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송용창의 정치행간’은 의회와 정당, 청와대 등에서 현안으로 떠오른 이슈를 분석하는 코너입니다. 정치적 갈등과 타협, 새로운 현상 뒤에 숨은 의미와 맥락을 훑으며 행간 채우기를 시도합니다.
“X파일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정말 대통령감인지가 중요하다. 깜냥을 보이면 X파일은 변수가 안 될 거다. 국민들이 이제 그걸 보겠다는 것이다.”
여의도 정치에 잔뼈가 굵은 한 인사가 정치권에서 공방이 벌어지는 ‘윤석열 X파일’ 논란을 두고 던진 말이다. 주로 처가 의혹이 담긴 것으로 알려진 X파일의 실체 여부와 무관하게 윤 전 총장이 대통령으로서의 능력과 자격을 보여주는 게 관건이라는 얘기다.
29일 대선 출마 선언에 나서는 윤 전 총장이 마침내 그 검증 무대에 오른다. 지난해 추·윤 갈등 등을 통해 차기 대선 주자 1위로 우뚝 발돋움했으나 정권심판론에 떠밀려 올라탄 측면이 적지 않았다. 윤 전 총장을 키운 8할이 추미애 전 법무장관과 조국 전 법무장관이라는 시중의 얘기처럼 현 정부의 내로남불과 헛발질이 윤석열 지지율의 주요 연료였다.
하지만 미래를 보고 투표하는 성향이 강한 대선에서 회고적 성격의 정권심판론에만 의지할 수 없다. 무엇보다 정권 교체 가능성이 커질수록 야권 내부의 경쟁을 뚫고 야권 통합을 이루는 것이 더 큰 과제가 될 수 있다. 윤석열만의 온전한 정치적 매력과 역량이 요구되는 시간이 온 것이다.
윤 전 총장이 대선 승리라는 최종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거쳐야 할 관문은 크게 보면 소통과 리더십, 비전, 도덕성 검증이다. 페이스메이커에 그칠지, 결승 라인을 통과할지는 이 테스트를 어떻게 돌파하느냐에 달렸다.
#테스트 ① “고구마 소통 스타일로 안 돼”
윤석열의 소통 방식과 리더십은 그야말로 물음표 상태다. 지금까지 보여준 행태로 봐서 첫 관문부터 난관이다. 측근을 통한 ‘전언 정치’, 10일 만의 대변인 사퇴 파동 등을 두고 답답한 '고구마 스타일'이라는 부정적 평가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정치권에 충격을 던진 이준석 현상과도 가장 대비되는 대목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부상시켰던 것은 SNS 등을 통해 각종 이슈에 대한 생각을 거침없이 밝히는 소통 스타일이었다. 그의 의견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서 청년 세대와 호흡하는 정치인이라는 상징성을 만든 원동력이다. 여권의 이재명 경기지사가 성남시장에서 유력 정치인으로 성장할 때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이에 대해 윤 전 총장 측 관계자는 “공식 출마 선언을 하기 전에 직접 나서기가 부담스러워 오해를 부른 것이다”라며 “직접 소통에 나서면 소탈하고 거침없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문회나 국정감사장에서 보여준 윤 전 총장의 돌직구 화법이 그간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검찰 재직 때와 달리 정치권은 소통의 민낯이 드러나는 공간이다. 기자회견에서 까다로운 질문 공세에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실시간으로 노출될 수 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대선 출마에 나서자마자 기자들의 집요한 질문에 발끈하는 모습을 보여 상당한 상처를 입었다. 첫 테스트가 윤 전 총장에겐 가장 큰 고비라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테스트② “검찰 습속 버리고 민주적 리더십 보여야”
소통 스타일에 대한 물음 뒤에는 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자리 잡고 있다. 예컨대 일방통행식이냐 쌍방향 소통이냐는 단순한 스타일 문제가 아니라 민주적 리더십 여부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윤 전 총장은 문재인 정부와 갈등을 빚는 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와 법치를 강조하며 정권 교체의 기수로 떠오르긴 했으나, 검찰 문화에서 자란 그의 리더십이 실제 민주주의에 부응할지는 미지수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차기 정부에선 민주주의 회복이 중요한 과제인데, 검찰은 검사동일체 원칙이나 상명하복 문화가 강하다”며 “그런 습속이 배어 있을 윤 전 총장이 민주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민주주의 회복 과제는 그간 실종됐던 정치 회복과 맞닿아 있다. 내부의 이견과 쓴소리를 보장해 다양성을 확보하고, 정치적 반대편과도 타협과 설득으로 문제를 풀어 나가는 것이 민주적 정치인의 핵심 덕목이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문재인 대통령 모두 부족했거나 실패했던 것으로, 정치가 사라지고 진영 간 적대적 대립이 심화됐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를 극복하는 정치적 리더십이 요구되는 시대지만, 검찰 재직 시 윤 전 총장이 보여준 모습은 양면적이다. 정권 눈치를 보지 않는 수사로 진영을 넘어선 공정성의 아이콘으로 찬사를 받았으나, 수사 방식을 두고선 “몽골 기병 같다”(조응천 민주당 의원)거나 “직권남용죄를 남용했다”(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부정적 평가도 상당하다. 요컨대 윤석열식 수사 스타일이 정치에 접목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다.
