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광명시흥 투기 사태 100일...다시 가보니 '에메랄드 그린'은 생기를 잃었다

알림

광명시흥 투기 사태 100일...다시 가보니 '에메랄드 그린'은 생기를 잃었다

입력
2021.06.13 14:00
수정
2021.06.13 18:41
0 0

LH 직원 '투기신공'으로 유명세 에메랄드 그린
땅 주인 구속으로 사실상 방치
LH 직원 소유인데 관리 이뤄져 대비되는 농지도

LH 직원들의 땅 투기 사태가 처음 불거진 경기 시흥시 과림동 농지에 심어진 에메랄드 그린. 3개월 전에는 생기가 있었지만 100일이 지난 이달 9일에는 많은 수가 붉게 갈변해 생명을 잃었다. 김지섭 기자

LH 직원들의 땅 투기 사태가 처음 불거진 경기 시흥시 과림동 농지에 심어진 에메랄드 그린. 3개월 전에는 생기가 있었지만 100일이 지난 이달 9일에는 많은 수가 붉게 갈변해 생명을 잃었다. 김지섭 기자

지난 9일 오후 경기 시흥시 과림동 667번지 일대 한 농지에서는 묘목들이 마치 단풍처럼 갈변해 죽어가고 있었다. 일부는 아직 살아 있었지만 잎이 시들어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듯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사태로 졸지에 유명세를 탄 '에메랄드 그린' 묘목들이다.

지난 3월 2일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의혹 제기로 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광명시흥지구' 땅 투기가 세상에 알려진 지 100일이 흘렀다. 다시 찾은 광명시흥지구는 바짝 말라 버린 에메랄드 그린처럼 활기가 사라졌다.

이따금 마주친 주민들은 “요즘 외지인 보기 힘들다”고 했다.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여기는 현금 청산되는 죽은 땅이라 손님 자체가 아예 없고 전화 문의도 뚝 끊겼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정치인들까지 앞다퉈 달려간 광명시흥지구의 ‘핫 플레이스’ 과림동 667번지 일대 농지는 대부분 방치된 상태였다. 국민적 비난 여론 속에 땅 주인들은 수사를 받고 있으니 관리의 손길이 미쳤을 리가 없다. 토지보상금을 높일 목적으로 심어 '투기신공'의 상징과 같았던 에메랄드 그린 역시 마찬가지 신세였다.

주민 A씨는 “여태 땅 주인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며 “이 주변을 평소에 자주 오가는데 땅을 관리하는 인부조차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갈변한 에메랄드 그린에 대해서는 “그 나무는 죽은 거다. 이제 저 땅은 어떻게 되려나 모르겠다”고 했다.

이 농지는 LH 사태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강모씨와 장모씨 등 총 7명이 지난해 2월 공동으로 매입했다. 경찰은 농지에 대해 기소 전 몰수보전을 신청했고 법원은 이를 인용했다. 몰수보전은 몰수할 대상을 미리 처분하지 못하도록 하는 절차다. 땅이 몰수보전되면서 사실상 땅 주인들은 손을 놓은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강씨가 구속됐으니 공동명의로 소유한 사람들도 보상받는 걸 포기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용버들 묘목이 심어진 과림동의 또 다른 농지의 3개월 전(위)과 현재 상태. 깔끔하게 잘 관리되고 있는 모습이다. 연합뉴스·김지섭 기자

용버들 묘목이 심어진 과림동의 또 다른 농지의 3개월 전(위)과 현재 상태. 깔끔하게 잘 관리되고 있는 모습이다. 연합뉴스·김지섭 기자

LH 직원들이 소유한 땅이라고 해서 마냥 방치된 것은 아니었다. 2.8㎞가량 떨어진 과림동의 다른 농지에선 빽빽이 심어진 용버들 묘목이 어느덧 훌쩍 자라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용버들은 성장이 빠르고 생존력도 좋아 토지 보상을 받을 때 유리한 나무로 평가받는다. 이곳에선 사람 손을 탄 흔적도 곳곳에 보였다. 667번지 일대와 달리 나무 주변 잡초 관리가 잘 이뤄진 모습이었다.

인근에서 농사일을 하던 B씨는 “사람을 써서 꾸준히 관리를 잘하고 있는 것 같다”며 “땅을 딱 봐도 깨끗하고 깔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땅 주인은 특별히 문제가 밝혀지지 않았는지 실제 농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해 보상을 받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덧붙였다.

해당 농지 공동명의자 중에는 LH 직원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 이들은 수사 결과 뚜렷한 농지법 위반 혐의가 드러나지 않아도 토지수용 시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할 전망이다. 정부의 투기방지대책과 LH 자체 혁신안에 따르면, LH 직원은 신도시 내 땅을 소유했어도 대토 보상이나 협의양도인택지를 받지 못하고 감정가에 따라 현금 청산된다.

새 주인을 맞아 농작물이 길러지는 경기 광명시 옥길동 농지. 김지섭 기자

새 주인을 맞아 농작물이 길러지는 경기 광명시 옥길동 농지. 김지섭 기자

LH 직원 강씨가 단독 명의로 보유했던 경기 광명시 옥길동의 농지는 과림동 농지와는 상태가 달랐다. 예상 외로 농작물이 심어져 잘 관리되고 있었다. 주인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주민 C씨는 "투기 사태가 처음 불거진 지 일주일 만인 3월 9일에 광명 주민에게 팔아버렸다"고 말했다.

강씨는 2017년 8월, 1억8,100만 원에 이 땅을 사들여 2억800만 원에 팔았다. C씨는 “LH 직원 투기 사태가 불거진 뒤 방치된 땅을 광명시에서 복원했고 이후 새 주인이 나타나 농사를 잘 짓고 있다”고 전했다.

김지섭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