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불교의 대표적인 선승인 고우(古愚) 스님이 29일 열반했다. 법랍 60년, 세수 85세.
조계종에 따르면 고인은 이날 오후 3시 30분쯤 경북 문경의 봉암사에서 입적했다. 80세가 되자 기력이 급격히 떨어져 대중을 만나지 않고 은퇴한 스님은 최근 당뇨는 물론 폐, 심장 등에 병을 얻어 경주 동국대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기도 했다.
1937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난 스님은 25세 때 경북 김천시 청암사 수도암에서 출가했다. 군 복무 중 얻은 폐결핵으로 요양차 수도암을 찾았다 그길로 출가의 길에 들어섰다. 고인은 훗날 "불교를 처음 만나 공부하니 너무 재밌어 폐결핵 약도 버렸는데 병이 저절로 나았다"고 회고했다. 이후 거의 평생을 봉암사, 범어사, 각화사 등 선원이나 암자에서 수행정진하면서 참선 수련의 길을 간 고인은 스님들 사이에서 덕망을 높이 쌓은 선사다. 절에 제사와 불공을 일절 하지 않고 심지어 부처님 오신 날 연등도 켜지 않았는데 "외형의 등 공양도 좋지만 마음의 등을 밝히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게 스님의 뜻이었다. 절에 아이들이 오면 남몰래 용돈을 주고,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겐 장학금도 줬다.
스님은 1968년 문경 김용사에서 선승 10여 명과 전쟁으로 끊어진 결사도량이자 수선도량이었던 봉암사의 명맥을 되살리자는 뜻을 모았다. 성철 스님(1912~1993)이 이끌었던 첫 결사에 이은 두 번째였다. 이는 현재의 조계종 종립선원 봉암사 태고선원의 기틀을 다진 것으로 평가된다.
1980년엔 전두환 신군부의 '10·27 법난'으로 당시 월주 총무원장을 비롯한 종단 주요 인사가 계엄군에 연행돼 총무원 기능이 마비되자 봉암사 탄성 스님을 총무원장에 추대하고, 자신은 총무부장 소임을 맡아 사태를 수습했다. 종헌 개정 등 개혁 조치를 한 뒤 석 달 만에 다시 제자리인 봉암사로 돌아왔다.
스님은 수행자로서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고자 했다. 그가 따랐던 불교의 근본은 중도(中道)였고, 선(禪)은 이를 체험 실천하는 것으로 봤다. 자기 마음이 그대로 깨달아 완성된 '본래성불(本來成佛)'임에도 중생이라 착각을 하고 있으니, 그 착각 망상을 완전히 없애는 '확철대오(廓徹大悟)'가 바로 깨달음의 기준으로 봤다.
이런 참선 수행을 바르게 알리기 위해 1987년 도반 적명 스님과 전국선원수좌회를 창립해 공동대표를 맡았다. 2006년 경북 봉화에 금봉암을 창건해 주석한 스님은 선 법문의 청이 올 경우 길을 마다하지 않고 갔다. 평생 남에게 신세지는 것을 싫어한 스님은 법문을 다니기 위해 운전면허시험을 봐서 단번에 합격하기도 했다.
2007년 조계종 원로의원 추대, 종단 최고 법계인 대종사 품계를 받았다. 한국 불교에 대한 자부심이 컸던 스님은 일찍이 한국의 선풍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고, 종단 차원에서 국제 선센터를 세워 간화선 인재를 양성하기를 발원했다. 제자들이 엮어낸 법문집으로 '고우 스님 육조단경 강설', '태백산 선지식의 영원한 행복' 등이 있다.
장례는 봉암사에서 5일간 전국선원수좌회장으로 치러진다. 영결식과 다비식은 내달 2일 오전 10시 30분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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