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한 산업단지의 작은 기업체에 근무하는 30대 남성 박모씨. 민방위 대원 자격으로 얀센 백신 접종 예약에 성공했지만, 이내 걱정이 하나 더 늘었다. 백신이야 접종하면 되는데, 접종 당일에 쓸 연차가 없는데다 오후 반차라도 쓰면 주휴수당이 없어져 월급이 줄기 때문이다.
이웃 사업장에서 일하는 20대 여성 김모씨도 사정은 비슷하다. 김씨는 "입사한 지 1년이 안 된 신입 직원이라면 1달 만근 요건을 못 채워 연차가 나오지도 않는다"며 "그럴 경우 당일 무급에 주휴수당 삭감까지 하면 총 3일치 수당이 없어지는 셈"이라 말했다. 김씨는 "작은 회사에 다니는 우리는 백신 부작용 못지않게 통잔 잔고 걱정도 크다"며 씁쓸해했다.
10일 코로나19 백신 접종자가 1,000만 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권고' 수준에 그친 백신 휴가 때문에 집단감염 위험이 큰 산업단지 내 중소기업 근로자들이 오히려 백신 접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방역당국은 올 상반기 고령층 접종이 마무리되면, 하반기부터 일반 성인에 대한 접종에 들어간다. 이에 맞춰 각 기업들은 이미 백신휴가를 공식화하고 있다. 접종률을 높여야 하는 방역당국은 이미 지난 3월 '코로나19 백신 이상 반응에 따른 휴가 활성화' 지침을 내놓고 접종 후 이상반응이 있을 경우 유급휴가를 주라고 했다.
하지만 재정당국의 반대 때문에 백신휴가는 '의무화'가 아니라 '권고'에 그쳤다. 백신휴가 의무화를 위한 감염병예방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됐지만, 기획재정부는 재정 부담은 물론, 국가가 백신 유급휴가까지 보장하는 건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방역 전문가들은 재택근무 등이 가능한 대기업에 비해, 산단 내 중소사업장이 집단감염에 더 취약하다고 보고 있다. 특히 50인 미만의 환경이 열악한 작은 사업장들의 경우, 실내 공장 안에 다닥다닥 붙어 일하면서 기숙사 생활까지 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실제 지난 2월 경기 남양주 진관산단 내 한 공장에서 115명이 무더기 확진 판정을 받는 등 산단 내 집단감염이 잇따랐다.
이 때문에 재정부담이 문제라면, 일정 총액을 정해두고 가장 영세한 사업장부터 역순으로 지원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관계자는 "열악한 사업장일수록 방역수칙은 제대로 지킬 수 없는 반면, 코로나 확진이 나오면 '너 때문에 공장 멈췄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며 "유급휴가를 줄 수 없다면 이런 사업장부터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갑 한림성심대 감염내과 교수도 "하반기 들어 백신 물량이 안정적으로 공급되면 집단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좀 더 쉽게 백신을 맞을 수 있도록 정부가 방법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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