#테스트③ “정권심판론 이상의 깃발 있나”
대통령 깜냥을 가늠하는 또 다른 관문은 경제 노동 복지 외교 등 여러 분야에서 국가 과제를 해결하는 정책을 보여줄 수 있느냐다. 이 대목에서 윤 전 총장은 여권의 강력한 경쟁자인 이재명 지사에 비하면 아직은 백지 상태나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 그의 한 지인은 “법 집행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공정을 회복하는 데 대해 탐구를 많이 해왔고 상당한 준비를 한 것으로 안다”며 “정책을 도와주는 분들도 실력을 갖춘 이들이 많아 좋은 프로그램들이 나올 것이다”라고 자신했다.
대선이란 큰 판에서 요구되는 것은 구체적인 정책만이 아니다. 어쩌면 여러 정책의 나열보다 그 정책을 관통하는 정신을 담은 슬로건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 이를테면 이 지사의 ‘기본’ 시리즈도 정책적 실효성보다 양극화에 대응하는 깃발로서의 상징성이 더 강하다고 볼 수 있다. 하물며 정치 신인인 윤 전 총장 입장에선 시대정신을 표방하는 깃발의 의미는 더 크다. 윤 전 총장이 아무리 여러 분야를 공부해왔다고 해도 단기간에 정책적 디테일로 승부를 보기는 어렵다. 정치권 인사는 “윤 전 총장이 거론해온 공정, 법치는 여전히 형식적이다. 정권심판론을 제외하면 유권자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무엇이 빠져 있는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테스트④ “폭발성 남은 처가 리스크”
윤 전 총장의 마지막 관문은 언제 돌출할지 모를 ‘처가 리스크’다. 박근혜 정부에서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로 좌천됐고 문재인 정부에서 법·검 갈등으로 징계 수난을 겪었던 윤 전 총장이 법적 흠결을 갖고 있었다면 진작에 문제가 됐을 것이란 의견이 많다.
이에 비해 부인과 장모의 경우 여러 사건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아직 진행 중인 터라 위험성이 잠복해 있는 상태다. 장모 최씨는 2013~15년 요양병원을 동업자 3명과 함께 운영하면서 요양급여 22억9,000만 원을 부정 수급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이들에 대한 수사나 재판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대법원 판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윤 지지자 층에선 “정치적 의도를 가진 시간 끌기용 수사”라는 시각이 존재해 당장의 폭발성은 크지 않다. 다만 부동산 거래 과정에서 여러 송사에 얽혔던 장모와 부인을 두고 도덕적 논란이 번질 가능성은 남아 있다. 관련 사건 피해자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각종 사생활 의혹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논란의 정치적 인화성이 어느 정도일지에 대해선 의견이 크게 갈린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의원은 “4·7 서울시장 보궐 선거때 생태탕 논란처럼 네거티브 전술은 이제 먹히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사생활을 문제 삼는 쪽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반면 “X파일의 근거가 뒷받침되면 부인이 퍼스트레이디로서 자격이 있냐가 주요 검증 사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엄존한다. 다만 대선에서 도덕성 논란은 대체로 판세에 영향을 주기보다 지지자들의 확증 편향을 강화시켜 결집력을 높이는 요인이었다. 판세를 좌우하는 것은 결국 윤 전 총장 자신의 정치력이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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