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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학이 짠 판" 10년 넘게 촘촘히 설계된 화천대유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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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정영학이 짠 판" 10년 넘게 촘촘히 설계된 화천대유 시나리오

입력
2021.10.14 14:00
수정
2021.10.14 17:18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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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화동인 5호 정영학 회계사의 실체>?
대장동 초기부터 화천대유까지 인맥 총동원?
외관상 화천대유 주주, 실제론 모든 설계 입안
땅 작업·파이낸싱에 시의회·화천대유에 측근도
"위기 땐 검찰 협조해 형사처벌 피하려는 전략"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 지구 모습. 성남=서재훈 기자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 지구 모습. 성남=서재훈 기자


검찰에 녹취록을 제출하는 것을 보고 알았죠. 과거와 똑같이 정영학이 '선택적 진실'을 사용해 이 국면에서 조금씩 사라지려 한다는 걸…

정영학 회계사 지인 A씨

2009년 대장동 개발사업 초기부터 지금의 화천대유까지 12년 넘게 대장동 사업을 실질적으로 좌지우지한 인물은 천화동인 5호 소유주 정영학(53) 회계사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외관상 5,581만 원을 투자해 644억 원을 벌어들인 화천대유 주주로서 녹취록 제출을 통해 검찰 수사에 협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대장동 사업 관련 모든 기관에 측근들을 심어놓고 막후에서 활동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검찰도 그가 설계한 장기판에서 놀아나는 말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픽=김문중 기자

그래픽=김문중 기자


정영학, 대장동 사업에 인맥 총동원

정영학 회계사가 대장동 개발사업의 '몸통'이란 사실은 곳곳에서 확인됐다. 14일 대장동 사업에 관여했던 핵심 인물들의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정 회계사는 2009년 대장동 사업에 뛰어든 시행사의 자문단 활동을 시작으로 민영개발 관철을 위해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했다. 지주 작업과 파이낸싱, 성남시의회와 언론, 성남도시개발공사와 화천대유까지 정 회계사가 데려온 인물이 요직에 포진됐다.

초창기 대장동 개발사업을 주도한 시행업체 '씨세븐'은 지주 작업(토지 수용)과 자금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씨세븐 '6인 자문단' 일원이었던 정 회계사는 금융회사에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팀장으로 일했던 전모(54)씨와 대기업 건설사 출신의 김모(56)씨를 영입했다. 이들은 정 회계사와 '광주 대동고' 동문으로, 전씨가 원주민들 토지 매입을 위한 대출을 담당했고, 김씨가 주민들을 설득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하지만 두 사람을 통한 대출과 토지 수용이 뜻대로 되지 않자, 정 회계사는 자신에게 회계자문을 맡겼던 부산저축은행 오너 일가의 인척 조모(47)씨를 섭외해 부산저축은행에서 PF 대출 1,155억 원을 마련하는데 성공했다. 정 회계사는 원주민과의 관계가 매끄럽지 않았던 김씨를 남욱(48) 변호사로 교체해 토지 수용 업무를 담당하게 했다. 대신 김씨에게는 운영 총괄 업무를 맡겼다.

원주민 토지 수용과 관련한 등기 업무를 담당한 정재창(52)씨 역시 정 회계사의 고교동문인 전씨가 데려온 인물이다. 정씨는 정 회계사 녹취록에서 성남도시개발공사 전 기획본부장인 유동규(52)씨에게 위례신도시 개발 사업과 관련해 3억 원을 건넨 인물로 알려져 있다. 초기 대장동 사업에 관여한 핵심 인물들이 모두 정 회계사 인맥으로 꾸려진 셈이다.

여론 조성과 성남시의회에도 영향

정영학 회계사는 대장동 사업에 관계된 모든 곳으로 촉수를 뻗었다. 그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공영개발을 포기하도록 하고, 민관합동 사업 추진을 위한 성남도시개발공사 설치 조례안 통과를 위해서도 전방위로 뛰었다. △부동산 투자자문업체와의 용역 체결 △여론 형성 △시의원 로비도 모두 정 회계사 작품이었다.

정 회계사는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부동산 투자자문업체 대표 김모(53)씨를 끌어들여 시행업체 씨세븐과 1억 1,000만 원의 용역 계약을 체결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천화동인 7호 소유주 배모(52)씨와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55)씨 등 언론인들을 소개 받아 LH가 공영개발을 포기하도록 하는데 활용했다.

2009년 말 성남시 수내동을 지역구로 둔 최윤길(62) 전 성남시의원을 상대로는 정 회계사의 부인 김모(53)씨가 수내동 초등학교와 중학교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한 점을 이용했다. 정 회계사는 시의원 선거를 앞둔 최씨에게 부인을 통해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하면서, 대장동 사업과 관련한 시의회 분위기 파악과 성남도시공사 설치 조례안 통과를 이끌게 했다. 최씨는 이후 화천대유 부회장으로 합류했다.

대장동 개발사업이 민관합동 방식으로 결정되자, 정 회계사는 화천대유와 성남도시공사에도 자신의 사람들을 배치해 정보를 수집했다. 화천대유에서 실무 담당을 하다가 최근 퇴직해 30억 원 이상의 퇴직금을 받은 양모씨는 정 회계사의 고교동문인 대기업 건설사 출신 김씨의 소개로 화천대유에 합류했다.

2014년 10월 성남도시공사 기획본부 산하 전략사업팀장 자리를 꿰찬 김민걸 회계사 역시 정 회계사가 같은 회계법인에서 데리고 있던 사람이다. 정 회계사는 김민걸 회계사를 통해 사업자 공모와 선정, 성남도시공사의 초과이익 환수조항 삭제 과정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민(양씨)·관(김 회계사)' 모두 정 회계사 관리하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그의 거미줄 인맥을 염두에 둔 해석이다.

검찰은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13일 오후 서울중앙지검의 모습. 연합뉴스

검찰은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13일 오후 서울중앙지검의 모습. 연합뉴스


이번에도 형사처벌 피할 수 있을까

정영학 회계사는 측근과 지인들을 곳곳에 심어두는 방식으로 꼼꼼하게 사업을 설계했지만, 법적 책임은 피하려고 했다. 그는 2015년 수원지검의 대장동 비리 사건 수사 당시 막다른 상황에 몰리자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은 뺀 '제보 메모장'을 사무실 책상에 남겨둔 적이 있다. 이번에도 형사처벌을 피하기 위해 검찰에 녹취록을 제출하는 방식으로 수사에 협조하는 모양새다. 2015년 수사 때도 남 변호사를 포함한 다른 동업자들은 구속됐지만 정영학 회계사는 검찰의 칼끝을 피할 수 있었다. 과거 정영학 회계사와 도시개발사업을 했던 동업자들 사이에서 "정영학은 동업자 저승사자"로 불렸던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고검장 출신의 법조인은 "정 회계사가 과거에 죗값을 치렀다면 대장동 사태를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이번에도 공익 제보자 행세를 하면서 빠져나가려고 하지만 '몸통'을 빼놓고 수사한다면 검찰도 후유증에 시달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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