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이 분노한 ‘성추행 피해 부사관 사망’ 사건과 ‘부실 급식’ 사태에서 확인된 건 군 당국의 무능과 무소신만이 아니다. “우리는 잘하고 있다”는 식으로 은근슬쩍 타군에 비해 우월감을 드러내는 육ㆍ해ㆍ공군의 남다른 생존법도 있다. 각군이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나만 아니면 된다”는 보신ㆍ이기주의가 병영문화 개선을 가로막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육군 출신 국방장관 “공군, 엄정수사 불가능”
9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나타난 육ㆍ해군 수장의 태도는 우리 군이 안고 있는 분열상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사건 당사자인 공군 수뇌부에 쏟아지던 국방위원들의 질문 공세가 육ㆍ해군으로 향하자 남영신 육군참모총장과 부석종 해군참모총장은 약속이나 한 듯 공군과 선을 그었다. “공군처럼 (성추행 사건이) 무능하고 해괴하게 지연된 사례를 본 적이 있느냐”는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두 사람은 “우리는 성추행 사건 수사를 지연시킨 적이 없다”는 취지로 답했다. 괜한 불똥이 튈 것을 우려한 면피성 발언일 수도 있지만, 누가 봐도 군 수뇌부가 20대 여성 군인의 비극적 죽음을 ‘지극히 예외적인 사건’쯤으로 치부한다는 인상을 줬다.
3군을 총괄하는 서욱 국방부 장관조차 책임 회피로 일관했다. 육군참모총장 출신인 서 장관은 이날 ‘사건 수사가 석 달 넘게 늦어진 이유’를 묻는 국방위원들의 질문에 “저는 육군에서 근무했다”며 “사실 공군의 부대 관리(수사) 분야는 이제야 처음 들여다보게 됐다”고 답변했다. 장관이 휘하 군 조직의 부대 관리를 몰랐다는 사실 자체도 명백한 책임 방기지만, 그다음 발언이 더 문제였다. 그는 “육군은 주둔 단위로 흩어져 있어서 사단의 군사경찰이나 검찰이 예하부대에 대한 엄정한 수사가 가능한 체계”라며 “반면 공군은 기지 단위로 근무를 해서 군 검찰이나 경찰이 (부대원들을) 같은 식구로 대해 엄정함이 부족하지 않느냐는 생각을 해봤다”고 말했다.
종합하면 육군 출신인 자신은 공군의 관리 체계를 알지 못했고, 수사조직과 부대가 한 데 모여 있는 공군 수사는 애초에 ‘제 식구 감싸기’가 가능한 구조라는 점을 자인한 꼴이 됐다.
‘부실 급식’ 사태 비껴간 해군 “지휘관 관심 많아”
상황은 다르지만 지난달 10일 ‘격리 병사 부실 급식’ 사태 때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당시 육군 병사들의 부실 급식 폭로장인 페이스북 커뮤니티(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에 고기 반찬으로 꽉 채운 해군 식판 사진이 올라온 것이 발단이 됐다. 해당 게시글에는 ‘평균 해군 짬밥, 육군은 평생 이렇게 못 받아 보겠지’라는 내용의 글도 같이 실렸다.
여기까지는 병사들끼리의 자존심 싸움으로 볼 수도 있으나, 해군 당국이 기름을 부었다. 해군 관계자는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해군은 함정 근무 체력 유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함장 등 지휘관이 급식에 대한 관심이 높은 편”이라며 “조리 직별 전문 부사관이 별도로 있을 정도로 조리 전문성을 중요한 전투력으로 여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언론이 연이은 부실 급식 사례의 원인으로 ‘지휘관의 무관심’을 지목하던 때였다. 그러자 육군 안에선 “우리는 신나게 두드려 맞고 있는데 해군만 살자는 행보냐”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압수수색하며 '친정집' 언급 논란도
국방부 검찰단이 9일 공군본부 보통검찰부와 인권나래센터 등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친정집’을 운운한 사실도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군 관계자는 “압수수색에 나선 검찰단 수사관들이 공군본부 법무실 관계자들과 편안한 분위기에서 웃으면 안부를 주고받는 등 긴장감이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수사관이 공군 관계자에게 “친정집에 오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고 한다.
이에 국방부 검찰단은 “압수수색에 공군은 모두 배제됐다”며 “친정집 발언을 한 수사관은 군무원으로 저항감을 완화하려는 의도였으나 부적절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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