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한 땅 위에서 걷고 달리고 멈추고 방향을 바꾸려면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귓속 달팽이관은 우리 몸이 그런 평형을 유지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7년 전 바닷속으로 침몰했던 배에도 기우는 배를 다시 일으켜 세울 밸러스트(평형수)의 공간이 있었다. 하지만 황금 같은 시간이 다 지나간 다음에 비로소 그것들이 작동하지 않았음을, 우리가 이름 붙였던 사물들이 하나같이 그 이름을 배신했음을 알게 됐다고 미술가 안규철은 최근 펴낸 ‘사물의 뒷모습’에서 적었다.
광주광역시 주택 재개발을 위해 철거 중이던 상가 건물이 붕괴하면서 54번 시내버스를 덮친 사고 현장 영상을 여러 번 되돌려 보았다. 하나, 둘…. 미처 셋을 세기도 전에 육중한 5층 높이 콘크리트 더미가 축 늘어진 채 아스팔트 바닥에 주저앉았고, 깔린 버스는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찰나의 순간은 에어포켓(배안 공기층)이 줄어들면서 서서히 물에 잠겼던 세월호의 고통보다는 짧았다. 하지만 7년 전 진도 앞 바다와 광주 붕괴 참사 현장엔 공통점이 있었다. 어이없고 기가 막힌 느낌이 빚어낸 비현실감 같은 거다.
사고의 원인은 어느 정도 드러났다. 해체계획서상 건물 5층부터 아래로 순차적으로 한다는 외벽 철거 순서는 무시됐다. 차도와 불과 3~4m 떨어진 철거 현장에서 안전시설은 천막을 파이프로 엮은 가림막이 전부였다. 공사 기간 차량 통제는 없었고, 버스정류소를 옮기지도 않았다. 편법과 불법, 안전불감증의 종합판이었다.
먹고사는 문제로 안전과 생명의 문제를 뒤로 미뤄두었다는 반성과 성찰이 세월호 참사의 교훈이었다. 바뀐 건 없었다. 3.3㎡당 28만 원에 계약했던 철거 비용은 하청ㆍ재하청을 거치면서 4만 원으로 줄었다. 이익을 남기려면 날림ㆍ부실 공사가 불가피한 구조였다. 해운회사의 탐욕과 이기주의는 재개발 철거 업계의 고질적인 재하청 관행 아래 살아 숨쉬고 있었다. 세월호 선장의 무책임, 해경의 무능함도 변주곡처럼 재연됐다. 감리 책임자는 철거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고, 공무원들은 참사 두 달 전 위험천만한 철거가 진행되고 있다는 공익 제보를 흘려 들었다. 2019년 잠원동 철거 사고 이후 재발 방지 대책이 마련됐는데도 유사한 사고가 발생했다. 누구도 '나였다면 달랐을까'라는 질문 앞에서 자유롭지 않다.
K방역, K뷰티, K바이오, K푸드 등 대한민국은 지금 K열풍에 취해 있다. 이제 추격의 시대가 아니라 추월의 시대에 진입했다는 진단도 나왔다. 하지만 사상누각이었다. 탐욕과 이기주의에 밀려 윤리와 사명의식은 실종하고 생명과 안전은 여전히 살얼음판 위에 서있다는 게 드러났다.
‘생명과 안전을 귀하게 여기는 나라다운 나라’를 약속한 정부에서도 우리 사회의 균형을 잡아줄 달팽이관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당혹감은 또 다른 문제다. 광주 붕괴 참사와 관련한 청와대 메시지는 대통령 해외 순방 출발 전날 단 한번 나왔다. 철거 업계의 고질적 문제가 터졌으니 더 얹을 말이 있겠냐고 생각한 걸까. 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이 터지자 “부동산 적폐를 청산하겠다”며 결기를 보인 것과 온도 차이가 확연하다. 공군 부사관 성폭력 피해자 사망 사건과 관련해선 연달아 네 차례 메시지를 낸 것과도 비교된다. 여당 대표는 “버스기사가 엑셀레이터만 더 밟았어도 살아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실수를 했다. 세월호 사고에 무능했던 전 정권에 맞서 ‘이게 나라냐’는 질타로 집권한 정부가 맞나 싶다. 대한민국은 세월호가 가라앉은 그 언저리에 아직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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