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미사일 지침이 42년 만에 완전 해제된 것은 ‘미사일 주권’을 확보하려는 한국 정부와 중국의 군사력 팽창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한국 정부는 미사일 개발은 물론이고 우주산업 발전에 속도를 낼 발판을 마련했다. 미국은 중국을 사정권에 둔 미사일을 동맹국에 배치해 중국을 우회 견제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한미 미사일 지침’ 종료를 선언하면서 한국은 모든 형태의 탄도미사일을 유연하게 개발할 수 있게 됐다. 미사일 지침은 박정희 정권 때인 1979년 '국제사회 미사일 기술 확산 억제'를 명분으로 제정됐으나, 미사일·우주 연구의 족쇄로 작용했다.
그간 4차례 개정을 통해 최대 사거리를 180㎞에서 800㎞까지 늘리고 탄두 중량 제한을 없애 대북 방어용 미사일 개발 제한은 푼 상태였다. 지침의 완전 종료로 북한뿐 아니라 동북아 전역을 사정권에 둔 사거리 1,000㎞ 이상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을 독자적으로 개발, 배치할 수 있게 됐다. 문 대통령은 "지침 종료를 기쁜 마음으로 전한다"고 반겼지만, 중국, 러시아, 일본이 예민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군 당국이 비밀리에 개발해온 비닉무기 ‘현무-4’ 등 탄도미사일 개발과 업그레이드에 탄력이 붙을 수 있다. 현무-4는 미사일 지침에 묶여 ‘탄두 중량 2톤·사거리 800㎞’로 개발됐다. 군 당국은 사거리와 탄두 중량 가운데 한 쪽이 늘어나면 다른 한 쪽이 줄어드는 ‘트레이드 오프(trade-off)’를 적용해 탄두 중량을 늘려 사거리를 줄이거나, 탄두 중량을 낮추고 사거리를 늘리는 방식으로 시험 평가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7월 국방과학연구소(ADD)를 방문해 “세계 최고 수준의 탄두 중량을 갖춘 탄도미사일 개발에 성공했다”고 하면서도 '현무-4’라고 호명하지 못한 것도 이런 제한 때문이었다.
류성엽 21세기군사연구소 전문연구위원은 23일 “4차례 지침 개정은 기술 개발을 보장하는 수준이었지, 실전 배치가 가능하도록 시험평가까지 보장한 건 아니었다”며 “지침 종료로 테스트도 우리 뜻대로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사거리가 핵심인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개발에도 속도가 붙게 됐다. 군은 지난해 말 SLBM 지상 사출 시험까지 마쳤다.
인공위성 발사용 우주로켓과 탄도미사일은 개발 원리가 사실상 같은 만큼, 우주 산업도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군사위성 발사용 로켓 개발 전망이 밝아졌다. 지난해 4차 개정 당시 우주발사체의 고체연료 사용 제한을 없앴지만 개정 대상은 군사용이 아닌 민간용이라 일정 부분 제약이 있었다.
사거리 5,500㎞ 이상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도 이론적으론 가능하지만 당장 추진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정확도가 떨어지는 ICBM이 위력을 가지려면 재래식 탄두가 아닌 핵 탄두를 탑재해야 하는데, 핵 보유를 하지 못하는 한국 정부로선 ICBM 개발의 실익이 떨어진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