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0 빌헬름 뮐러의 이면
1970년대 한국 민주화운동과 1980년대 노동·학생운동의 전선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세계는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고, 어떤 면에선 더 노골적으로 각박해졌는데, 전선은 희미해졌고 싸움도 잦아들었다. 정말 싸움의 양상만 달라진 것일까. 남김없이 버리자던 사랑과 명예 대신 이념과 이상, 역사 정의라 부르던 공동체 윤리를 버린 것은 아닐까.
제5공화국의 쇠한 권력을 조롱하고, 저항의 기억을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며 사람들이 증명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지금 역사의 안전지대에 앉아 일제강점기의 억압 속에 살았던 이들의 사소한 친일 행각까지 까발려 성토한다고, 내가 독립운동가가 될 리 없고 정의의 투사도 될 수 없다. 자신에게는 완벽하게 무해하고(때로는 유익하고) 공동체에는 더러 유해한, 유희라 해도 좋을 영웅놀이에서 잃어버린 전선을 찾는 이들이 있다.
독일 시인 빌헬름 뮐러(Wilhelm Muller, 1794.10.7~1827.9.30)는 대신 '겨울 나그네'를 찾고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처녀'를 그리워했다. 그에게 그의 시대는 '보리수 그늘 아래에서 단꿈'을 꿔도 좋을 낭만의 시대가 아니었다. 그는 베를린대 재학 중 프로이센 군대에 자원 입대해 나폴레옹 군대와 싸웠다. 동시대 지식인들과 함께 오스만제국의 압제에 맞선 그리스 민중의 독립전쟁(1821~29)에 열광했고, 민병대를 응원하며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의 가치에 적극 동조했다. 동시에 그의 시대는 제발트가 '전원에 머문 날들'에서 잠깐 언급했듯, 전쟁의 기억이 잊혀가며 "진보적 요소들과 반동적 요소들이 더 이상 구분할 수 없을 지경"으로 뒤섞여, 이해타산과 도피의 충동이 격렬히 엇갈리던 때였다.
근년의 비평가들은 뮐러를 낭만주의 시인으로 묶는 데 주저한다. 그의 '나그네'는 길 잃은 방랑자가 아니라 희망의 길을 찾으려는 의지의 탐색자라는 것. 그들은 뮐러를 민중의 서정으로 혁명의 열정을 노래한 시인이라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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