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회> '죽음에 대한 절망' E♭ 단조
편집자주
C major(장조), D minor(단조)… 클래식 곡을 듣거나, 공연장에 갔을 때 작품 제목에 붙어 있는 의문의 영단어, 그 정체가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음악에서 '조(Key)'라고 불리는 이 단어들은 노래 분위기를 함축하는 키워드입니다. 클래식 담당 장재진 기자와 지중배 지휘자가 귀에 쏙 들어오는 장ㆍ단조 이야기를 격주로 들려 드립니다.
영적인 소리를 들려주는 F# 장조와 D# 단조는 같은 조표(Relative key)를 사용하는 쌍둥이 사이, 관계조다. 그런데 D# 단조와 특별한 관계가 또 있다. 바로 E플랫(♭) 단조다. E♭ 단조는 B(시) E(미) A(라) D(레) G(솔) C(도)에 플랫이 붙은 조성. 샤프(#)가 6개 붙은 D# 단조와는 생긴 게 다른데 무슨 관계일까. 이들은 음악에서 '이명동음조(Enharmonic Key)'로 불린다. 조금 더 쉽게 '딴이름 한소리조'라고도 하는데, 핵심은 단순하다. 겉은 다르게 생겼지만 같은 소리를 낸다는 것.
음악에도 도플갱어가 있다
지중배 지휘자(이하 지): '도플갱어'라는 말을 아는가. 독일어인데, '도플'은 영어로 '더블(Double)'을 뜻한다. 도플갱어는 분신, 복제된 자신이라는 뜻이다. 조성에도 '도플갱어'가 있는데 '이명동음조'가 그렇다. 어떤 조성의 복제판이라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장재진 기자(장): 피아노 건반에서 D(레)를 반음 올리면 검은 건반인 D#가 된다. 그리고 E(미)를 반음 내리면 다시 검은 건반인 E♭이 되는데, 위치상 D#와 E♭은 같은 건반이다. 결국 D# 단조와 E♭ 단조는 으뜸음이 같은 단조라는 뜻이 되므로, 같은 음악을 들려준다.
지: 물론 전문적으로 들어가면 D# 단조와 E♭ 단조는 음계가 진행되는 방식에서 조금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100% 같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큰 틀에서는 같다.
죽음 앞둔 예수의 고뇌를 노래
지: 클래식 작품 수로 따질 경우 D# 단조보다 E♭ 단조의 곡이 상대적으로 더 많다. E♭ 단조 작품에는 죽음을 앞둔 불안과 깊은 절망을 표현한 음악이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브람스의 6개의 피아노 소품(Op.118) 가운데 마지막 6번은 레퀴엠(진혼미사곡) 중 유명한 '진노의 날(디에스 이레ㆍDies irae)' 선율을 동기로 작곡됐다. 처음부터 무겁고 음산하게 시작되는 이 곡은 영혼이 떠난 사람처럼 어둡게 끝난다.
장: 체코 작곡가 야나체크의 대표작인 피아노 소나타 '1.X.1905'도 E♭ 단조 곡인데, 사연이 있다. 특이한 곡 제목은 1905년 10월 1일을 말한다. 이날 체코에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다. 당시 합스부르크 제국의 지배 아래에 있던 체코인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하는 대학을 만드는 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다 군대에 의해 집회가 진압되는 과정에서 젊은 청년이 목숨을 잃었다. 야나체크는 청년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분노를 소나타로 썼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다음 달 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이 곡을 연주한다.
지: 모두 6개 곡으로 구성된 베토벤의 오라토리오 '감람산 위의 그리스도'도 첫 곡에서 이 조성의 분위기를 드러낸다. 이 오라토리오는 예수가 감람산(올리브 나무 산)에서 마지막 기도를 올리다 병사들에게 체포되는 상황을 가사와 음악으로 다뤘다. 첫 번째 곡에서 죽음을 앞둔 예수의 고뇌를 담은 아리아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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