 이후 한 달이 지났는데도 추가 제보가 속출하는 데는 현장 지휘관들의 관리 소홀에 1차적 책임이 있다. 국방부는 7일 부실 급식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병사 1일 급식비를 8,790원에서 1만500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고교생 하루 급식비(1만870원)보다 못하다는 지적에 일단 단가 인상안부터 내놓았다. 하지만 이는 올해 정기국회에서 예산당국과 국회의 심사, 동의 등의 절차를 밟아야 해 당장 실행이 가능하지 않은 대책이다.

이 때문에 사태를 당장 해결하기 위해선 제한된 급식비 범위 내에서 부실 식단이 나오지 않도록 대대장이나 급양관리관(부사관)이 △취사장 관리 △조리과정 △부식관리 △배식 과정에 더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육군은 개별 부대가 아닌 군단급 단위(5만~10만 명)에서 통일된 식단을 짠다. 식자재도 부식 청구 수량만큼 보급부대에서 할당량을 챙겨오는 구조다. 그럼에도 '오징어 없는 오징엇국'(계룡대 예하 부대), '콩나물과 밥이 전부인 점심'(국군지휘통신사령부 예하 부대) 등 부대별로 편차가 생기는 이유는 지휘관의 관심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부실 급식 사태 와중에 육군 17사단과 7공병여단에서는 "급식이 잘 나오고 있다"는 제보가 올라오기도 했다.

지난 8일 페이스북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육대전) 에 올라온 함안 39사단 부실 급식 관련 게시물. 육대전 캡처

지난 8일 페이스북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육대전) 에 올라온 함안 39사단 부실 급식 관련 게시물. 육대전 캡처

군 관계자는 "한 끼 급식비가 2,930원이지만 군은 기본적으로 취사병이 있고 공무직 근로자인 조리원이 보조하는 구조로 인건비가 들지 않아 절대적으로 부족한 금액이라 할 수 없다"며 "관리자들이 배식 과정을 지켜보며 반찬이 모자라면 대체식 준비 등을 지시했어야 하는데 지금 나오는 사례를 보면 현장에서 제대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포병장교로 임관한 '요리업계 대부'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정식 편제에도 없는 '취사장교'로 활약한 일화는 현장 지휘관들의 관심에 따라 급식 질이 얼마만큼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통한다. 군 복무 당시, 간부식당 식단에 실망했던 백 대표는 직접 취사장에서 요리 솜씨를 발휘해 부사관과 장교들의 만족도를 높였다고 한다.

페이스북 커뮤니티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에 생일자 케이크 대신 1,000원짜리 빵이 제공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페이스북 캡처

페이스북 커뮤니티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에 생일자 케이크 대신 1,000원짜리 빵이 제공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페이스북 캡처


생뚱맞은 ‘생일 쌀 케이크’… 비효율적 예산 정비해야

하지만 장기적으로 부실 급식 개선을 간부들의 개별 노력에만 의지하는 건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모든 부대의 급식 질을 '상향 평준화'하기 위해선 관련 예산을 늘리는 동시에 효율적 책정ㆍ배분이 필요하다고 군 당국자들은 입을 모은다.

군은 나랏돈으로 하루 세 끼의 식사를 해결하는 장병이 50만 명이 넘을 정도로 수요가 큰 집단이다. 하지만 그간 주어진 예산을 효율적으로 집행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일례로 식자재를 대형 시장에서 도매로 싼값에 들여오면 '규모의 경제'가 작동해 예산이 절감된다. 그러나 군은 지역균형 발전 차원에서 농축산물은 해당 부대 주둔 지역에서 구매해야 한다. 그럼에도 당국의 예산 집행 과정에 이런 부분은 고려되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가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으로 군에 짐을 떠넘기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게 군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부실 급식 사태의 나비효과를 불렀던 지난달 말 육군 제5군수지원사령부의 '1,000원짜리 생일빵' 논란이 대표적이다. 생일을 맞은 병사에게 케이크 예산으로 1만5,000원이 책정됐는데도, 부대가 병사에게 지급해야 할 케이크를 주지 않고 1,000원짜리 빵을 제공했다는 사실에 국민적 공분이 일었다.

2010년 8월 31일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과천 청사 기자실에서 쌀값 안정 및 쌀 수급균형 대책 마련 관련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2010년 8월 31일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과천 청사 기자실에서 쌀값 안정 및 쌀 수급균형 대책 마련 관련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하지만 '생일 케이크' 예산은 병사도, 군 당국도 원한 게 아니었다. 2009년 이명박 정부 당시, 쌀 소비 급감과 정부의 대북쌀 지원 중단으로 전국에 82만 톤이 넘는 쌀이 재고로 쌓이자, 정부가 쌀값 안정을 위해 생일을 맞이한 병사에게 쌀 케이크를 국가 예산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이후 반드시 '국산 쌀 케이크'를 구매해야 한다는 규정에 묶인 데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계약을 거부하는 업체가 속출해 소규모 부대의 고충이 컸다. '1,000원짜리 생일빵' 논란도 쌀 케이크 업체와 계약이 세 차례나 불발되자 간부가 별도의 부식비로 빵을 마련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더구나 병사들의 입맛이 다양해 모두가 쌀 케이크를 선호하지도 않는다.

2019년 국방부가 군납 우유 중 흰 우유 외에도 딸기·초코·바나나 등 가공우유를 추가하자, 낙농업계가 반발한 사례도 있었다. 시중에 판매 중인 가공 우유에는 국산이 아닌 수입 분유를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이에 농림축산식품부는 국방부에 "국내산 원유가 70~80% 들어간 가공우유를 납품해 달라"고 요청했었다. 군 관계자는 "정부의 요구로 병사들은 햄버거에 콜라가 아닌 흰 우유를 먹는데, 이런 규정에 계속 묶이다 보면 '장병들이 선호하는 급식'으로 전환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방부는 20일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에서 현재 휴가 복귀자에 대해 적용하는 2주간 격리 기간을 1주일로 단축하는 방향을 검토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그간 축적된 데이터를 보면, 격리 7일차 시점에 병사들의 감염이 거의 없어 부대 관리 부담을 줄이는 차원에서 이 같은 방안을 논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정승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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